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쳐 축 쳐져 있는 등을 토닥거리는 노래, 치유와 위로로 함축될 수 없는 그녀의 이야기
싱어송라이터 한채윤 그녀의 두 번째 봄 [느리게 피어나는 꽃]
지난 해 3월 한채윤 첫 번째 미니앨범 [너무 흔한 이야기]에 서툴지만 진심이 담긴 노래들을 담아 차분히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그녀가 2014년 봄, 또 하나의 미니 앨범 [느리게 피어나는 꽃]을 들고 우리를 찾아 왔다.
'봄이 되면 꽃이 피잖아요. 라디오에서는 매일 "벚꽃 엔딩"이 흐르고. 그런데 어느 순간 꽃이 사람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저 꽃들은 저렇게 활짝 피어서 예쁜 모습도 뽐내고 사랑도 받고 그러는데 내 꽃은 언제 필지, 피어나긴 하는 건지 답답하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하고. 곡을 쓰는데 그게 다 묻어나더라고요. 그런데 늘 결론은 희망이었어요. 다 잘 될 거라고 스스로에게 하던 이야기들을 모아 앨범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지쳐서 축 쳐져 있는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는 그런 노래들 이예요.' 다시 찾아온 봄. 바람대로 그녀의 노래들이 날개를 달아 희망의 꽃씨를 멀리까지 퍼트렸으면 한다. - 치유와 위로로 함축될 수 없는 그녀의 이야기, 한채윤 -
만화를 원작으로 한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 극 중 등장인물인 무명 엔카가수 치도리 미유키는 노래가 하고 싶어 매일 밤 노래방에서 노래를 하고 심야식당을 찾아가 네코맘마(고양이밥이라는 뜻의 간단한 일본 가정식)로 허기를 달랜다. 극 중 '네코맘마'는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았던 치도리 미유키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메뉴를 넘어 살벌한 현실에서 표류하고 있는 자신을 위로하는 온기였으며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비극을 앞두고 가장 그리워한 대상이었다.
'심야식당’에선 삶의 마이너들이 소박한 음식을 먹으며 꿈과 상처를 나누죠. 저는 제가 대단한 줄 알았어요. 한데 딱 '88만원 세대'로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더라고요. - 쿠키뉴스 인터뷰 중 -
한국에서 각색된 창작 뮤지컬 '심야식당'에서 치도리 미유키를 연기했던 배우겸 싱어송라이터 한채윤이 주목 받을 수 있었던 동력은 극 중의 그녀와 같은 '마이너 시절'을 겪으며 음악이라는 '네코맘마'를 접한 경험에서 시작된다. 배우와 가수로서 한채윤은 20대 대부분의 시간을 목표와 좌절 사이에서 보내왔다. 공들여 준비했던 가수 데뷔 무대도, 오디션을 통해 어렵게 잡았던 영화와 연극 출연의 기회들도 그녀의 치열함과 간절함과는 상관없이 엎어지기 일수였고 여러 편의 단편 영화에, 그리고 다수의 영화와 드라마 작은 역할로 출연하긴 했지만 여전히 그녀는 '잘 안 팔리는 배우' 였다.
자신이 누구인지 찾아보겠다고 가진 돈을 탈탈 털어 떠난 파리여행에서 그녀는 애초 계획이었던 한 달을 훌쩍 넘긴 반년 동안 골목 골목을 걷고 또 걸으며 수많은 질문 거듭 던진 끝에 '나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사람’ 이라는 결론을 가지고 돌아왔다. '잘 안 팔리는 배우'로 지내며 넘쳐나는 시간 동안 기타, 피아노, 노래를 배웠다는 그녀는 '이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 해서 어느 날부터인가 곡을 쓰기 시작했다. 힘든 시간을 보내며 끊임없이 던져왔던 질문은 노랫말이, 조근조근한 목소리는 멜로디가 되어 아무렇게나 잡은 코드위로 흘러갔고 하나 둘씩 완성해온 노래들은 첫 EP앨범 [너무 흔한 이야기]로 엮여 많은 사람들과 꿈과 상처를 나눴다.
한채윤의 음악은 신선함을 무기로 대중에게 접근 할 정도로 새로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디 씬을 중심으로 열풍처럼 번져나가고 있는 어쿠스틱 '힐링' 음악의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외형을 띄고 있으며, 그럼에도 그녀의 음악이 주목될만한 이유는 듣는 이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고 위로하는 듯한 따뜻함과 '만나고, 알고, 사랑하고, 그리고 이별하는 모든 인간의 공통된 슬픈 이야기'를 편안하게 풀어내는 통찰력에 있다. '서툴지만 아픔이 느껴지고 때론 미소가 지어지는 음악을 만들고 싶다'라는 바람으로 그녀가 손수 정성껏 지어온 노래들, '마이너 시절'을 통해 인큐베이팅을 거친 세심함이 당신의 고단한 저녁밥상에 오를 따뜻한 '네코맘마'가 되길 바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