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부치는 편지.
노컨트롤에게.
아마 햇수론 2년 전 쯤이었을까, 너희들의 비디오를 처음 접한 것이. 홍대앞에서도 가장 아담한 클럽 ‘살롱 바다비’에서, 그 특유의 조금 침침한 주황빛 조명 아래 너희들은 무엇인가 신나게 연주하고 있었어. 물론 신난 것은 너희들만이었겠지. 최소한 비디오를 통해선, 나는 너희들이 하는 어떤 연주도 식별할 수 없었어. 그저 덩어리 진 채 통제불능으로 분사되는 노이즈 뭉치, 그것만이 스피커를 가득 울리고 있었을 뿐. 나는 한편으론 “아… 씨발 존나 시끄럽네”라 생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왠지 아련하달까, 그런 느낌이 드는 것 있지? 대략 픽시즈라던지 소닉 유스라던지 뭐 그런 것들, 그러니까 키도 크고 좆도 큰 양놈 새끼들이 하는 노이즈 덩어리 록큰롤을 왜소하고 키 작은 극동의 원숭이들이 애써 재현하려는 꼴에 살짝 미소지어졌달까? 아무튼 난 그랬어.
다시 만난 것은 1년 쯤 전이었지. 내가 의도했다기 보단 어쩔 수 없었어. 우린 같은 레이블에서 연주하게 되었으니까(우리가 소속된 인혁당 레이블은 ‘폭력적인 사운드’라면 누구나 들어올 수 있었으니까). 물론 노이즈-펑크-록인 너희들과 포크를 연주하는 내가 함께 공연을 할 일은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는 노컨트롤의 연주를 굉장히 가까운 거리에서 많이 목격할 수 있었어. 뭐랄까, “아 씨발 이 새끼들은 진짜 답이 없네…”라는 느낌? 모든 기타의 볼륨을 극악하게 높여둔 데다 디스토션과 퍼즈까지 걸어둔 탓에 밸런스는 종종 심하게 무너졌고 도무지 무엇을 연주하는지 알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던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지. 다만 둔탁하게 들려오는 드러밍 만이 멍하니 있다가도 아차, 리듬이 있었구나, 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주기도. 재미있는 것은, 그것이 꽤 나쁘지 않았다는 점이야(굳이 정확히 표현하자면 ‘종종 별로기도 했지만’을 붙여야 할 것 같지만 말이야). 가끔씩, 어떤 연주는 정말 나를 미치게 만들기도 했다. 말했듯, 나는 한국에서 그렇게 통제 안 되는 사운드를 연주하는 밴드는 거의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것을 아마츄어 같다 말하는 일은 쉬운 일이지. 그러나 그것이 바로 그들의 목표라면? 노컨트롤은 늘 성공하지 않았으나 늘 실패하지도 않았다. 루즈했던 순간들만큼 high한 순간들도 있었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물론 너희들이 ‘(음악 다운)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를 나는 아직 확신하지 못하겠어. 말했듯 때로는 과잉이 넘쳐흘러 (말 그대로의 덩어리만 남아) 루즈해지던, 그것을 떠올려보자면. 그래서 나는 (노컨트롤의 구성원 중 한 명인) 경하가 인혁당에서 EP를 내겠다 했을 때 조금은 반신반의 했지. perform과 record의 측면은 분명 다른 것이니까. 내게는 record된 노컨트롤에 대한 확신이 옅었던 거야. 그러나, 내 생각이야 어쨌건, 너희들은 (최근 반란 ban ran이라는 아주 멋진 패스트 코어 밴드가 녹음하기도 햇던) 다리밑(Under Bridge) 스튜디오에서 한 파트 한 파트 녹음하기 시작했고, 결국 중간에 멈춤없이 끝까지 작업을 마쳤어. 처음부터 작업을 지켜봤고 중간중간 결과물들을 함께 체크했던 나로선 (믿을 수 없게도) 음원들이 점차 ‘음악 다워지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지. 뿌듯했달까. 최종 마스터를 들으니 ‘역시 인혁당답다!’라는 생각에 절로 콧노래가 나오더군. “내 마음이 씨발 존나 자랑스러워! 내 마음이 씨발 존나 자랑스러워!”.
나는 너희들의 음악을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진 않아. 어차피 그걸 원하고 만든 음악은 아니니까. 중요한 것은 필요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형태로 전달 되었으면 한다는 거야. 누군가는 “이 병신 같은 로파이 펑크 음반은 뭐지?”라며 걷어찰 지도 모르지만 아무렴, 누군가는 pixies의 향이 짙게 풍기는(그러나 훨씬 스트레이트한 질감의) 매력적인 슬로우 템포 싱글 에 꽃힐지도 모르고 또 누군가는 질주하는 8비트 리듬의 펑크록 넘버 에 푹 빠질지도 모르지. 왠지 ‘평소에는 초식남인 주제에 무대에서만 방방 뛰는’ 일본 펑크록커들이 생각나는 도 큐트한 트랙. 하지만 블루스 기타리스트 하헌진과 협연한 (무려 8분 9초에 달하는 대곡) 는 정말로 들어볼 만한 싱글이라고 나는 생각해. 그것만큼은 정말로 들려주고 싶다고! (진심으로, 만큼은 나름 post-?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EP는 발매되었고, 남은 것은 좋은 주인들을 찾아가는 것 뿐이야. 그렇다면 이제야 우리는 한 마음으로 고개를 숙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하고요.
/ 단편선, 자립음악생산자모임 산하 레이블 인혁당 소속 음악가, 자유기고가
-
자립음악생산자모임 산하 레이블 ‘인혁당’
낮은 지능 높은 지랄! 음악가에게 자립을! 시끄럽고 폭력적인 음악을 명동 화장품가게에서 듣을 수 있게 될 그날을 위해 투쟁하는 인디혁명당이 인사드립니다.
인혁당의 앨범은 제작 과정에 따라 노동-시리즈와 대포동-시리즈로 구분됩니다. 공장에서 프레싱을 하여 나온 앨범은 대포동마크를 달게 되고, 수작업으로 만든 앨범은 노동시리즈로 발매됩니다.
노동 1호 / 밤섬해적단 & 회기동 단편선 live split [The Border City II]
대포동 1호 /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
노동 2호 / 노컨트롤 [You have No Control]
계속 출격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