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신가영' 단편집 [어디에 있을까]
그녀는 문득, 그날 밤을 떠올렸다. 빛이라곤 하나 없이 칠흑같던 밤이었다. 나아가는 길 위에 자신의 발 조차 보이지 않아 더듬거려야했다. 일정하게 밀려오는 파도소리가 멀리서 옅게 들렸고, 눈 앞에 놓여진 어둠 속엔 고요만이 존재했다. 캄캄해서 빛나던, 속삭여도 충분히 아름다운 밤이었다.
사랑, 사랑, 사랑. 그녀는 이미 사랑이라면 진절머리가 나는 사람이었다.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다가도 모래알처럼 옅은 흔적만 남기고 손을 빠져나가는 것이 반복됐다. 이따금 찾아오는 길고 깊은 우울에 그녀는 사람들에겐 원인불명이라 말했지만, 사실은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 모든 이유임을 알고 있었다.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이 거센 파도가 되어 자신을 뒤덮으면 그녀는 눈물이 났다. 처음엔 혼자 남은 빈 집에서, 다음엔 만취해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 밤의 골목길에서 그리고는 종종, 집에 돌아오는 길의 어딘가에서. 도시의 밤은 너무나 밝아 우는 자신을 어디에도 숨길 수 없었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사소한 것들이었다. 퇴근길에 시간을 맞춰 영화를 한 편 보기도 하고, 색깔이 좋은 스웨터를 발견하면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던가 하는. 우리라는 이름에 묶여 같이 숨을 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그런 사이같은. 생각했다, 뭐그리 대단한 것들이라고 사랑은 자꾸만 나를 외면하는 걸까-하고. 나와 같은 사람 어디에 있을까, 나를 찾고 있진 않을까. 너와 같은 사람 어디에 있을까. 혹시 내가 늦어 다른 사랑 하고 있을까.
오늘 밤은 달이 없다. 먹먹해서 빛나는 밤이다. 나는 문득, 그날 밤을 떠올린다. 이런 눈부신 어둠 속이라면 마음을 단단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한 번 누구보다 더 뜨겁게-라고. 그리고 나는 알고 있다. 여기 지금 어딘가에 사랑이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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