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월'의 2017년 라이브를 모은 앨범 [7102] 발매
김사월의 현재를 함께 하는 이들과 그녀의 변화를 알고자 하는 모두를 위한 앨범
과거의 '지금'을 향한 '지금'의 담대한 인사
"달아", "너무 많은 연애" 등 10곡의 신곡 수록. 기존곡 포함 총 12곡 수록
김사월 [7102]
시작은 단 한 마디였다. '라이브는 한 번에 느는 게 아니야'. 동료 음악가가 스치듯 건넨 이 한 마디에 김사월의 첫 라이브 앨범 [7102]의 움이 텄다. 부연도 있었다. '음악이 좋아져도 라이브는 나빠질 수 있고, 음악이 나빠져도 라이브는 좋아질 수도 있어'. 어딘가 선문답처럼 들리는 이 문장은 앨범의 구체적인 구상에 가지와 잎새를 드리웠다.
기획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라이브를 반갑게 만은 여기지 못했던 음악가의 계획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었다. 늦여름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고 있던 8월 말에서 가을 초입에 놓인 10월 초까지 라이브 앨범을 위한 총 5번의 공연이 열렸다. 그 중에는 한잔의 룰루랄라나 벨로주, 재미공작소처럼 김사월이 개인적으로 가깝게 느끼는 익숙한 장소들도 있었고, 그에 비해 다소 도전적인 장소라 할 수 있는 신촌전자도 있었다. 그의 고향 대구를 대표하는 클럽 헤비처럼 특별한 의미를 담은 곳도 준비되었다. 어색하면 어색한 대로 또 틀리면 틀리는 대로 김사월의 멘트와 관객들의 웃음, 작은 대화까지도 모두 기록되었다. 그 모두가 김사월의 '지금'이었다.
'지금'은 [7102]를 이야기할 때 '라이브'만큼이나 중요한 단어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아닌, 김사월의 바로 '지금'을 담는 것. 서기 2017년, 방에서 노래를 만들고 그것을 동료들과 완성하고 가끔은 관객 앞에서 노래하는 그의 지금을 이루는 한 방울 한 방울이 모인 앨범이 필요했다. 준비 기간 중 전해진 한 동료 밴드의 갑작스런 해산소식은 앨범 완성의 의지를 더욱 강고히 했다. 당장 내일이라도 원하면 언제든 볼 수 있다는 생각, 그 생각이 얼마나 무상한 것인지가 피부로 와 닿았다. 라이브 앨범이라면 으레 예상하기 쉬운 기존 곡들이나 커버곡이 아닌 최근에 쓰여진 새 노래 위주로 플레이 리스트를 구성한 가장 큰 이유도 바로 그것이었다. [7102]에 담는 것은 가능한 그리고 최대한 지금의 김사월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이어야 했다. 만일 그게 어렵다면 최소한 지금의 김사월을 있게 만든 것만을 모은 모음집이어야 했다.
그래서 앨범은 아직은 다소 처연하다. 라이브에 대한 자각에 새롭게 눈 뜬,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왕성한 열정을 품고 있는 음악가의 것이라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이것은 모든 일의 원인을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찾고, 내가 아닌 누군가 보다는 내 안의 또 다른 누군가와 소통하는 것이 더 익숙한 이의 타고난 성정에서 비롯된 사정이다. 이제는 조금 달라졌지만, 대부분이 빛을 찾아 헤매던 시절 만들어진 노래들인 탓이다.
흥미로운 건 그런 앨범의 첫 곡이 '달아'라는 점이다. 노래는 '슬픈 생각이 지겹다'며 '모든 것이 가능하다 믿고 싶다' 토로한다. 김사월이 지금까지 만들었던 어떤 곡보다 단호한 희망의 선언이다. 이후 이어지는 '너무 많은 연애'에서 앵콜곡 '8월 밤의 고백'을 제외한 실질적 마지막 곡 '악취'에 이르기까지, 김사월은 점점 고립되고 메말라 간다. 원한 것은 사랑뿐이었건만 결국 상대의 목을 조르게 되고 마는 관계('너무 많은 연애'), 내가 죽는 방법을 물어도 줄곧 통화 중 신호만 보내는 너의 전화('어떤 호텔'), 결국 불쌍한 사람은 나 뿐일 수신자 없음 신호('전화'), 그리고 혀를 뽑고 손목을 자르고 싶은 누군가('악취')에 이르기까지. 끝끝내 파멸에 이르고 마는 잔혹한 서사를 끝까지 두 눈 부릅뜨고 바라볼 수 있는 건 실은 이것이 시간의 역순이기 때문이다. 김사월의 '지금'에 가장 가까운 노래로 시작한 앨범은 마치 오래된 영화 속 해피엔딩을 위해 빠르게 되감는 필름처럼 새롭게 열린 문을 향해 힘차게 달려간다. 내가 낳은 것이기에 더없이 소중한 하지만 이제는 털어내도 좋을, 과거의 '지금'을 향한 '지금'의 담대한 인사다.
크기도 형태도 전혀 다른 장소들에서 녹음한 음원을 모았지만 전체적 청취에 아무런 부담이 없는 점도 앨범 [7102]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다. 각 공간에서 활약하고 있는 숙련된 엔지니어들과 믹싱작업에 참여한 김해원의 꼼꼼함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절반 이상이 새 노래지만 정규 앨범은 아닌, 라이브 앨범이지만 스튜디오 앨범에 가까울 정도로 잘 정제된 참으로 이상하고 매력적인 앨범이다. 가만히 듣다 보면 문득 노래를 부르고 있는 사람과 그를 연모하는 사람들의 눈망울 하나 하나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길을 나서자. 더 어두워지기 전에' ('아주 추운 곳에 가서야만 쉴 수 있는 사람') 그 따스한 눈빛들 사이를 걷는 김사월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고 경쾌하다.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
작가 노트
이 앨범을 만들게 된 이유는 우리가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을 추억할 수 있는 증표같은 것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아끼는 열 두 개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공간 다섯 곳에서 공연하고 녹음했습니다.
1번 트랙 '달아'는 <7102>의 결말인 셈입니다. 그 결말까지 겪은 슬프고 사랑스러운 이야기들을 여러분과 함께 듣고 싶습니다.
라이브에 와 주셨던 관객 분들, 공간 관계자분들, 함께해준 친구들, 멀리서 응원해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