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하' [사북늦봄]
빗물에 패인 자국 따라
까만 물 흐르는 길을
하느님도 걸어오실까요
골목길 돌고 돌아 산과 맞닿는 곳
앉은뱅이 두 칸 방 우리 집까지
하느님도 걸어오실까요
한밤중,
라면 두 개 싸들고
막장까지 가야 하는 아버지 길에
하느님은 정말로 함께 하실까요
– 임길택 시 ‘아버지 걸으시는 길을’ 중에서
박경하는 사북에서 살았다.
광산 갱도입구와 화약고를 지키는 경비원과 검탄원 일을 하셨던 아버지가 진폐증을 얻자 가족 모두가 사북을 떠날 때까지 30년 동안 그녀의 고향은 사북이었다.
사북초등학교에서 만난 그녀의 선생님은 시인 임길택. 사북풍경을 시로 읊은 임시인은 아이들에게 세상의 풍경을 시와 동화와 수필로 보여줬다. 그렇게 간직해왔던 제2의 고향 사북을 스승의 시에서 찾아 노래로 부르는 그녀, 시노래 가수 박경하이다.
2014년에 발표한 ‘아침숲’과 곧 발표할 2집 ‘사북늦봄’에 실린 ‘막장’과 ‘똥 누고 가는 새’가 스승인 임길택시인의 시다. 그녀는 어릴 적 검은 물이 흐르고 폐석탄으로 쌓은 검은 산을 보며 온통 회색의 공간이었던 사북에서 시의 영혼을 심어준 스승의 사랑에 드리는 헌사 같은 노래를 수십 년이 지나서 부른다.
그녀의 스승 임길택 시인은 이오덕 선생이 쓴 「탄광마을 아이들」 의 발문에서처럼 ‘당시 한국의 거의 모든 아이들이 다 잃어 가고 있는 순박한 삶과 마음을 잘 찾아내어 보여준’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훌륭한 교육자이자 작가였다.
사북이라는 막장의 도시에서 살았던 그녀가 가슴 속에 노래를 품고 시노래 가수로 서게 된 것도 어린 시절 서정을 불어넣어준 스승 덕분일 것이다.
1997년 폐암으로 세상을 뜬 스승과 진폐증으로 퇴직 후 평생 병석에 계신 아버지가 같은 아픔이라는 것도 그녀의 감성을 이끈 요소 중 하나일 것이다.
‘사북 늦봄’이라는 앨범의 제목은 어쩌면 1997년 신문의 부고란에서 스승의 부고를 본 후 다시는 스승을 볼 수 없다는 슬픔 그리고 가난하고 춥고 어두웠지만 꿈을 쥐어준 사북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을 스스로에게 각인시키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의 사북은 사북항쟁의 중심이었던 사북광업소와 동원탄좌 복지회관, 안경다리, 사북역 등 추억의 자락들을 내국인카지노 시설로 내줬다. 그녀는 이런 현실에 대한 아쉬움을 2집 앨범 ‘사북늦봄’에서 토해낼 것이다.
2집에 수록된 곡들은 자작시 ‘다시 사북에서’를 비롯해 스승의 시 ‘똥 누고 가는 새’와 ‘막장(원제 – 아버지 걸으시는 길을)’, 도종환 시인의 ‘돌아가는 꽃’, 류근 시인의 ‘폭설’, 가수이자 시인인 김현성 씨의 ‘지금은 그대와 차를 마실 때’, 이제하 작가의 ‘어느 나무 아래서’, 나태주 시인의 ‘꽃’, 복효근 시인의 ‘목련에게 미안하다’, 함순례 시인의 ‘밥한번 먹자’, 최정란 시인의 ‘간이역에서’, 우은숙 시인의 ‘정선아리랑’, 이가희 시인의 ‘나를 발효시킨다’ 등 총 14곡이다. 도종환 시인의 시 ‘돌아가는 꽃’(백창우 곡)은 고 김광석이 부르기로 했으나 갑작스런 부고로 미발표작이 됐던 곡이기도 하다. 글. 권미강 시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