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STAGE. 그녀의 사람스럽고 사랑스러운 음악
'박혜리'는 능력이 많다. 음악을 많이 듣는 이라면 대개 '두 번째 달'로부터 '박혜리'를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 전부터 이런저런 경연대회에서 주목 받았고 연극, 영화, 드라마 음악에도 두루 참여했다. 물론 그녀를 널리 알린 것은 2005년 출시된 '두 번째 달'의 1집 음반이다. 서정적인 에스닉 음악을 선보이며 화제를 모은 '두번째달'의 음반에서 특히 인기를 끈 곡 가운데 하나인 "서쪽하늘에"가 바로 그녀의 곡이었다. 그 후 인기 드라마에 삽입되어 더 널리 알려진 곡의 주인공이었던 '박혜리'는 그러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하기 위해 기꺼이 새로운 팀에 합류했다. 아이리쉬 포크 음악을 하는 '바드(Bard)'였다. 아이리쉬 포크 음악에 푹 빠진 그녀는 아일랜드로 음악 여행을 떠나기도 했고, 그곳에서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것만이 '박혜리' 음악의 전부가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스승인 '정원영'의 밴드에서 건반 주자로 활동했으며, 다른 뮤지션에게 곡을 주기도 하고, 프로듀서를 맡기도 한다. 이런 그녀가 공연장과 음반에서만 자신의 음악을 들려주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사람이 있는 곳, 그래서 음악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간다. 삶에서 떠밀린 이들 곁에 그녀의 음악이 있고, 눈물 흘리는 이들 곁에 그녀의 음악이 흐른다. 서로 기대는 모든 이들에게 그녀의 음악은 끝까지 멈출 수 없는 흥이고, 내일 다시 확인하고 싶은 아름다움이다. 그렇게 늘 자신의 몫을 다하는 그녀는 올해서야 비로소 자신의 음반을 내놓고 제 이름으로 피었다. 이미 그럴 줄 알았던 빛깔로, '박혜리' 그녀의 향기로.
'박혜리' 음악의 매력이 어디에 있다고 해야 할까? 주로 건반 연주자이자 아코디언 연주자로서 활동해온 '박혜리'는 팝과 포크의 서정성과 보편성을 담지하고 있어 누가 들어도 좋은 음악을 만들고 연주해내는 데 강점이 있다. 결코 트렌디한 음악이 아니다. 한국적인 음악 역시 아니다. 화려한 음악도 아니고 격렬함과도 거리가 멀다. 유럽 민속 음악의 이채로움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대중음악의 보편적인 기승전결 구조 안에 안착하는 그녀의 음악은 속도로 치면 딱 사람의 발걸음 속도이다. 바쁘게 어디론가 가야 하느라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보지도 못한 채, 오직 목적지로만 재빨리 내달려야 하는 속도가 아니다. 빨라야 자전거쯤밖에 되지 않는 그녀의 음악은 자연스럽게 하늘 아래 모든 것들에 눈 맞추며 걸어간다. 어제와 한 번도 똑같지 않았던 하늘을 응시하고, 길과 길 사이를 채우는 바람을 호흡하며, 그 길에 살아있는 모든 생명들에 잠시라도 손 흔들 수 있는 속도이다. 그 속도로 흘러가며 '박혜리'는 자신을 열고 자신의 음악 안에 만물이 깃들게 한다.
그녀의 무기는 자신의 여린 목소리이며, 자신의 목소리만큼 부드러운 아코디언과 건반이다. 아니, 바로 그 소리 같은 마음이다. 마음이 소리와 다르지 않았기에 그녀에게 쌓였던 생채기와 햇살과 바람과 눈비마저 어느새 음악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그 마음에 새겨졌던 이야기를 음악으로 듣는다. 오래도록 팀의 일원으로 존재했던 그녀는 자신의 이름으로 음반을 내놓으며 한 사람의 음악인으로 드러내지 않았던 자신을 애틋하게 드러냈다. '길고 긴 기다림에 참 많이도 울었던 나'와 '외로운 밤'을 견디고 '서늘한 사랑의 끝'에 서야 했던 자신이 여기에 있다. '나만의 고향'을 갈구했던 자신이 여기에 있고, 몽콕의 밤을 기억하는 자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자신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자신만 유독 힘들었다고 한탄하지 않는 그녀는 자신이 빚어낸 음악의 속도와 사운드 안에 '서러운 마음'을 기댈 수 있게 해준다. 그녀의 음악에는 스스로 살아야 하고, 결국 혼자일 수밖에 없는 모든 이들이 감내해야 할 아픔과 슬픔에 대한 고백과 연민이 있고, 요란하지 않은 교감이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녀의 음악에는 뾰족했던 마음을 뭉근하게 하는 온기가 있고, 온기로 순해진 아름다움이 있다. "몽콕에 내리는 밤"에 악기가 하나씩 더해지는 순간, 마음이 찌르르 해지고 고개는 저절로 살랑거리는 것은 그 때문이다. "Secret Waltz"를 들으며 좀처럼 들여다보지 않았던 자신 안의 우물을 깊숙이 들여다보게 되는 것 역시 그 때문이다. '박혜리'의 음악은 이렇게 사람을 이해하고 사람을 위로하는 음악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사람다움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오늘을 견디게 하고 살아가게 하는, 사람스럽고 사랑스러운 음악이다. 광진교 리버뷰 8번가에 '박혜리'의 음악이 흐르는 동안에는 서울마저 달라 보인다. 강물이 흐르고 음악이 반짝이는 사이 저녁이 깃드는 도시. 오늘 이 곳에 우리가 함께 살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