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 또!]
서울대학교 우수 자작곡 컴필레이션 앨범,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가 또! 우리 곁에 왔다. 곡수는 여덟 곡으로 작년과 같지만, 그렇다고 내용까지 작년과 같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말라. 올해는 밴드뿐 아니라 어쿠스틱과 힙합이 추가되어 장르적으로 더욱 다채로운 음반이 된 데다, 작년의 경험을 토대로 하여 감히 장담하건대 질적으로도 작년보다 몇 걸음 전진한 음악을 세상에 내놓는 것이기 때문이다.
앨범의 첫 트랙은 강한 베이스 라인과 단순하고 반복적인 가사가 돋보이는 나상현씨밴드의 "뿌리염색"이다. 한껏 장난스러워 보이다가도 어느새 묵직한 사운드에 매료되는 기묘한 곡이다. 다음으로는 팀원 세 명이 모두 최고경영자인 홍범서의 "관악산 Climber"가 나온다. 입학해서 졸업까지 0학점짜리 관악산 등반 강의를 의무수강해야 하는 서울대학생들의 등산감성이 느껴진다. 관악산에 피어나는 개나리와 뛰노는 십장생이여, 다시는 우리의 등산을 무시하지 마라.
이어서 나오는 이번 음반의 유일한 래퍼 비다의 에서는 남이야 뭐라든 당당히 내 갈 길 간다는 인생론이 쇼미더머니와는 비교할 수 없는 건전한 자신감과 함께 돋보인다. 그러나 비다의 인생선언은 뒤따라오는 마초마초맨의 "선배님 말씀"에 의해 어쩐지 디스당하는 것 같다. 회식 자리에 귀신같이 찾아오는 선배님(이라 쓰고 꼰대라 읽는다)은 90년대처럼 웃으며 말할 것이다. "밑잔 까는 놈은 모두 뒤진다!"
몰아치는 기타리프로 벼락치듯 등장하는 강감찬밴드의 "가면"은 모든 거짓과 가식을 벗어던지고 함께 술을 마시며 춤을 추자고 한다. 화려한 기타 속주가 인상적이고 특히,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떼창의 중독성이 강하다. 따라부르다보면 어느샌가 가면을 벗고 즐기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한참 빡센 폭풍이 휘몰아친 후 조용히 피아노 소리가 들려온다. MOBAN의 은 바람처럼 인생만사를 다 날려보내고 소리들이 모여 파도치는 음악의 바다로 우리를 이끈다. 주어진 리듬소재, 베이스와 신서의 음향적 대비를 처음부터 끝까지 밀고 나가 하나의 화음에 도달하는 MOBAN의 바람은 뚝심이 대단하다.
MOBAN이 남기고 간 C의 여운으로부터 우리를 다시 이끌어내는 건 최민지의 "쉬어가세요"다. 왜인지 모르게 남자들로 득시글거리는 이 음반의 유일한 여성 보컬 최민지는 허세 없이 진심이 담긴 솔직한 목소리로 삶에 지쳤을 때에는 내 품에 기대어 쉬어가라고, 그대는 소중하다고 우리의 어깨를 토닥인다. 음반 공인 힐링트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노래, 그리고 이 음반의 타이틀곡이기도 한 뮤게트의 "나비"는 가요의 전형에서 벗어난 파격을 뛰어난 연출로 다듬었다. 역시 전형적이지 않은데 설득력 있는 코드진행이 파격 속에서의 형식을 구분지었고, 기타 소리의 다양한 가능성들을 색채적으로 동시에 형식의 각 부분마다 일관성 있게 활용하여 청자가 어렵지 않게 음악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도록 했다. 아름다운 가사와 목소리는 타이틀로서 음반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관악이라는 이 좁은 공간에 이렇게 다양한 음악이 존재한다. 여러분은 이 음반을 들으며 지금 여기 관악에서 역동하는 소리들에 알차게 귀기울였다고 할 수 있다. 음악은 대화와 같아서, 하면 할수록 즐겁고 재미나다. 내일이라는 불안이 우리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 팍팍한 시대에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애써 음악을 보태니, 부디 지금 여기 우리의 대화가 더욱 윤기나고 풍요롭기를 바란다. 음악은 내일이 아니라 오늘, 오직 지금 이 순간에만 들을 수 있는 것이니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