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구' 데뷔 앨범 [bleu]
사람과 가장 닮아 있는 음악
바야흐로 인공지능의 시대가 도래했다.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많은 것들이 어제보다 빠르고, 편리하게 소비되고 있고, 그로 인해 사람이 설 자리는 점점 지워지고 있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인공지능은 스스로 음악을 만들고, 그렇게 만든 노래를 직접 들려주기까지 한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SM 엔터테인먼트는 인공지능이 미래 음악시장을 지배할 거라 예견하고 있다. 그 말처럼 미래에는 정말 사람의 음악이 없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이것에 가장 대척점에 있는 건 무엇일까? 사람과 가장 닮아 있는 음악은 무엇일까? 모든 것이 그대로 드러나는 흙을 닮은 음악. 단순하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포크 음악이 아닐까? 여기, 시처럼 서정적인 노랫말과 숨 쉬듯 한없이 섬세한 떨림으로 노래하는 포크 뮤지션이 있다. 모든 게 변해도, 변치 않고 끝까지 남아서 노래할 것 같은 한 남자가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한국 포크계의 파수꾼 강태구
강태구는 2013년 아를과 함께 스플릿 앨범 [들]을 발표했다. 나는 이 앨범이 안개를 머금은 숲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강태구의 목소리는 낮고, 슬픈데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서 노래들을 듣고 있으면 어딘가에서 바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강원도의 통나무집에서 녹음된 이 앨범은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며,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렸지만, 앨범의 완성도에 비해 좀처럼 드러나진 않았다. 오히려 곽진언, 정승환 등이 앨범에 수록된 ‘아름다운 건’, ‘밤하늘’ 같은 노래를 커버 하며 사람들에게 이 노래의 주인공이 따로 있음을 알렸다. 얼마 전 타계한 한국 포크계의 큰 별 조동진, 장필순, 윤영배, 이규호 등과 함께 푸른곰팡이 소속으로 있던 강태구는 군 제대 후, 제주도에 살며 묵묵히 곡을 쓰고, 공연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정규 1집 [bleu]를 발표했다.
깊고 푸른 앨범 [bleu], 그리고 그랑블루
제주도의 이름 없는 숲과 해변에서 쓴 곡들로 채워진 이 앨범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나무, 바람, 흙, 바다, 숲 등이 연상되는 앨범 [bleu]는 제주도와 강태구 자신을 고스란히 닮아있다. 깊고, 푸르렀고, 담백했다. 지친 자신을 위로하는 ‘Passenger’로 시작한 앨범은 “니가 나를 응시하던 몇 초의 순간만이 평생처럼 남았네.”라는 가사를 나지막이 읊조리며 고조되는 타이틀곡 ‘그랑블루’, 3번 트랙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소리’와 아이리쉬 풍의 찬가 ‘둘’을 거쳐, 5번 트랙 ‘밤의 끝’으로 이어진다. 담담한 강태구의 목소리와 잘 마른 어쿠스틱 기타는 숨을 쉬듯 차분히 느림을 반복한다. 노래들은 심오한 단어들을 나열하지 않고도 듣는 이를 천천히 납득 시킨다. 강혜인의 바이올린과 코러스는 포크 음악의 특성상 자칫 투박하고, 지루해질 수 있는 부분들을 한층 더 세련되게 엮어내고 있다. 아름답게 이끄는 바이올린 선율은 침잠하는 무거운 것들을 붙들고, 계속해서 위로 끌어올린다. 그렇게 앨범은 6번 트랙 ‘아름다운 꿈’과 그리움을 노래한 피아노곡 ‘내 방 가을’로 마무리한다. 노래를 다 듣고 한동안 여운이 가시질 않아 잠시 마음을 고를 시간이 필요했다. 시간이 지나도 아름다울 이 보석 같은 앨범을 나는 곁에 두고 오랫동안 응시하고 싶어졌다. 깊고, 푸른 앨범 [bleu], 가을 햇살이 들어오는 텅 빈 방에서 혼자 ‘아름다운 꿈’의 멜로디를 중얼거렸다. “아름다운 꿈을 꾸었네. 두 번 다시 없을 꿈. 아름다운 꿈에서 깨어 다시 혼자가 되었네.” 다시 말하지만 이 앨범은 축복이다.
글 오주환(ADOY)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