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신가영 단편집 [겨울에서 봄]
바람이 불었다. 꽃샘추위라 그랬다. 예년과는 다르게 조금은 누그러진 추위일 것이라고 아침에 본 일기예보에서 덧붙였다. 세차게 볼을 스치는 추위에 B는 코트깃을 세우고 목을 한껏 움츠렸다. 손을 더듬어 단추를 확인했다. 빈틈없이 여며져 있는데도 무심한 바람은 자꾸만 몸 속을 파고 들었다. 유난으로 생각해 두고 나온 목도리가 간절했다. B는 양손을 다시 주머니에 찔러 넣고 걸었다. 앞서가던 사람의 그림자가 골목 어귀를 아른거리다 이내 사라졌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가 골목을 채웠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긴, 긴 밤이었다.
사실은 그다지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불 꺼진 그 방은 겨우내 아무리 방을 데워도 차가웠다. 침대에 웅크린 채 아침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날이 밝으면 집 밖으로 나오는 것이 지난 겨울의 일상이었다. B는 집 생각만으로도 냉기가 등줄기를 선연히 스치는 것 같았다. 집까지 얼마 남겨두지 않고 느린 걸음을 하던 B는 불현듯 골목의 작은 사거리에서 왼쪽 골목으로 돌아들어갔다. 그냥 조금 걷고 싶은 기분이었다.
'너를 걱정한다던 나의 그 마음을 알까.'
언젠가 A가 했던 말이 따라왔다. A는 실낱같은 마음들로 휘청여 다른 사람을 돌아볼 여력이 없을 때에도 곁을 가만히 지켰다. 가끔씩 내키는대로 굴어도 곰살맞은 얼굴을 거두는 법이 없었다. 그리고 지난 겨울, 눈발이 제법 거세게 휘날리던 날 A는 불현듯 자리를 비웠다. B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찬 공기를 가르는 입김이 길게 이어졌다.
B는 그 빈 집에 돌아왔다. 현관의 자동센서등이 반짝 집을 훑어내렸다. 아무도 없었다. 외투와 가방을 벗어던지고 그대로 바닥에 누웠다. 냉기가 등골을 타고 흘렀다.
딩동-
초인종이 울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