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와호' [Unknown Origin]
하나의 호와 또 하나의 호를 더해 '호와호' 다. '구텐버즈' 의 리더 '모호' 와 싱어송라이터 '이호' 가 합을 맞췄다. '호와호' 의 첫 번째 음반 [Unknown Origin] 에 실린 여덟 개의 곡들은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새롭거나 혁신적인 스타일이 아니다. 이번 음반의 프로듀싱을 맡은 일렉트로닉 듀오 '투명' 의 사운드 지원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첨단을 걸을 만큼 화려하지도 않다. 게다가 피워 올리는 무드는 수수하고 무던해 언제 끝난 지도 모를 만큼 수줍다. 그런지와 하드록이 기저에 깔린 '구텐버즈' 음악처럼 강력한 출력을 넣지도 않고, 그렇다고 '모호 프로젝트' 의 음악처럼 완연한 포키 (Folkie) 의 모습으로 분하지도 않는다. 이들의 음악은 평범하고 어디선가 스쳤을 법한 그런 외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특유의 섬세한 작곡과 호소력 짙은 보컬, 주의 깊은 통찰은 곳곳에서 빛난다. 이 먼지 같은 노래들이 힘을 발휘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쌀쌀해지는 계절과 불꽃같던 열정이 사라져버린 나이를 스산하게 대입시킨 첫 곡 ‘이런 계절’만 들어봐도 알 수 있다. 잘가라 계절아 숨막힐 듯 뜨겁던 바람아, 음반의 정서는 노래의 후렴구처럼 고독하기만 하다. 우리가 '모호' 의 음악으로부터 바라는 게 이런 느낌 아닌가? 어떠한 장르를 하든, 어떠한 악기를 사용하든 이것은 '모호' 의 음악이다. 그리고 이건, 그에게 기대했던 바로 그 서정이다. "I`m Still Walking To You" 로 진중한 사색을 보탰던 '이호' 의 적막한 보이스가 어우러져 뒤섞이면, 쓸쓸함의 농도는 점점 짙어진다. "차라리 모르는", "집으로" 에서 풍겨 나오는 저 일상 속의 시린 페이소스란. 그 마무리는 두 싱어의 보컬대비를 가장 잘 보여주는 "Two Hearts" 다. 마치 이들의 첫 만남을 그려내는 듯 적절한 인력과 척력이 교차하는 이 곡을 듣고 있으면, 왜 이 음반이 가을의 음반이 되었는지 대강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 법하다.
내가 생각하는 음반의 베스트는 '이상' 의 오감도에서 힌트를 얻은 13인의 아이다. 그 바닥을 드러내지 않는 심연과 혼란. 영화가 현실을 감당하지 못하는 이 아이러니한 삶의 단면을 제시하기라도 하듯, 목소리는 한없이 낮게 가라앉는다. 그러나 이들에게 이게 어떤 구체적 장면을 묘사한 곡이냐고 묻는 것은 무의미하고 불필요할 것이리라. 그저 플레이버튼을 켜고 귀를 기울이기를. 그 안에서 교감하고, 어루만지고, 이야기 나누기를. 여기 담긴 음악이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말해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서서히, 그 어둑함에 젖어 든다. 지극히 상투적인 말이지만 이 말 이상의 다른 표현을 찾을 수 없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을 만났을 때를 뛰어넘는 기쁨이 있을까. - 이경준 (대중음악평론가, 음악웹진 이명 편집장)
제작 노트 - 불현듯 다가오는 계절을 위한 음악. 이번 음반의 준비를 시작하여 발매되기 까지 어느새 근 1년의 시간이 흘렀다. 지난 이맘 때 단순히 공연을 만들어보자는 뜻으로 만났던 우리는 조금 더 재미있는 일들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올해 초 듀오를 결성하기에 이르렀고 각자의 활동을 하는 틈틈이 작업을 하여 데뷔 음반이자 정규 음반인 [Unknown Origin] 을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무심코 살다 보니 어느새 바뀌어있는 계절처럼 서로 가진 목소리에 대한 호감으로 비롯된 가벼웠던 만남이 각자의 음악적 고집을 살짝 내려둔 공동의 작업으로 변화하였다. 가사 속 한 단어, 음색, 곡의 진행을 위해 치열하거나 느슨하게 고민했던 그 겨울, 봄, 그리고 여름을 잊지 못할 것이다.
출처를 알 수 없는, 그렇지만 감동적인. 음반에 실린 8곡을 만들면서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작업을 한 것 같지는 않다. 우리의 목소리가 날이 서 있지 않았으면 하는 분위기를 서로 공감했을 뿐. 불분명한 음이 떠오를 때 그 순간의 기분, 날씨, 뉴스,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오가며 곡 마다의 흐름과 분위기를 만들어갔다. 그러면서 적당한 프로듀서를 궁리했고 마침내 일렉트로닉 듀오 '투명' 을 만났다. 우리를 읽고 응해준 그들을 프로듀서로 만난 것은 여전히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엔 농담 삼아 포크인 듯 포크 아닌 포크 같은 알 수 없는 분위기를 주장했다. 그리고 어느새 그렇게 되어가고 있었다. 최소한의 악기와 감싸 안는 듯한 목소리의 화합.
옷장을 정리 해야하는 시절. 낮과 밤의 기온이 다른, 반팔과 긴팔이 공존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그런 시절이 있다. 그 시절을 지내야 분명한 계절이 온다. 우리는 한 공간에 함께 있지는 않지만, 한 시절을 공감하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 어느 바람을 타고 왔는지 모를 그 시절을 함께 보내며 [Unknown Origin] 이 귓가에 흐르기를 바란다. 음반이 나오기까지 애써준 프로듀서 ‘투명', 믹싱과 마스터링 엔지니어 정보용, 자립음악생산조합 그리고 쿨럭뮤직에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 2015년 10월 '호와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