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얼', 자신의 피크를 넘보다
팔세토, 그 경건한 소구 [Gloria]
'나얼'의 두 번째 정규 앨범 [Sound Doctrine]의 두 번째 싱글이 커트되었다. 1976년 히트한 인챈트먼트(Enchantment)의 곡, "Gloria"의 리메이크 곡이 두 번째 싱글로 낙점되었다.
첫 싱글인 [기억의 빈자리]가 대중을 배려한 싱글이라면, 두 번째 싱글 [Gloria]는 '나얼' 스스로의 욕심이 반영된 곡이라 할 수 있다. 우선 영어 가사 그대로 가창한 점이 그러하며, 1976년 원곡의 느낌을 그대로 살렸다는 점 또한 그러하다. '나얼'은 자신의 앨범에 왜 40년 전 중박 히트곡을 그대로 소환했을까?
인챈트먼트의 "Gloria"를 리메이크한 이유는 네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소울 음악에 대한 열정과 오마쥬를 자신의 앨범에 온전히 담아내고 싶었다. 둘째, 동양인 소울 싱어로서의 의미있는 도전을 보여주고 싶었다. 셋째, 1996년 제시 파웰에 의해 단 한 번만 리메이크 된 리메이크의 희소성. 그리고 마지막이며 결정적인 이유는 이 곡이 가진 엄청난 높이와 테크닉이다. 절정의 고음을 자랑하는 '나얼'에게도 도전해보고 싶은 숨 막히는 고음. 그 고음의 선을 동일하게 오르내려보고자 하는 욕구는 누구보다 '나얼'이기에 더 강하게 일어났을 것으로 보인다. 흑인들만이 구사할 수 있다고 인식되는 현란한 보컬 테크닉 또한 그의 소울을 향한 욕구를 강하게 자극했을 것이다.
이번 리메이크의 핵심적인 특징은 원곡을 그대로 살려서 불렀다는 점이다. 연주까지도 원곡의 악보를 그대로 카피했으며, '나얼'도 원곡을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의 음으로 가창했다. 관계자에 따르면 '나얼'이 녹음 과정에서 이렇게 힘들어 한 걸 본 것이 처음이라고 하니, 이 곡을 선택한 '나얼'의 목적과 곡을 완성했을 때 마주했을 성취감을 짐작해볼 만하다.
원곡의 느낌을 그대로 살렸기에 원곡 특유의 화려한 애드립도 그대로 재연되었다. 첫 싱글인 [기억의 빈자리]에 '나얼' 특유의 폭발적 애드립이 등장하지 않아 아쉬움을 느꼈던 팬들에게는 이번 곡에서 겪은 '나얼'의 고통이 너무나 반갑게 다가갈 듯하다. 진성의 폭 넓은 음역대와 팔세토를 격정적으로 소화한 '나얼'의 이번 가창은 스스로의 자격을 증명해 보이기에 충분해 보인다.
곡에서 느껴지는 또 하나의 특징은 경건함이다. "Gloria(영광의 찬가)"라는 제목 때문에도 그러할 수 있지만 실제 곡의 가사는 사랑하는 여인 '글로리아'에게 애절하게 어필하는 내용이기에 종교적인 접근점은 찾기 어렵다. 그럼에도, 따뜻하고 차분한 곡의 분위기에 얹어진 '나얼'의 고음은 애절함보다 경건함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이러한 곡의 경건함은 이 곡이 12월에 싱글로 먼저 발매되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다. 겨울 '홀리데이 시즌'에 잘 어울리는 곡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이번 싱글 음반에는 오리지널 버전과 함께 "Year End Version"이 수록되었다. 예전 식으로 따지면 'B-side' 곡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꼭 눈여겨봐야 할 곡이다. 오리지널 버전에 코러스로 참여한 브라운아이드소울 멤버들이 "Year End Version"에서는 코러스를 넘어 R&B 아카펠라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곡의 원작자들이 원곡 훼손을 문제 삼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오히려 인챈트먼트의 원작자들은 굉장히 만족스러워하며 곡의 퀄리티에 감사를 전했다는 후문이다.
영어 가창의 노래가 국내에서 어떤 대중적 평가를 받을지는 미지수다. 그럼에도 이번 싱글이 반가운 이유는 많다. '나얼' 가창력의 정점을 제대로 접할 수 있다는 점, 브라운아이드소울을 오랜만에 만날 수 있다는 점, 올 겨울을 조금 더 따뜻한 감성으로 이겨나갈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다가올 정규 앨범의 음악적 사이즈를 가늠해 볼 수 있다는 점이 그러하다. (글/대중음악 평론가 이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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