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STAGE. 두 뮤지션의 특별한 화학적 결합
화합과 분해, 그리고 탄생. '호와호'의 음악을 듣다 보면, 사람 관계에도 화학작용이 있다는 말을 더욱 믿게 된다. A와 B라는 물질이 만나서 그 특성에 따라 뜨거워지거나 차가워지고, 아니면 더 나아가서 새로운 물질을 창조하기도 하는 화학작용 말이다. 이들의 만남도 그렇다. 이호의 목소리에 모호가 반응하여 촉발된 만남이, 교감의 과정을 통해 하나로 결합되어, 특별한 성질의 결과물로 탄생한 것이다. 두 뮤지션의 중간에 있는 음악도 아니고 극단적으로 독특하다거나 대중적인 것도 아닌데, 그들의 음악은 사람을 슬며시 끌어당긴다. 호 그리고 또 하나의 호. 이들의 만남은 우연이었지만, 그들의 음악은 필연적이다. 그래서일까? 두 뮤지션의 결합물에선 은은한 빛과 향기가 난다.
2015년 말 발표한 '호와호'의 [Unknown Origin]. 이 앨범을 듣고 한동안 멍해 있던 기억이 난다. 단순한 어쿠스틱 사운드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정갈한 구성, 그리고 그 곡의 분위기에 따라 질감을 달리하면서 덧입혀진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음절 하나하나를 분명한 발음으로 전하는 목소리도 그 사운드에 완벽하게 동기화되어 있었다. 흔한 듯 흔하지 않은 음악이자, 특별하지 않은 듯 특별한 팀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서로를 잘 모르는 두 명이 만나 이렇게 올곧이 한 방향을 바라보는 음악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도 흥미로움을 느꼈다. 마치, 처음부터 '하나의 팀' 같았으니까.
'호와호'의 음악은 섬세하다. 여기서 섬세한 음악이란 꼭 복잡하고 세세한 구성의 곡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자신들이 추구하는 방향에 맞게 잘 만들어낸 음악을 말한다. 더군다나 한 명이 진두지휘하는 작업물이 아니라, 이질적인 두 사람이 작사 작곡을 함께 하는 공동창작물의 경우에는 몇 배의 섬세함이 더 요구된다. 잘못될 경우,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내기보다는 그 둘의 중간을 취하는 어정쩡한 결과물이 나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들은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았다. 서로의 장점을 탁월하게 융합하고 동시에 음악적 통일성도 담보해냈다. 화학적 결합의 강도와 형태가 모두 단단하다는 말이다. 그런 느낌은 온스테이지에도 오롯이 담겨있다.
"이런 계절". 스산한 공간, 이호의 입에서는 입김이 나온다. 그 입김을 따라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그 공간과 맞물려 전달력이 극대화된다. 이호와 모호의 목소리가 겹쳐질 때 느껴지는 분절의 감정과 그 선을 따라 가늘게 떨리며 곡의 흐름을 유연하게 만드는 일렉트릭 기타의 역할이 눈부신 곡이기도 하다. 그리고 "춤". '호와호'가 가장 어렵게 만들었다는 곡이다. 무희가 계단을 오르고 이호의 목소리가 모호의 간결한 기타음과 함께 펼쳐지는데, 목소리의 '톤'이란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정적이지만 깊은 감정이 담겨있어서 무희의 동적인 움직임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그로테스크한 아름다움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여기에 가볍게 접촉하듯 더해지는 일렉트로닉 사운드는 각각의 움직임을 더욱 의미있게 만들고, 음의 잔향을 짙게 드리운다. '살짝 쿵'하고 낮게 읊조리는 가사처럼.
이제 모호와 이호는 나란히 서있다. 그리고 노래를 주고받는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화음을 맞추는 중창의 색깔은 아니다. 각각의 보컬은 화합을 추구하기보다는 개별의 존재로 남길 원하는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로 분리되어서 들린다. 그렇기에 이상의 시 '오감도'를 연상하게 하는 곡 "13인의 아이"는 더욱 강렬한 이미지를 내포한다. 둘의 목소리를 통해 "일이삼사오륙칠팔구십십일십이십삼"이라는 숫자가 외쳐질 때마다 사운드는 점차 풍부해져서 앨범보다 더 거친 파괴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혁신적인 것보다 단순한 외침이 더 힘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듯 말이다. 이 곡을 마지막으로 이들은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하지만 어둠속에서도 막연한 기대감은 남는다. 호와호 프로젝트는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는 기대감. 그 만큼 이들의 화학적 결합은 아주 특별하니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