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STAGE. 새로운 연(緣)의 유혹
해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일 가운데 새로운 인연 만들기가 있다. 나의 삶과 아무런 접점도 없던 누군가를 알게 되고 마음을 나누고 끝끝내 받아들이는 것. 나이가 들수록 굳어가는 머리와 심장, 늘어가는 상처 탓에 도전의 벽은 점점 높아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한다. 아마도 그로 인해 느끼는 행복과 희열의 크기가 어려움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새로운 음악을 만나는 일도 그렇다. 나이가 들수록 더디고 무뎌지는 촉에 괜스레 쓸쓸해지다가도, 그 허전함 사이를 몰래 비집고 들어오는 한 줄기 멜로디에 다시 멈춘 꿈을 꾸어보는 것. 특히 음악이 다른 어떤 대중매체 보다 한 사람의 우주와 세계관을 그대로 담을 수 있는 그릇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만큼 잘 어울리는 한 쌍의 평행우주가 또 있을까 싶어진다. 당신과 새로운 연을 맺기 위해 위해 밤낮없이 노래하고 있는 목소리 하나가 여기 있다. 프로듀싱에서 아트 디렉팅까지 혼자 힘으로 뚝딱 해내는 싱어송라이터 '예서'다.
'예서'의 음악은 비교적 친숙하다. 이름과 스타일은 아직 조금 낯설지 몰라도, 그 안에 담긴 감성이나 형식은 우리에게 꽤나 익숙한 인상을 전한다. 대학 휴학 후 우연히 접하게 된 개러지 밴드와 로직을 통해 일렉트로니카 음악의 세계에 처음 발을 들인 예서의 음악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전자음악가들의 음악과는 사뭇 다른 위치에 놓여있다. 예서에게 있어 일렉트로니카는 자신이 만든 음악을 세상에 유효한 형태로 내놓기 위해 선택한 외피일 뿐, 내부는 자신의 우주를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애쓰는 여타 싱어송라이터들과의 염원이 그린 것과 똑같은 궤적을 그리고 있다. 일렉트로니카가 쉽게 연상시키는 DJ 등과는 거리가 있는, 오히려 팝이나 R&B에 가까운 노래들을 만들고 부르는 음악가라는 수식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예서'를 이야기하며 일렉트로니카를 아예 빼버린다면 그것은 그대로 섭섭한 일이다. 스물의 우울이 만든 강 위에서 우연히 잡은 동아줄이라도, 그것이 지금을 만들었다면 그것만으로 운명인 셈이다. 시작은 우연이었지만 거듭된 도전과 쌓여가는 성공사례들 속 '예서'는 어느새 한국 일렉트로닉 신에서 꽤나 주목받는 싱어송라이터 겸 프로듀서가 되어 있었다. 음악과 음반과 관련된 모든 것을 자신의 지휘 아래 놓고자 하는 의지도 강했다. 어디서나 자신을 꼭 프로듀서로 지칭하는 데에서도 그런 굳은 심지가 느껴진다. 노래하는 여성이라 자신을 소개했을 때 버릇처럼 따라붙던 그럼 곡은 누가 쓰냐, 프로듀싱은 누가 하냐던 질문은 이 버릇 하나로 원천봉쇄되었다. 당당하게 내 건 이름표를 뒷받침하기 위해 그는 현재 실제로 작사, 작곡, 편곡, 프로듀싱에서 아트 디렉팅까지 모두 자신의 힘만으로 해내고 있다. 첫 싱글 [Let It All Go]부터 이어온 일러스트레이터 'Yeageelim'와의 작업은 지금도 예서의 음악을 이해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요소로 남았다.
온스테이지를 통해 선보이는 세 곡은 각각 공개 시기도 성격도 다르다. 'IMLAY'의 리믹스 작업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싱글 "Bud", 첫 EP의 타이틀곡이었던 "Deeper Than Love", 그리고 신곡 "Unkind"가 밴드 셋으로 새롭게 편곡되었다. 화려한 영상과 함께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DJ 셋을 보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지만, 공연과 촬영을 위해 새롭게 꾸린 밴드와 '예서'가 영상에 녹여내는 능숙한 합을 보고 있자니 앞으로 그의 음악을 보다 다양한 형태로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분 좋은 기대가 조금씩 앞서기 시작한다. 당장이라도 스러질 듯 여리디여리지만 결코 꺾이지 않을 매혹적인 소리들. 당신이 지금 이곳에서 만날 새로운 연(緣)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