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스카이 (Shirosky)' - [La lecture]
'시로스카이(Shirosky)'는 아직까지 한국 유일의 여성 재즈힙합 프로듀서이며, 심지어 힙합씬을 통틀어서도 보기 드문 여성 프로듀서다. 특별히 그의 음악에서 성적 요소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여성'이라는 수식어가 거추장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아주 의미가 없다고 보긴 어려울 것 같다. '언프리티 프로듀서'가 나오지 않는 이상 남성미 흘러 넘치는 힙합씬에서 여성 프로듀서가 굳건히 작업을 이어오기란 쉽지 않은 법이니까. 그렇게 5년을 버틴 끝에 정규 앨범 [La Lecture]를 내놓았단 점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이 앨범은 강압적으로 배운 힙합씬의 흐름과 억지스런 삶이 아닌, 자주적으로 메가폰을 잡고 고군분투 끝에 살아남은 세련된 재즈힙합 프로듀서 한 명의 작품집이다. 어떤 팬들에게는 이번 앨범이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샘플링과 시퀀싱을 넘나들면서도 특유의 매끄럽지만 거친 듯 들리는 샘플링 특유의 질감이 살아있는 곡들은 여전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가 여태껏 그려온 세상에 비해 조금 더 대중적으로 나아갔다. 과거 시로스카이의 음악에 오묘하면서도 리드미컬한 모스 부호처럼 느껴지는 곡들이 꽤 있었다면, 이번엔 좀 더 쉽고, 부드럽다. 이는 EP도, 미니도 아닌 ‘정규 앨범’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태어난 앨범의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면에서는 가장 자신다워야 하고, 또 어떤 면에서는 최대한 많은 리스너들을 끌어 모을 수 있는 저력을 숨기고 있어야 할.
그러나 분명한 것은 [La Lecture]가 오롯이 시로스카이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첫 작품 [The Orbit]이 점성술과 신비로운 영혼의 영역, 즉 자신의 관심사를 음악으로 형상화한 것이었다면, 이번 앨범은 관심사가 자기 자신의 현실로 들어섰다. 앨범 제목이 지닌 의미 그대로 자신에게 방향성을 제시해 준 이들, 그리고 거기서 영향을 받은 자신을 그려냈다. 그래서일까. 이번 앨범은 이전까지 발표한 앨범 중 가장 메시지가 쉽고 명료한 편이다. 실제로 시로스카이는 자신에게 작고 큰 영향을 끼친 이들과 함께 이 앨범을 만들었고, 눈에 띄게는 피쳐링진부터 세세한 믹싱, 엔지니어링과 관련한 부분까지 소중한 사람들의 흔적을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첫 데뷔앨범에서 그와 함께 했던 프로듀서 Pe2ny를 비롯, MYK, Illinit 등이 이번 정규 앨범을 위해 다시 돌아와 주었다. 시로스카이에게 DJ 시로스카이라는 이름을 덧씌워준 DJ Schedule1도 앨범의 큰 줄기를 그려주었다. 이외에 특별한 수식어가 필요치 않은 래퍼 MC META나 지조, 최근 공동 작업으로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낸 DJ Juice도 함께 했음은 물론이다. 여기에 이미 시로스카이의 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익숙한 MINI, 그리고 KIZK, 롱디, 만쥬한봉지, 해외뮤지션인 Marchitect까지. 풍부한 곡에, 제각각의 방식으로 참여한 사람들의 흔적을 귀에 담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꽤 즐길만한 음감 시간이 될 것이다.
- 대중음악기자 박희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