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을 응축한 특별한 진심
미미시스터즈 위로 캠페인 [우리, 자연사하자]
미미하지 않았던 미미시스터즈의 10년
'미미시스터즈'(이하 '미미')가 10주년을 맞이했다. 너나 할 것 없이 나이 앞자리가 모두 바뀌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미미는 장기하와 얼굴들 소속으로 발표했던 『별일 없이 산다』(2008)를 포함해 1집 『미안하지만... 이건 전설이 될 거야』(2011), 2집 『어머, 사람 잘못 보셨어요』(2014) 등 정규 작업물을 세 차례 발표했다. 다짐이라도 한 듯이 3년마다 꼬박꼬박. 처음에는 미미의 진정성에 의구심을 품은 사람도 있었다. 누구 하나 부인하지 못할 정도로 센세이셔널한 등장이었고, 한 번 보면 결코 잊을 수 없을 만치 강렬한 인상이었지만, 어디까지나 스스로 '저렴한 신비주의'로 명명한 일시적 컨셉 놀이일 것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미의 이후 활동을 지켜보며 그와 같은 생각들은 하나둘 사라졌다.
사람들의 생각을 바꾼 계기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음악에 대한 미미의 순진하고 진지한 태도, 그리고 계속 이어진 노력과 도전. 음악에 대한 기본기나 지식 없이 뛰어든 음악인으로서의 삶이었고, 이후에도 작곡, 연주 등 많은 부분에서 다른 음악인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기에 미미로서도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늘 있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 미미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영역을 고민하고 새로운 발상과 상상에 도전함으로써 자신부터 의심의 시선을 거둔다. 노력을 알아본 많은 선배, 동료 음악인들이 힘을 보탰고 미미는 자신들에게 주어진 옷을 찰떡같이 소화해냈다. 그 안에 고유한 메시지를 녹여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내 안에 너 있다? 아니, 미미 안에 우리가 있다.
정규작업 사이 김시스터즈와 합동 공연을 펼치고, 이난영 탄생 100주년 헌정 공연을 기획했으며,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오오니시 유카리와 교류했다. 자신들의 이야기로 엮은 극과 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인디 밴드로서 고정적인 컨셉과 매번 변화하는 기획력으로 종횡무진하는 모습은 마치 작금의 기획사 본위의 아이돌 그룹 시스템과 비슷했다. 그렇게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고 장르와 공간의 경계를 가로질렀던 미미의 다양한 활동은 이들이 겉으로 강한 개성을 지녔지만 동시에 백지와 같은 순수함과 백지를 차곡차곡 채우고자 하는 건전한 갈망도 함께 지니고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덕분에 미미는 불필요한 고집이나 자의식 과잉을 보이지 않게 되었다. 20세기 록에 대한 진지한 반추와 이를 활용한 구구절절한 농담이 공존했던 1집, 가볍고 현대적인 사운드로 음악의 무게를 덜고 이야기도 서사보다는 솔직한 메시지에 무게를 더 실었던 2집. 두 앨범이 비슷한 듯 크게 다르기도 했던 것은 단순히 참여 음악인 명단의 차이에 의한 것만은 아니었다.
솔직하고 순수한 이의 얼굴에는 자연스레 내 얼굴이 비치기 마련이다. 그래서일까. 미미의 밴드사를 통해 인디음악의 역사와 우리네 개인사를 반추하게 된다. 홍대 인디음악의 역사가 10주년을 지나 가장 화려한 시기로 달려가고 있을 때 가장 핫한 밴드의 멤버들로 미미는 데뷔했다. 시작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이내 밴드 탈퇴의 아픔을 겪었다. 다행히 선배들과 동료의 조력으로 짧은 시간 안에 독립에 성공했고 마치 보답이라도 하듯 대선배들을 찾아다녔다. 그들의 황혼을 기념하고 응원했다. 그런데 어느새 죽음을 걱정하는 밴드가 되었다. “전설이 될 것.”이라는 1집 타이틀의 농담이 짓궂게 들릴 만치, 팀의 역사가 마치 하나의 그럴 듯한 영화 시나리오처럼 여겨질 만치, 미미는 단 10년 만에 인생의 부침을 짧고 굵게 겪게 되었다. 그리고 그사이 인디음악을 사랑했던 이들도 나이가 들고, 씬에도 황혼이 스미게 되었다.
