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경호의 음악은 늘 어딘가로 항해한다. 목적지는 예측불가다. 헤비메탈/하드록에서 인더스트리얼로 핸들을 꺾기도 했고, 불현듯 재즈의 문을 열고 나오기도 했다. 그만큼 그는 하나의 장르, 하나의 틀 안에 갇히기를 거부하며, 그 안에서 독자적인 작품을 써왔다. 비록 많은 사람이 주목하지는 않았지만, 방경호는 조그맣고 특색 있는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건설해왔다. 베테랑이 빠지기 쉬운 아집에 갇히지 않고, 언제나 한 끝을 열어두었다. 과거의 음률과 작금의 트렌드를 부지런히 오고가며 방향을 모색해왔다. 그의 길은 그야말로 모색의 여정이었다.
[Unnamed Road]는 그 기나긴 여정의 한 지점을 차지한다. [This Journey of Mine]이 내면을 비추는 내밀한 거울 같은 음반이었다면, [Unnamed Road]는 자신의 외부에 대한 느낌을 담았다. 방경호의 말을 빌리면 ‘사람 사이의 관계, 사회에 대한 단상, 그로부터 파생되고 튀어 오르는 여러 생각들’을 한 곳에 모았다고 한다. 정리하자면, ‘음악가 자신과 세상에 대한 고민과 상념’을 녹여낸 음반이 되었다. 정서의 결이 달라진 작품이 되었다.
그렇다고 [Unnamed Road]가 심난하고 듣기 힘든 사운드로 무장한 음반이냐면 그건 아니다. 음반은 가을의 정취에 꼭 어울리는 어덜트 컨템포러리/팝 록 사운드를 품고 있다. 물론 1980년대 미국 라디오에 나올 법한 메인스트림 록 사운드를 연주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덥스텝, 힙합 비트, 포스트록에 자주 사용되는 공간계 이펙터가 여백을 메운 음반은 그간 방경호를 알지 못했던 음악 팬이 듣더라도 쉽게 적응할 수 있을 만큼 젊음의 기운으로 넘친다. 어느 순간에선 티어스 포 피어스(Tears for Fears)와 라디오헤드(Radiohead)의 공존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 결과 방경호가 지금껏 발표한 그 어느 음반보다 잘 들리는 음반이 완성되었다. 담백하게 중독되는 후렴구를 앞세운 ‘Fly’, 피아노와 어쿠스틱 기타가 조곤조곤 어우러지는 타이틀곡 ‘Rain’, 점층적으로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팝송 ‘I Want You’, 몽환적인 텍스처를 부각한 ‘Picture of Air’ 등 수록곡 면면으로부터 감지할 수 있다. 트랙들은 각기 떨어져 있지만,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감상의 밀도를 높인다. 그리하여 콘셉트 음반은 아니지만 탄탄한 구심점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작품이 되었다. 14곡이라는 빡빡한 구성이지만, 어느덧 페이지가 넘어가 있었다. 리스너의 온도와 작가의 온도가 신기할 만큼 한 곳에서 만난 탓이다.
언젠가부터 ‘감상’이라는 게 피곤하게 된 시대가 왔다. 현란한 스펙터클 속에서, 날마다 몸을 조이는 일상 속에서 음악을 듣는다는 건 잉여적인 행위에 가까워졌다. 방경호는 잠시 숨 쉴 공간을 열어주고자 한다. [Unnamed Road]는 음악 감상이 여전히 즐거울 수 있음을, 소중하게 남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음반이다. 진지함 가운데 여유가 흐르고, 여유가 흐르는 새 어떤 사유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말하는 음반이다. 쓸쓸하지만 온기를 잃지 않는 음반이다. 지금 방경호가 집중하고 있는 음악이자 세계다.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길이다.
이경준 (대중음악평론가. 웹진 ‘이명’ 편집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