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발굴하는 [고고학자]의 노래
'9와 숫자들'의 리더 '9(본명 송재경)'가
밴드 데뷔 9년만이자 생애 처음으로 발표하는 솔로 앨범 '고고학자'
<9의 서문>
고고학은 생각할 考에 옛 古 자를 쓴다.
그것은 글자 그대로 '옛날을 생각하는' 일이다.
고고학의 시작은 발굴이다.
고고학자들은 뭇사람이 관심을 두지 않는 작은 흔적에 몰두한다.
그들은 기록되거나 기억되지 못하고 사라진 시대의 파편을 찾기 위해 억겁의 퇴적층을 파고든다.
발굴에는 섬세한 손길과 침착한 마음이 요구된다.
보존 상태가 위태로운 유물들이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파편들이 흩어져있는 맥락 자체가 복원을 위한 핵심 단서라는 점이다.
고고학의 목표는 복원이다.
발굴된 파편들을 조합하여 유물의 원형을 추정하는 것이 우선이지만, 이를 통해 당대의 생활상과 사건 등 역사를 복원해내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복원은 결코 완벽할 수 없고, 완벽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단지 과거를 이해하려는 시도이자, 하나의 낭만적인 상상이다.
고고학을 통해 얻은 과거에 대한 이해와 공감은 우리의 오늘과 내일에 대한 증거이자 원동력이 되어준다.
우리는 삶의 모든 순간을 기록하고 기억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도 때로는 고고학자처럼 추억을 발굴하여 저마다의 낭만적인 상상으로 지나간 시간을 복원해내야 한다.
삶의 모든 순간은 결국 기억으로만 남게 된다.
그런 면에서 고고학은 삶을 지켜내는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앨범 '고고학자'의 노래들은, 누군가의 아름다운 삶을 위한 고고학에 하나의 파편이 되고자 세상에 나왔다.
<전문가 리뷰(음악평론가 김학선)>
13년 전, '9'란 이름을 처음 보았다. 풋풋한 대학생 넷이 참여한 앨범 관악청년포크협의회에서 '9'의 노래는 돋보였다. "간격은 여전히 한 뼘"이라는 비범한 제목의 노래에서 '9'는 마음에 두고 있는 이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여전히 한 뼘의 거리를 유지하는 소심한 마음을 노래했다. 영화는 끝나 가는데 네 손을 못 잡은 한 편 / 영화는 끝나 가는데 간격은 여전히 한 뼘
그로부터 13년이 지났다. 관악청년포크협의회에 참여한 누군가는 지금 ‘브로콜리 너마저'의 일원이 됐고, 또 다른 누군가는 '생각의 여름'이란 이름으로 노래하고 있다. '9'는 '그림자궁전'이라는 멋진 밴드를 거쳐 '9와 숫자들'을 이끌고 있다. 그때 손을 잡지 못해 어쩔 줄 모르던 학생은 이제 완연한 성인이 됐지만 크게 변한 것은 없어 보인다. 새 노래 "손금"에서 그는 여전한 감성으로 노래하고 있다. 손 한 번 잡아보고 싶어서 수작 부리는 게 아니에요 / 내게로 와요 / 착하고 따뜻한 게 제일이에요 / 날 믿어줘요
팝의 관점에서 '9와 숫자들'만큼 믿음직스러운 이름은 없다. 4장의 앨범을 내는 동안 그들은 단 한 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었다. 그 중심에 '9'가 있다. 풀어 쓰자면 그는 늘 훌륭한 가사를 훌륭한 악곡에 붙여 노래할 줄 알았다. 결코 얕지 않으면서 대중적인 감각도 갖고 있는 그의 노래는 늘 반짝였다. 그런 그가 숫자들을 잠시 떼어두고 자신의 솔로 앨범을 만들었다. 제목은 [고고학자]다.
'9와 숫자들', 그리고 '9'의 앨범을 번갈아 가며 듣는다. 왠지 둘의 차이를 얘기해야만 할 것 같다. 다시 [고고학자]의 수록곡인 "손금"으로 돌아간다. '차혜경'의 호른이 고즈넉하게 흐르는 이 노래는 '9와 숫자들'에서 쉽게 들을 수 없는 스타일의 노래다. '김진아'의 건반과 '9'의 보컬만으로 진행되는 첫 곡 "방공호" 역시 마찬가지다. 또 숫자들 대신 참여한 '홍갑'(기타), '김남윤'(베이스), '이기태'(드럼) 같은 연주자들의 존재를 꺼내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둘의 차이를 찾다가 그러지 않기로 했다. [고고학자]를 반복해 듣다 문득 9의 마음이 궁금해졌다. 그도 강박적으로 '9와 숫자들'과 차이를 두려 애썼을까 생각이 들었고, 그러지 않았을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고고학자]에는 앞서 언급한 노래와 다르게 '9와 숫자들' 같은 노래도 들어있다. 그저 자연스럽게, "간격은 여전히 한 뼘"을 부르던 그때부터 지금까지 '9', 즉 '송재경'의 성장과 마음을 담았을 뿐이다. 그 마음을 담는 그릇의 모양을 억지스레 바꾸려 하지 않았다.
여전히 나와 너와 그대가 등장하는 노랫말에는 좀 더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9'의 애틋한 마음과 상상과 추억이 각 구절마다 새겨져 있고, 이 구절은 '9'의 입을 통해 서정적인 멜로디로 표현된다. 그 안에 문학소년 '송재경'의 모습이 보이고, 스티로폼으로 지은 집도 보인다. 착하고 따뜻한 게 제일이라는 그 마음처럼 '9'의 세계는 아늑한 환상 같기도 하고,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는 향수 같기도 하다.
앨범의 마지막 노래 "고고학자"를 듣는다. 노래 가사를 귀에 담으며 '9'라는 "고고학자"를 떠올렸다. 그의 새 앨범에는 은밀한 비밀과 신비한 여행과 잊혀진 추억이 가득하다. 그는 그것들을 탐구해 새벽하늘 별과 같이, 보이지 않게 빛을 내는 노래로 만들었다. 그 노래들이 [고고학자]에서 시종일관 서로서로 반짝거리며 빛을 낸다. 고고하게, 도도하게, 담담하게, 우아하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