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텐버즈' [Reticent X]
흥미롭다.사운드의 여백이 오히려 매력적이었던 밴드가 긴장감 넘치는 소리들로 꽉 채운 연주를 펼치는 방향으로 노선을 수정한 것도 그렇지만, 청자와 평자에게 공히 '구텐버즈'의 트레이드마크로 인식되어 있던 보컬리스트 모호의 (성성이 모호하게 느껴질 만큼) 거칠고 생생한 질감의 목소리가 이 싱글에서는 거의 완전하게 배제되어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낯설고 놀랍다. '구텐버즈'의 이름을 내건 작품으로는 만 2년만인 이 세 곡짜리 싱글에 ‘말수가 적다’는 뜻의 단어(reticent)를 타이틀로 붙인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일 거다.
궁금한 것은, '구텐버즈가' 시작부터 의도적으로 그런 방향성을 모색한 것인지 아니면 리허설의 과정에서 우연적으로 새로운 진로와 맞닥뜨린 것인지 여부다. 요컨대, 이 싱글이 다음 앨범을 위한 워밍업의 의미인지 아니면 순간의 열망을 따른 돌발적 체크업의 산물인지 지금으로선 단언하기 힘들다는 말이다.
여기서 저런 의문이 쟁점적으로 대두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이 싱글은 그 자체로 매력적인 작품이긴 하지만 다음 작품에서도 모호의 보컬을 포기하겠다는 의도를 내재한 것이라면 지나치게 과격한 실험이 아닌가 싶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바람이라면 이 싱글이 새로운 경로의 도착점이 아니라 그걸 향해 가는 출발점이기를 기대한다는 것이다. – 박은석 (대중음악평론가) 가장 먼저 귀에 들어 오는 건 보컬의 부재다. 목소리가 등장하긴 하지만 이는 허밍 정도로 연주의 한 부분처럼 존재한다. 매력적인 보컬을 뒤로 제쳐둬도 자신들의 음악을 들려줄 수 있다는 확신이 이들의 음악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실제로 보컬이 없어도 주선율은 계속해서 귀를 파고들고, 연주와 사운드는 시종일관 긴장감이 넘친다. EP [팔랑귀]와는 또 다른 '구텐버즈'의 매력을 볼 수 있게 됐다. 나 역시 이들이 악곡과 연주에 있어서 진일보했다는 걸 확신한다.
–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
록은 소리로 경험하는 에너지다. 말은 쉽지만 음반으로 구현하긴 어렵다. 드럼을 세게 내려치고 피킹을 강하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구텐버즈'가 리허설하며 느낀 날 것의 강렬함을 청자에게도 오롯히 전하고픈 욕구와 긍정적인 성취가 3곡 안에 빼곡하다. 록의 직분을 제대로 이행한 싱글인 셈이다
– 조일동 (대중음악평론가)
노래는 뮤지션을 닮았고, 말을 아낀 대신 교감의 폭은 더 넓어졌다. 정작 음악을 잘한다는 것이 역설적으로 마이너스로 작용할 수 있는 2014년 현재,이들이 구현해내는 낡은 감수성과 거친 질감은 일견 무모해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론 애틋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윤색되지 않은 곡들에선 여전히 미숙함이 풍기지만, 오히려 그 순수함에 대한 애착이 이제는 억지스럽지 않게 체화된 인상을 주고야 마는 것이니. [Reticent X]는 그런지, 블루스, 로큰롤을 혼합했지만 실은 그 모든 것을 넘어서는 지독한 페이소스를 담은 작품이며, 그런 의미에서 정규 앨범의 성격을 예견하는 명징하고 열정적인 증거로 남을 것이다.
– 이경준 (대중음악평론가)
구텐버즈의 세 곡, "어디선가 어딘가에서", "울렁이는 밤", "돌고래와 헤엄치기"에는 노랫말이 없다. 그래서 각각의 곡이 표상하는 제목을 통해 말하려 하는 감정과 스토리, 메시지가 음악의 사운드를 통해 얼마나 정확하게 잘 표현이 되었는지를 객관적으로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세 곡의 음악은 직관적으로 만족스럽다.
세 곡의 음악이 사운드로 대신하는 록킹한 연주의 서사를 통해 감지할 수 있을 만큼 청각적으로 명확하게 각 곡의 스토리를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포스트록 적이라거나 혹은 어떻다는 장르적 분석은 잠시 미뤄두자. 사뭇 거칠어 보이는 음악의 뼈대에 명확한 중심을 잡고 그 중심을 끊임없이 확장하며 음악적 공간을 확보하고 명쾌하게 주제를 실현하는 3인조 밴드의 연주력과 표현은 ‘어디선가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울렁이는’ 사건들의 실체를 선명하게 가시화할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동원된 멜로디와 연주의 빼어난 교차로 인한 음악적 쾌감까지 빠트리지 않고 있다.
낯설지 않으면서도 새롭고, 일순 파격적이면서도 오밀조밀한 짜임새가 돋보이는 음악은 무엇보다 거친 사운드에도 불구하고 음악 속에 잠재된 무한한 스토리가 극적이며 서정적으로 구현되어 있다는 것이 매혹적이다. 어떤 다른 이름이 붙더라도 수긍할 수 있을 것 같은 음악, 우리를 꿈꾸게 하는 음악, 우리를 우리 안으로 더 깊이 헤엄치게 하는 음악.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