자연사의 아이러니
더 이상 공연장을 찾지 않는 과거의 인디 팬들. 음반을 사지도, 록 음악을 듣지도 않는 젊은 사람들. 음악인들은 별 수 없이 생업을 좆아, 혹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홍대를 떠나갔다. 사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남아 자신들의 음악을 이어간다. 하지만 대개 그들이 택하는 것은 현실에 발맞추어 적응하거나 현실과 무관하게 자기 음악을 지켜가는 양자택일의 방식일 뿐 현실을 투영하거나, 현실에 맞서는 경우는 드물다. 천천히 죽어가고 있음을 알지만 애써 외면하고 자위하거나 차라리 목숨을 일찍 포기해버리는 것과 같다. 누구보다 음악의 메시지에, 나와 내 주변의 솔직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미미가 이 광경을 놓쳤을 리 없다. 팀의 1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 하필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쩌면 이들에게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자연사하자.” 곱씹을수록 참 재미있고 신기한 말이다. 알다시피 “죽자.”는 의미가 아니다. “당장 죽지는 말자.”는 뜻이다. 그런데 그 한 마디 안에 죽음에 대한 부정과 긍정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시점을 명시하지 않았는데 아득한 미래와 가까운 현재를 모두 포함하고 있기도 하다. 음악에 대한 얘기만이 아니다. 2018년 대한민국은 여전히 취업난에 힘겨워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동시에 노동에 고통스러워하며 너나 할 것 없이 퇴사를 꿈꾸기도 한다. 당연히 쉽사리 실천하지 못한다. 취업이 어려우니까. 그럼에도 노래에 참여한 양경수 작가는 나레이션을 빌어 당당하게 말한다. “아플 땐 의사보다 퇴사.” 물론 책임져주지는 않는다. 그러자 노래는 계속 해서 말한다. “뭐가 일어날지 걱정하지 말라.”고. 아니, “기대도 하지 말라.”고.
자연사를 가장한 출정식
당장의 죽음을 피하는 것은, 괴로움을 피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감내하는 것이기도 하다. 퇴사는 우리에게 당장의 평안과 만족을 줄지 모르지만 곧 불안과 빈곤도 함께 안겨준다. 따라서 이 노래의 캠페인은 1990년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통해 붐이 일었던 ‘카르페 디엠’처럼 “현재를 잡아라.”는 말이나 “인생은 한 번 뿐이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작금의 신조어 ‘욜로’와는 전혀 다른 의미임을 알 수 있다. 좋든 싫든, 자연사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다. 미미에게 있어, 음악인들에게 있어 죽음은, 음악을 놓는 것이고 사람들에게 완전히 잊혀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연사를 생각하는 것은, 지금 나의 의지로 하지 않을 뿐 언젠가 내가 음악을 놓을 수도 있고, 사람들에게 잊혀질 수도 있음을 인지하는 행위다. 내 음악과 나를 지우는 것에 대한 가정이다.
워낙 맑고 깨끗한 톤으로 노래하는 미미라지만 유독 이번 노래에서 더욱 귀여움이 묻어나는 것은 착각이 아니다. 직접 작곡한 흡사 동요 수준의 밝은 멜로디가 의도한 매력을 전한다. 편곡가이자 연주자, 프로듀서로 힘을 보탠 몬구는 미미의 의도대로 경쾌한 건반 반주에 천진난만한 코러스까지 얹어 순수한 이미지의 원형을 완성한다. 음악의 인상에 반하는 “우리, 자연사하자.”는 가사는 미미 특유의 블랙 코미디가 되고, 마치 주술적인 효과라도 얻으려는 것처럼 후렴구를 반복해 자연사, 곧 나 지우기를 연습함으로써 새로운 정체성과 생명력을 얻기도 한다. 이는 결국 “10년의 반환점을 돌아 나는 계속 해서 앞으로 나아가니 새로운 출발을 잘 부탁드린다.”는 특별한 약속과 과장이 없는 덤덤한 선언이자 실제로든 상징적으로든 당장의 죽음을 기다리는 이들에 대한 응원인 것이다. 요즘 세상에 퇴사 한 번이 끝이랴. 미미라는 이름 아래 우리들의 미래 미궁의 역사는 계속 해서 쓰이고 있다. 정해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 정병욱 / 대중음악평론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