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vid Garrett' [Caprice]
바이올리니스트 데이빗 가렛의 이력은 여느 아티스트들과 비교해도 유독 빛이 난다. 세상에 뛰어난 아티스트들은 많지만 13살 나이에 노란 딱지 ‘도이치 그라모폰’과 전속 계약을 맺은 후 지금까지 거의 매년 음반을 발매하고 있고 그 많은 앨범들이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1980년, 독일에서 태어난 데이빗 가렛은 20세기 바이올린의 역사라고 할 수 있는 이다 헨델과 현존하는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이자크 펄만, 세상을 떠난 거장 아이작 스턴 등 그야말로 전설적인 아티스트들의 가르침을 받았다. 누구나 입을 모아칭찬했던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출발한 그는 14살이 되던 해,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지휘로 모차르트 협주곡 음반을발표했고, 이듬해부터 베토벤, 바흐, 모차르트 소나타를 비롯해 여러 작품들을 블롬슈테트, 아바도, 메타 등 시대의 마에스트로와 함께 발표했다.
이 연주자에게는 앨범은 물론 공연에도 호평이 쏟아졌다. 대중들에게 크게 어필하는 스타급 남자 바이올리니스트 자리를 차지한, 그야말로 데이빗 가렛 시대 를 연 것이다. 그런데, 데이빗 가렛이 1994년부터 매해, 발표해 온 디스코그라피의 면면을 살펴보면 꾸준한 일탈이 있었다. 2007년, 그가프로듀싱한 첫 앨범 [Virtuoso] 에는 헤비메탈 밴드 '메탈리카' 의 히트곡 "Nothing Else Matters" 가 수록되어 있었고, 이듬해 발표한 앨범 [Encore] 에는 '마이클 잭슨' 의 "Smooth Criminal", '퀸' 의 "Who Wants To Live Forever" 등의 팝 레퍼토리가 클래식 곡과 함께 등장한다. 앨범 [Encore]는 그해 ECHO 클래식 어워드가 선정한 경계 없는 클래식 음악 (Classics without Borders) 부문 최고상을 수상했는데, 베르비에 페스티벌, 런던의 프롬스(Proms)까지 어마어마한 관객몰이에 성공한다.
[Rock Symphonies] (2011), [Music] (2012) 등 그가 발표한 크로스오버 앨범은 세계 각국 순위에서 골드, 플래티넘 기록을 경신하며 대성공을 거두고 있다. 보수적인 애호가 입장에서는 불편할지도 모르지만 가렛은 클래식 관객은 물론 편곡, 연주한 팝-크로스오버 레퍼토리에 열광한 팬들까지 거느리고 있는 셈이다. 21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연주자가 될 것이라는 마에스트로 주빈 메타의 예견처럼 데이빗 가렛은 영향력 있는 연주자로서 종횡무진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장르간의 경계를 오버랩시킨 크로스오버 음악은 오랜 시간을 거쳐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고전 음악에 비해 역사가 약하다.
유행을 타고 시대의 흐름과 함께 등장하고 없어지기 때문이다. 시류를 반영한 편곡과 해석에는 현재의 즐거움, 그가치만큼 짧고 굵은 인기를 누린다. 예전에 크로스오버는 ‘하등한 것’으로 치부되었다. 정면승부가 어려운 실력의 아티스트들이 크로스오버 활동을 통해 큰 무대에 서 왔고, 조악하기 이를 데 없는 편곡과 재해석이 원곡의 감동을 찌그러뜨렸기 때문이다. 그들이 얻어낸 값싼 인기와 균형을 잃은 대중들의 음악에 대한 인식도 장기적으로도 건강해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조수미의 Only Love나, 파바로티와 친구들 시리즈 등 최고 아티스트들의 ‘일탈’이 폭발적인 인기를 기록 하면서 이 분야의 경쟁도 치열해졌다.
재해석의 묘미를 얼마나 잘 살려내는가에 따라 대중들의 재평가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이런 흐름 속에 바이올리니스트 '데이빗 가렛' 이 쏟아내고 있는 크로스오버 행보는 어떻게 봐야할까? 가렛은 190cm가 넘는 큰 키에 잘생긴 얼굴, 스타일리쉬한 패션으로 한때 모델 활동도 했다. 바이올린에 재능을 타고 났지만 줄리아드 음악원 재학시절엔 작곡 콩쿨에서 우승한 이력도 있다. 가만히 보면, 하늘이 주신다는 그 타고난 것들은 '데이빗 가렛' 한 사람에게 좀 과하게 주어진 것 같다. 뮤직 비디오 시대에 태어난, 유년시절 팝의 전성시대를 통과해 온 덕일까. 그의 앨범에는 클래식 레퍼토리만이 아닌 비틀즈, 퀸, 레드 제플린, 에어로스미스, 건즈 앤 로지스, 너바나, 콜드플레이 등의 음악이 녹아 있다. 선택한 밴드의 색깔도 강하지만 선곡도 너바나의 Smells Like Teen Spirit, 퀸의 Bicycle Race 등 팝 씬에서도 역사와 전통, 이슈가 쎈 음악들이다. 여기에 일렉트로니카와 라틴, R&B까지 섭렵해녹이고 있으니, ‘뻔한’ 크로스오버 앨범이라고하기엔 너무나 ‘본격적’인 냄새가 난다.
