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의 두 번째 EP앨범 [Deep]은 자아로의 침잠이다.
Ste의 이번 앨범은 고통과 분노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그 감정을 무차별하게 쏟아내지는 않았다. 세 곡 모두 겉으로 드러내 보이는 테마와 내면에 감추고 있는 정서가 불일치한다. 심지어 하나의 곡 안에서도 음이나 악기가 서로 교차하고 부딪치며 기묘한 밸런스를 만든다. 'Deep'이란 타이틀처럼 들끓는 감정을, 깊은 곳에서 담금질하여 송곳처럼 예리하게 벼려냈다.
-Mauve
세상과 유리된 자아를 다루고 있는 곡이다. 우아함, 화려함, 풍부함 그리고 고독과 추함. 곡은 보랏빛으로 투영된 자아를 담아 더 없이 다채롭고 화려하다. 피아노가 주도하는 긴장의 끈. 드럼과 기타가 완급을 조절하고 일그러진 기계음이 유기적으로 채워져, 곡을 비비드 톤으로 빚어낸다. 하지만 그 아래 깔린 정서는 모노톤에 가깝다. 뒤틀린 감성을 모던하게 풀어냈다.
-Analogue Suicide
조명이 꺼진 서커스 천장을 핀 조명이 비친다. 외줄타기를 시작하는 드럼. 긴장감을 자유자재로 가지고 논다. 좌로 우로 널뛰는 기타 리프는 공중그네를 연상케 한다. 서커스는 물론 엔터테인먼트지만 그 안에는 항상 기괴함이 내제되어 있다. 빙글빙글 웃고 있던 광대가 갑자기 제 목을 찌르는 연기를 보일 때, 그걸 그저 시늉이라고 거짓이라고 웃어넘길 수 있을까. 시린 땀이 손에 맺힌다.
-다락방
아이러니다. 누군가로부터 받은 상처는 또 다른 누군가를 통해서만 치유될 수 있다. 폭력을 피해 숨어든 주머니 속에는 구원 또한 없고 상처는 곪아만 간다. 나를 돌아보는 일은 그래서 위험하다. 빛바랜 추억은 윤색되어가고 오늘의 초라함만이 부각된다. 피아노 선율로 담담하게 시작된 목소리에 어느 새 갈라진 기타 소리가 섞이고 또 사라진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멜로디에 손이 채 닿지 않은 구원에의 간절함과 애틋함이 묻어난다.
도시는 소음으로 가득하다. 잠언도 조언도 인사도 욕설이나 저주조차 눈을 마주하지 않는다. 허식으로 덩치를 불려온 어른의 기름진 목소리는 누군가를 향할 줄 모른다. 모조리 자신을 향해 있을 따름이다. 걸인에게 적선하듯 던져지는 무성의한 관심. 의미가 없는 말들. 그저 노이즈일 따름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자아 속으로 가라앉는 것은 고상한 여가를 보내는 수단이 아니다. 폭력으로부터의 회피일 따름이다.
Ste의 이번 EP는 마침내 그의 ‘주머니를 뚫고 나온 송곳’이다. 어떤 이에게는 그저 노이즈에 불과할 테지만, 어떤 누군가에게는 가라앉기 위한 앵커가 되거나 송곳을 벼릴 모루와 망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다른 어떤 거창한 의미를 붙일 것 없이 이어폰으로 만든 나의 주머니 속에서 흠뻑 즐길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글. 권세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