현재 가장 주목 받고 있는 젊은 파괴자 '아르카'의 자아성찰 [Arca]
'아르카'의 놀라운 약진과 그에 따르는 찬사가 결코 과장이 아니었음을 그는 자신의 과거 정규 앨범들을 통해 증명해왔다. 그리고 전작 [Mutant] 이후 약 1년 반이 되는 이 시점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셀프 타이틀 앨범 [Arca]를 내놓기에 이른다. 무엇보다 그는 뮤트에서 XL 레코딩스로 이적하면서 더욱 넓어진 세계관을 내보일 준비를 한다. 커버의 경우 과거와 마찬가지로 제시 칸다가 담당해내고 있다.
"이것은 내 목소리이며, 나의 모든 용기이다. 자유롭게 판단하시라. 그것은 마치 투우와도 같은데 당신은 즐거움을 위해 감정적인 폭력을 목격하게 된다. 이는 거래의 조롱처럼, 불편하고 깊은 곳으로, 그리고 자기 분열로 나아가는 캐릭터이다. 피를 원하는가? 여기 있다."
앨범에 수록되는 신곡 "Piel"이 공개될 무렵 아르카는 위의 언급을 덧붙인다. 실제로 위의 코멘트대로 '아르카'의 곡 중 처음으로 자신의 노래를 선보이고 있는데, 피드백 노이즈 사이로 앙상한 듯 거친 '아르카'의 목소리가 듣는 이들의 신경을 불길하게 어루만진다.
앨범 수록 곡들 중 글리치 노이즈와 관능적인 신시사이저가 교차하는 "Reverie", 그리고 "Piel"과 마찬가지로 보컬을 전면에 내세운 트랙 "Saunter"을 담은 12인치 싱글 레코드 또한 따로 발매됐다.
"Saunter", 그리고 "Anoche' 같은 트랙은 보컬 톤 때문에 아노니(Anohni)의 곡들을 떠올리게 끔도 하는데, 아노니의 앨범에서 맹활약한 허드슨 모호크(Hudson Mohawk)의 경우 아르카와 함께 칸예 웨스트의 [Yeezus] 앨범에서 활약한 비트메이커이며, 아노니의 앨범의 한 축을 담당했던 원오트릭스 포인트 네버(Oneohtrix Point Never)의 작업물 또한 과거 아르카와 이따금씩 비견되곤 해왔다.
이외에도 보컬이 투입된 인상적인 트랙들이 존재한다. "Sin Rumbo"과 "Coraje"의 경우에는 어떤 스산한 숭고함 마저 감지되며, "Desafio"의 충동적인 듯 아름다운 선율 또한 좀처럼 귀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Fugaces", 그리고 "Miel"에서 신비한 아름다움은 정점을 맞이한다. 무언가가 꿈틀대는 것 같은 이상한 생동감으로 시작하는 곡들은 후반으로 접어들수록 아름다운 노래로 변이해간다.
낭만적이면서도 치명적인 비트의 IDM 튠 "Urchin", 에이펙스 트윈 류의 드릴 앤 베이스와 왜곡된 소스들을 자유분방하게 표현해내고 있는 "Castration", 제목 그대로 채찍질 소리로 가학적인 비트를 주조해내고 있는 "Whip" 등의 트랙들이 듣는 이들의 감상을 한계치까지 밀어붙여낸다. "Child"의 정돈되지 않은 신시사이저의 흐름은 천진난만한 감정과 묘하게 데자뷔되기도 한다.
규칙적인 리듬이라는 것은 거의 존재하지 않고, 과거 작들에서 엿보였던 혼돈의 영역 역시 그대로 유지시켜내고 있다. 오테커의 추상과 페네즈(Fennesz)의 감성이 결합된 소리에 데이빗 린치(David Lynch) 특유의 미스테리한 감각을 장착해낸다면 아마 이런 괴물체가 완성되지 않을까 싶다. 이 다차원적인 레코딩은 내성적이면서 동시에 흉폭하다.
자신만의 호흡으로 팝의 혁신자로서 표현할 수 있는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우리의 상상력을 훨씬 뛰어 넘는 다른 세계의 소리다. 때문에 기존의 장르나 어휘로는 쉽게 설명이 되지 않는다. 자신 스스로의 이름을 앨범 제목에 걸었듯 이것은 알레한드로, 혹은 '아르카' 자신이라 말할 수 있는 결과물이기도 하다. 그는 이러한 방식을 통해 자기 자신을 필터링하고 싶지 않다 외치는 듯한 모습을 보여내고 있다. 제시 칸다의 비주얼과 결합했을 때에 더 그렇지만 이 역시 하나의 현대 미술처럼 감지될 때가 있다. (글/한상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