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라 탱고와 지저스 앤 메리체인,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에서 어떤날과 검정치마까지
겹겹이 쌓은 기타 노이즈와 극적인 구성, 쉽게 잊히지 않는 멜로디
영기획에서 최초로 발매되는 기타 중심의 음반 '신해경'의 [나의 가역반응]
'신해경'은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더 미러(The Mirror)'라는 이름으로 다섯 곡의 싱글을 발표한 음악가이다. 극적인 구성에 겹겹이 쌓은 기타 노이즈와 한 번 들으면 쉽게 잊히지 않는 멜로디의 음악을 들려준다. 2017년 2월 22일 '신해경'의 첫 EP [나의 가역반응]이 발매된다. [나의 가역반응]의 모든 곡은 '신해경' 혼자 만들고 연주하고 믹싱했다. 마스터링은 소닉 코리아의 강승희 엔지니어가 맡았다. 커버와 시디의 패키지의 사진은 이강혁의 작품이며 편집 디자인은 장우석이 맡았다. [나의 가역반응]은 영기획에서 발매되는 스물 세 번째 EP 이상 단위의 음반이다.
'더 미러'라는 이름은 이상의 시 '거울'에서 가져왔으며 앨범의 제목 [나의 가역반응] 역시 이상의 초기작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를 제외하고는 나도 '신해경'에 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메일로 데모를 받고 음악이 좋아 음반을 발매하기로 하고, 몇 번의 미팅과 메일로 수록곡이 정해져 있던 앨범에 의견을 내고 음악에 어울리는 사진가와 디자이너를 섭외한 후 돈을 투자해 제작한 일뿐이다. 앨범을 발매할 때가 되어서야 그에 관해 아는 게 많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의 음악이 너무 좋아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탓이다.
그보단 음반 발매 후 한 번쯤 나올 법한 질문에 미리 답을 해본다. 일렉트로닉 음악 레이블로 알려져 있는 영기획에서 왜 누가 들어도 기타 사운드 중심 음악인 [나의 가역반응]을 발매하는가. 글쎄. 이 음반은 다른 영기획 음악가처럼 '신해경' 혼자 집에서 미디와 시퀀싱을 이용해 만들었다. [나의 가역반응]은 기타를 중심으로 표현하지만 사운드의 질감과 정서에서 기존에 영기획에서 발매된 음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 이는 모두 핑계다. 위의 문장을 다시 가져오자면 '그의 음악이 너무 좋아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열린 마음으로 즐겨주시길. 자세한 감상은 김윤하 평론가의 라이너 노트에 배턴을 넘긴다.
-하박국 (영기획YOUNG,GIFTED&WACK 대표)
살면서 가끔, 정말 아무런 정보도 없이 보고, 듣고, 느끼고 싶다는 기분이 간절해 질 때가 있다. 누구나 경미한 정보피로증후군에 시달리는 정보과잉시대적 인간의 이러한 슬픈 욕망은 그리고 그 대상이 아름다울수록 더욱 강렬해진다.
찬바람에 코 끝이 조금씩 시려지던 어느 날, 영기획 대표에게 날아온 링크 하나가 그렇게 숨어 있던 욕망을 들쑤셨다. 별 다른 설명도 없이 무심하게 툭 던져진 링크와 함께 전해진 한 마디는 더 없이 간결했다. '이거 어때?'. 링크가 인도한 건 'the mirror'라는 낯선 아티스트의 "모두 주세요"라는 노래 한 곡이었다. 아무런, 정말 아무런 정보도 없이 흘러나온 노래는 그가 지닌 소리와 색깔, 향기 그대로 스며 들었다. 그것은 마치 깊은 밤 우연히 만난 상대가 털어놓은 자신의 가장 더럽고 약한 부분에 대한 급작스런 고백 같았다. 부끄럽지만 따뜻했다.
혹독한 계절을 보낸 뒤 바로 그 노래 "모두 주세요"를 중심으로 한 장의 앨범이 완성되었다. 바로 이 앨범 [나의 가역반응]이다. 그 때 그 노래 "모두 주세요"를 중심으로 기승전결을 꾸린 앨범은 우리가 흔히 사랑이라는 단어로 뭉뚱그리는 긴 여정 가운데 서서히 하류로 접어드는 시점의 이야기를 넓게 펼쳐 풀어 놓는다. 화려한 불꽃놀이가 끝난 뒤 자욱이 퍼진 연기 사이로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낸 노래들은 다행히도 첫 인상 그대로 여전히 부끄럽고 따뜻하다.
너의 눈과 입과 몸과 슬픔 모두를 내게 달라고는 하지만 섣불리 따랐다가는 당장이라도 깨져버릴 듯 '신해경'의 노래들은 한결같이 여리고 축축하다. 잊고 사라지고, 흐려지고 기다리는 그 모든 위태로운 감정들 사이, 다행스럽게도 외유내강 사운드가 틀을 잡는다. 요 라 탱고와 지저스 앤 메리체인,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소리들은 어떤날과 검정치마, 때로는 조월의 음악이 보여준 어떤 지점들을 통과하며 우리 마음 속 익숙한 그리움을 끝없이 자극한다. 당장 도망치고 싶다가도 조금 더 붙잡아 두고 싶은, 영원히 잠겨 있고 싶지만 지금 떠나지 않으면 영원히 영혼을 좀 먹고 말 감정의 찌꺼기가 내내 방울 져 맺힌다. 참으로 잔인한 친절이자, 아름다움이다.
마지막 곡 "화학평형"은 지난한 방황 속 가까스로 찾아낸 감정의 출구다. 사랑이라는 가역반응이 남기고 간 정반응과 역반응이 평형을 찾을 때까지, 딜레이 가득한 기타연주와 목소리는 우울과 눈물을 싣고 과거를 유영한다. 모든 것이 끝나고 난 뒤, 영원일 것 같던 그 울림이 남기고 간 묵직한 여운 속에서 문득 누군가에게 ‘이런 건 어때?’ 묻고 싶어진다. 나만 당할 수는 없다는 못된 마음으로, 어쩌면 너의 가장 부끄럽고 아름다운 곳을 조금 훔쳐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김윤하(음악평론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