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STAGE. 수수께끼 별에서 온 음악왕
지난해, 무려 8년 만에 발매된 '전자양'의 새 앨범을 소개하며 '전자양식-포크-일렉트로-노이즈-펑크'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다. 당연히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누구도 인정한 적 없는, 그저 느낀 대로 누덕누덕 기운 말이었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앨범을 수십 번 고쳐 들으며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봐도 도무지 평범한 언어로는 풀어낼 수 없는 요소들의 조합이었다. 어린아이처럼 장난스레 발을 쿵쿵 구르다 불쑥 진지한 메시지를 들이대는, 들릴 듯 말 듯 속삭이다가는 갑작스레 귀가 멀도록 커다란 소리를 내지르는, 단 5초 뒤도 예측하기 힘든 변화무쌍한 노래들. 롤러코스터라도 탄 양 한 순간도 쉴 틈 없이 낯선 단어, 낯선 멜로디, 낯선 구성이 쏟아졌다. 사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15년 전 우리 앞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부터, '전자양'의 음악은 늘 그렇게 수수께끼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새 15년을 꽉 채운 '전자양'의 활동기는 크게 세 파트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건 아마도 1기, '소년 전자양' 시절일 것이다. 2001년 [Day Is Far Too Long]이라는 묘한 제목의 오렌지 빛 앨범을 내놓고 조심스레 활동을 시작하던 시기. 몽환적이고 중성적인 목소리와 하필 '양'이 붙은 이름 탓에 '여성 싱어송라이터 아니냐'는 오해도 종종 받던 바로 그 시절이다. 빈도수는 잦지 않았지만 홍대 곳곳에서 왕왕 발견되던 그는, 언제나 자신의 몸통만한 기타를 둥그렇게 안아 메고 머리 위 드리워진 빛과 그림자를 노래했다. 늘 목소리는 낮게, 시선은 발끝에 조심스레 맞춘 채였다. 독보적 스타일과 그에 걸 맞는 비밀스런 활동으로 적지 않은 팬을 확보한 그의 2기는 두 번째 앨범 [숲](2007)과 함께 찾아왔다. 발표까지 6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던 앨범은 축축하고 일견 소심했던 1집과는 전혀 다른 외양을 내보였다. 기존 팬들의 호불호가 갈렸고 라이브도 격변했다. 어쿠스틱 기타 한 대에만 의지하던 이전과 달리, 그의 곁엔 뜻을 나누는 동료들이 자리했다. 지금까지도 함께 호흡을 맞추고 있는 기타의 '유정목(프렌지)'과 키보드의 '연진(라이너스의 담요)', 드럼의 '도재명(로로스)' 등 재능 있는 젊은 음악가들과의 합은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지만 그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들은 그 곳이 작고 좁은 지하 클럽이건 드넓은 록 페스티벌 무대건 상관없이 결코 잊을 수 없는 화려한 불꽃을 터뜨렸다. "봄을 낚다", "나와 산책하지 않겠어요", "슈퍼사운드 커뮤니케이션", "여름의 끝" 등 앨범만으로는 어딘가 성에 차지 않던 노래들이 각자의 생명력을 부여 받으며 무대 위를 수놓았다.
그 기운을 이어 받아 이제 정형화된 '밴드' 형태로 단단히 자리를 잡은 것이 바로 지금의 3기 '전자양'이다. '유정목', '윤정식', '정아라', '류지' 네 사람을 '전자양'의 정식 멤버로 들인 '전자양'의 음악은 지금, 발끝으로부터의 체질 변화를 실험 중이다. 이토록 제멋대로인 무정형 팝을 5인조 밴드라는 형태로 어떻게 표현해 낼 것인가. 8년 만의 새 앨범 [소음의 왕]과 이제야 담을 수 있었던 온스테이지 영상은 그런 '밴드 전자양'의 진지한 노력이 빚어낸 빛나는 지금이다. 지금까지도 공연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대표곡 "아스피린 소년"이나 "흑백 사진", "봄을 낚다" 등의 노래를 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지만, '꿈속에서도 뛰쳐나갈 수 있게 모래를 털지 않고 잠들겠다'는 '전자양'식 진취에 위안을 구해본다. '전자양(이종범)'이 제멋대로 흩뿌려놓은 퍼즐을 신중하게 하나하나 맞춰나가는 멤버들의 모습은 그대로, 지금도 시시각각 형태를 바꿔가고 있는 이 수수께끼 별에서 온 생물체의 여전히 흥미로운 '순간'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