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놓았음에도 더 아려오는 추억의 미혹 데뷔 40주년 기념 앨범 [불혹]
1950년생, 우리나이로 67세다. 1977년에 데뷔했으니 뮤지션으로서의 영광을 누린 지도 딱 40년이 지났다. 그 긴 시간을 지내오며 얼마나 많은 스토리들이 쌓였겠는가... 만남과 헤어짐, 빛과 어둠을 반복하며 지나온 시간은 돌아갈 수 없기에 추억이 되고 그 추억은 지금의 현실을 지켜주는 안식처가 된다.
'최백호'는 '추억 스페셜리스트'다. 40년 전 "내 마음 갈 곳을 잃어"에 담겼던 사랑의 추억, "입영 전야"에 담겼던 청춘들의 잊을 수 없는 시간, 영일만과 부산에 새겨진 감상 또한 대중에게는 큰 안식이 되어주었다. 추억을 이끌어 술 한 잔의 위로를 배로 만들어 주었던 그의 목소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깊어지고 닳아지며 대중 속으로 파고들었다. 쓸쓸함으로 가득한 노 뮤지션의 목소리에 수많은 후배 뮤지션들이 이끌렸고, 그렇게 '최백호'는 세대 간의 골에 다리를 놓으며 시간의 굴레를 벗어냈다. 이번 앨범 또한 후배 뮤지션들과의 협연이 눈에 띈다. "부산에 가면"으로 인연을 맺은 '에코브릿지', 그리고 그가 이끄는 프로듀싱 그룹 '누플레이(NUPLAY)'가 앨범 전체의 프로듀싱을 소화했으며, 여러 후배 보컬리스트들이 신선한 조합으로 피처링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최백호'는 40년 음악 인생을 기념하는 앨범을 만들며 [불혹(不惑)]이라는 앨범 타이틀을 선택했다. 미혹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40년 시간의 선물을 앨범에 담겠다는 의지였을 것이다. 긴 시간의 끝에 닿아 추억을 내려놓겠다는 의지는 싱글로 선공개 된 타이틀곡 "바다 끝"을 통해 선명하게 표현됐다. '에코브릿지'와 작업한 이 곡에는 '최백호'의 내려놓음이 가장 철학적으로 담겼다. 과거에 스스로를 가두는 추억을 내려놓음으로써 '최백호'와 '누플레이'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냈다. 첫 트랙에 담긴 "내 마음 갈 곳을 잃어"가 그러하다. 1977년 그의 데뷔곡이면서 40년 음악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곡으로 자리한 이 곡은 새로운 곡으로 재탄생하며 이번 앨범의 더블 타이틀로 낙점됐다. 40년 전 청년 '최백호'의 간절한 목소리는 정통 클래식 기반의 편곡을 만나며 노년의 아련한 체념으로 탈바꿈했다. 하지만... 내려놓았음에도 더 아려오는 추억의 미혹은 아름답고 잔인하다. '주현미'가 피처링으로 참여한 "풍경"은 앨범의 백미다. '그 아름답던 얼굴에 다시 한 번 입 맞추고 늘 노래하듯 춤을 추듯 내 곁에서 사랑을 해주오'라는 가사, '최백호'와 '주현미'가 주고받는 담백한 허밍은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이끌어 낸다. 너무 아름답기에 추억으로 다시 유혹하는 이번 앨범의 가치를 가장 잘 확인시켜 주는 곡이다. '주현미' 외에도 피처링으로 참여한 후배들의 이름이 참신하고 돋보인다. 뮤지컬 스타인 '박은태'가 "새들처럼"에 피처링으로 참여해 기성 가요들에서 느낄 수 없는 극적인 콜라보레이션을 선사했으며, '어반 자카파'의 '조현아'가 "지나간다"에서 대선배와 호흡하며 쌓여가는 추억들을 깊이 있게 표현했다.
싱어송라이터 '최백호'의 깊이가 읽히는 곡들 또한 앨범의 전반적인 내려놓음과 맥을 같이한다. 직접 곡을 쓴 "그리움은 사랑이 아니더이다", "위로", "하루종일"에서는 쓸쓸함과 처량함이 때로는 따뜻하게, 때로는 거칠게 드러난다. '최백호'의 음악은 슬프고 처량하다. 그 슬픔과 처량함에 무엇이 담겼기에 40년을 대중의 사랑 속에서 함께 하고 있는 것인지 이번 앨범을 통해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내려놓아야 하는 "추억", 그럼에도 다시 아픈 가슴으로 마주하게 하는 '추억'... 시간은 그저 흐를 뿐이다. 나의 추억과 내 삶의 가치를 시간 따위가 바꿀 수 없지 않겠는가.
(글/대중음악 평론가 이용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