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승원' [강승원 일집]
그 동네에 '강승원'이 있었다. 비슷한 성향을 가진 이들이 모여 하나의 음악동네를 만들고 거기에 '우리 동네 사람들'이라 이름 붙였다. 소박한 이름처럼 1994년 조용하게 나온 앨범은 큰 인기는 아니었지만 은근하게 애호가들의 입에서 입으로 얘기가 전해졌다. 적은 양의 시디로만 나왔던 앨범은 그렇게 잊히지 않고 2015년 바이닐(vinyl)로 재발매되기도 했다. '강승원'은 '우리 동네 사람들'의 음악을 주도한 인물이다. 동물원의 유준열, 에밀레의 심재경, 고은희·이정란의 고은희 같이 경력이 있는 음악가들이 함께했지만 대부분의 노래를 만들며 동네를 대표한 이는 '강승원'이었다. 말하자면 통장 내지는 반장 같은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굳이 자신을 앞으로 내세우려 하지 않았고 '강승원' 개인보다는 '우리 동네 사람들'로 더 많이 알려졌다.
'강승원'을 설명할 수 있는 말들이 몇 있다. 바로 김광석의 노래로 유명한 "서른 즈음에"를 만든 작곡가라는 것.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유명한 광고음악을 만들었다는 것. 그리고 TV 프로그램인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음악감독이라는 것. 공통점은 여전히 '강승원'이란 이름이 뒤에 있다는 것이다. 아주 가끔 KBS 음악 프로그램의 음악감독으로 인터뷰를 하고, "서른 즈음에"를 만든 원곡자로 소개돼 직접 노래를 부를 때가 있을 뿐이다. 그마저도 어색해하고 불편해한다. '우리 동네 사람들'에서부터 그랬듯 앞에 나서지 않고 무언가를 하는 게 그에겐 더 편하고 익숙하다.
[강승원 일집]은 그런 그의 성향이 모두 담겨 있는 앨범이다. '1집(일집)'이라는 숫자를 생각해보자. 그는 50대 후반의 나이에 이제 첫 앨범을 갖게 된 신인 가수가 됐다. '우리 동네 사람들'부터만 따져도 23년 만의 새 앨범이다. 이마저도 그의 재능을 아끼고 높이 사는 동료 음악가들의 부추김 덕분이었다. 첫 앨범에서도 그는 슬쩍 한 발 뒤로 물러선다. 약 40년 동안 써온 노래들을 선후배 가수들에게 대신 부르게 했다. 그의 곁에는 늘 믿음직한 음악 동료들이 있었다.
'전인권'부터 '윤도현', '이적', '박정현', '린', '성시경', '정유미', '윤하', '장기하', '존박', '자이언티'까지 각기 다른 장르에서 활동하고 있는 다양한 목소리들이 그의 첫 앨범을 위해 참여했다. 다양한 목소리만큼이나 다양한 편곡이 각각의 노래에 담겨 있지만 '강승원'이 만든 노래의 본질은 그대로다. '강승원'은 '우리 동네 사람들' 때부터 소박하지만 분명한 선율을 가진 명징한 노래들을 만들어왔고, 이는 [강승원 일집]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편곡을 걷어내면 단단한 노래가 남는다. 편곡이 과한 것도 아니다. 거의 대부분 기본적인 편성에 포인트가 되는 악기 한두 개가 추가되는 정도다.
1970년대와 2010년대의 낭만이 다르지 않음을 노래하는 "20세기 캐럴 (19792016)"은 마치 원래부터 '린'의 노래였던 것처럼 목소리와 꼭 맞는다. '강승원'의 곡들은 참여 음악가들의 목소리가 가진 특징을 처음부터 염두에 두고 쓴 것처럼 잘 어울린다. 성스러운 분위기에서 깊은 울림을 전하는 '이적'의 노래가 그렇고, '자이언티'의 신곡이라 해도 아무 이질감이 전해지지 않는 "무중력"이 그렇다. 예능에서만 소비되기 아까운 목소리를 가진 '존박'의 매력을 보여주는 "술" 역시 마찬가지다.
이 화려하고 성공적인 '데뷔' 앨범을 들으며 한편으론 이 노래들이 '강승원'의 목소리로 불렸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른바 '가창력'의 영역에 포함되진 못하겠지만 그가 부르는 목소리의 울림은 크다. 그가 직접 부르는 "서른 즈음에"는 김광석만큼이나, 전인권만큼이나 감동적이다. 앨범에서 직접 부른 몇 안 되는 노래들 역시 빠지지 않는다. 이 얘기는 그가 좀 더 부지런해지길, 좀 더 자주 모습을 보여주길 바라는 투정이기도 하다. 음악을 한지 40년의 시간, 비로소 그는 첫 앨범을 갖게 됐다. 그리고 우리는 좋은 '신인 가수' 한 명을 갖게 됐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