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재명' [시월의 현상]
홍대 앞 작은 라이브클럽에서, 어린 시절 사랑했던 고릴라 인형을 위해 노래하던 친구가 그리워할 것이 많은 나이로 자랐다. '로로스' 의 "My Cute Gorilla" 를 처음 들은 날 저 친구를 록스타로 만들겠다는 호기로운 다짐과 함께 나는 그에게 다가갔고 우리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싱글 [Scent Of Orchid] (2006), 1집 [Pax] (2008) 와 EP [Dreams] (2009) 제작에 참여한 것은 음악인으로서 오랜 자랑거리이자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있다. 이 앨범들의 성과와 의의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이후 멤버들의 군 문제로 밴드는 긴 휴식기를 가졌고 지난 해 [W.A.N.D.Y] 로 복귀, 금년 초 한국 대중 음악상에서 '9와 숫자들' 의 [보물섬] 을 제치고 올해의 앨범으로 선정되며 아직 죽지 않았음을 선언했다. 영등포아트센터에서의 대규모 단독공연과 프랑스 미뎀 참가 등 본격적인 활동 재개에 기대와 기쁨이 컸는데 밴드는 돌연 잠정해산을 선언하였고 팬들은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신뢰도 높은 소식통에 따르면 로로스는 라인업 정비 후 활동을 재개할 것이며 해체된 것은 아니다.)
다행히도 '도재명' 이 오랜 망설임 끝에 솔로 활동을 시작했고, 따뜻한 그의 새 노래들이 우리를 다독여준다. '도재명' 의 노래는 완벽에 가까웠던 로로스의 음악에서 약간의 아쉬움으로 남아있던 부분을 채워주는 잃어버린 조각과 같다. 이제서야 '로로스' 라는 한 판의 퍼즐이 완성된 느낌이다. 쉽게 말해 이야기와 목소리다. '로로스' 가 드라마틱한 구성과 웅장한 편곡, 화려한 연주로 보고 듣는 이들을 완전하게 사로잡았다면 '도재명' 은 마주 앉아 조용히 속 깊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두 번째로 발표한 [시월의 현상] 은 그리워라라는 첫 마디로 우리를 이해시키고, 이해해주는 포근한 노래다. 개인적으로 슬픔이라는 화두에 오래 빠져있어 보았고, 여전히 그것을 탐구 중이다. '오스카 와일드' 의 말에 따르면 슬픔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감정이며, 모든 예술의 근원이라는데, 실제로 슬픔을 잘 알고 다룰 수 있는 예술가는 흔치 않은 것 같다. '도재명' 을 오래 알아왔지만 그의 깊숙한 속마음 앞에는 늘 벽이 있었다. 철옹성의 느낌이라기 보다는 투명하고 연약해 보이는 작은 벽이다. 그 안에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지만 한편으론 느낄 수 있었기에 허물려는 노력 없이 그대로 두었다.
[시월의 현상] 을 통해 '도재명' 은 빼꼼히 문을 열어주었는데 그 속에서 슬픔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었다. 그 슬픔을 헤아리다 보니 결국 나에게는 기쁨이 찾아왔다. '도재명' 은 슬픔을 사랑하는 법을 알고 섬세한 손길로 잘 다루는 좋은 음악가였던 것이다. 학창시절부터 마음 속 록스타로 남아있는 남상아님께서 참여해주시니 기쁨이 더욱 커졌다.
지난 해 '9와 숫자들' 과 '로로스' 가 거의 동시에 앨범을 냈는데, 재명이와 나의 솔로 데뷔도 동반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반갑다. 요즘도 쓸쓸한 밤이면, 밤새 술을 마시고 비디오방에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함께 본 날과 도봉동 재명이 집에서 뜨끈한 전기담요 위에 나란히 누워 키득거리며 잠들던 날들을 추억하곤 한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우리의 진짜 시작은 지금부터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5년 뒤, 10년 뒤에도 똑같은 말을 해줄 수 있기를 바라며, Wandy! -2015년 10월, '송재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