클래식 악기로 팝 음악을 연주하려니 악기의 크로스오버는 당연히 일어난다. 각 악기의 주법을 연구해 클래식 패턴으로 소화해 온 가렛은, 같은 기타라도 이팩트 효과가 있는 부분을 살리기 위해 키보드 효과음과 비트를 위해 드럼을 대동하며 확실한 변화를 보여줬다. 요즘 인기있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 기존 가수들의 명곡을 재해석한 해석 점수가 크게 반영되고 감탄을 이끌어내는데, '데이빗 가렛' 의 행보를 그런 시각으로 본다면 이해하기 쉽지 않을까. 클래식 음악을 새로운시각에서 바라보려 노력하는 한편, 클래식 음악의 요소, 그 에너지는 유지한 채 팝을 소개하고 싶다는 것이 컨셉이다.컨셉과 취지를 뒷받침할만큼 연주와 해석이 좋아 지금까지 베스트셀러 앨범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 같다.
2014년 신보는 [Caprice] 다. 2012년 [Legacy] 앨범에서는 주재료가 팝을 기본으로 했다면, 이번 앨범은 클래식이 주재료다. 무엇보다 ‘바이올리니스트’의 색깔이 강한 레퍼토리가 많다. 앨범 제목이기도 한 [카프리스 (Caprice)] 의 사전적인 의미는 일정한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운 요소가 강한 기악곡을 말한다. 행동이나 태도의 갑작스러운 변화를 얘기할때도 카프리스 혹은 카프리치오 (Capricio)를 쓴다. 음악적으로는 선율의 재빠른 움직임과 즉흥적인 요소를 표현할때 많이 등장하는데, 이 단어를 가장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악기는 바로 바이올린이다.
앨범 전체의 중심을 잡고 있는 음악은 작곡가이자 기악 기교의 대표명사와 같은 인물, 니콜로 파가니니의 작품이다. 첫 곡 "카프리스 No.24" 부터 "라 캄파넬라 카프리스 No.5" , "바이올린 소나타 12번" , "베니스의 카니발" 을 비롯해 팝 가수 '푸시캣 돌스' 의 전 멤버 니콜 셰르징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Io ti penso amore" 까지 파가니니의 작품이 기초하고 있다. 파가니니 당시 사람들은 그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넘겨 뛰어난 작곡과 연주실력을 갖춘 것’이라고믿을 만큼 그의 기교와 연주는 사람의 혼을 빼앗는 듯하다. 한참 듣다보면 뭔가에 홀린 것 같은 테크닉은 피아노 음악에있어서 초절기교를 뽐내온 리스트조차 ‘피아노계의 파가니니’와 같은 인물이 되고자 파가니니의 작품을 기초로 한 피아노 작품을 만들었을만큼 강한 존재감을 갖고 있다.
이 앨범의 구성은 파가니니를 비롯해 기교로 무장한 작곡가로 대변되는 비에냐프스키의 카프리치오 타란텔라, 타르티니의 악마의 트릴 소나타 등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데이빗 가렛의 탄탄한 실력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여기에‘터키 행진곡’으로 더 잘 알려진 모차르트의 작품은 테마를 편곡해 "A La Turca" 라는 곡으로 재탄생했고, 러시아 전통춤곡을 기초로 한 ‘집시 댄스’와 남미풍의 경쾌한 편곡을 곁들인 파가니니의 ‘베니스의 카니발’이 앨범을 풍성하게 만든다. 그런가하면 이와는 반대로 로맨틱한 선율을 연주해 바이올린의 서정성을 부각시킨 작품도 곁들였다. 매력적인 보이스, 테너 안드레아 보첼리가 피처링한 "Ma dove sei" 와 담백한 선율 속에 긴 여운을 남기는 스카를라티의 "소나타 f단조 K.466" ,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테마, 로맨틱한’선율미를 대표하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2악장을 포함시켰다.
여기에 파가니니의 작품 중 처연한 멜로디로 가슴을 울리는 "소나타 12, e단조, Op.3" 이 등장한다. 이 곡은 드라마 ‘모래시계’ 배경음악으로도 등장했기 때문에 온 국민에게 매우 익숙한 멜로디라고 할 수 있지만 빠른 템포, 기교를 부각시키는 작품만 남겼을 것 같은 파가니니의 반전을 보여주는 매력적인 곡이다. 빠르거나 느리거나, 화려하거나 소박하거나 혹은 어떤 장르에도 구애받지 않는 행보로 시대의 아이콘이 되고 있는 데이빗가렛. 이것은 마치, 즉흥 연주를 좋아하고, 제자를 두지 않으며, 특이한 자세의 연주스타일로 기법은 물론 낭만주의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친 파가니니의 정체성을 보는 듯하다.
앨범 출시와 함께 영화 파가니니: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가 국내에 곧 개봉된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드라마 밀회 에서 배우 유아인이 가슴 설레게 매혹적이라는 것과 함께 그가 피아노 치는 연기를 얼마나 리얼하게, 잘했느냐가 큰 관심거리였다. 배우가 연기를 잘해도 그만큼 놀라운데, 영화 파가니니 에 출연하는 '데이빗 가렛' 의 신들린 연주, 연기를 확인해보는 것도 좋겠다. 앨범 [카프리스] 로 귀가 즐겁고 놀라웠다면, 스크린을 통해 다시 한번 놀랠 준비를 해야겠다. 음악은듣는 것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하지만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남자가 스크린에서 얼마나 매력적인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