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인건, 이원술의 ‘동화’
매우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재즈란 음악은 연주하는 모든 음들을 악보에 기록해 두지 않는다. 대략의 윤곽만이 정해져 있고 이를 바탕으로 연주자는 자율적으로, 즉흥적으로 음들을 만들어 나간다. 그러므로 재즈 연주자가 한 곡을 연주할 때 우선적으로 갖춰야 하는 것은 그 곡에 대한 관점이다. 연주되는 모든 음들을 악보에 기록해 두는 고전음악에서도 그 기록된 음들이 실질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연주자의 해석이 필요할진대, 그보다 여백이 훨씬 많은 재즈 악보에서 연주자의 해석, 심지어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므로 연주자가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 이상일 때 그들은 해석 혹은 관점을 공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연주에는 균열이 발생한다. 모든 음들이 미리 기록되어 있는 고전음악에서 연주자들은 공통된 해석을 만들어내지만 재즈 연주자들은 즉흥적인 연주를 통해 조화로운 대화를 만들어 내야 한다. 악보로 일일이 쓰여 있지 않은 여백을 그들은 조화를 이루면서 즉흥적으로 채워 나가야 한다. 이때 그들은 상호 침투한다. 그리고 서로에게 ‘동화’(同化)된다.
피아니스트 임인건과 베이시스트 이원술은 재즈동네에서 서로 알고 지낸지 20년이 넘은 막역한 사이다. 하지만 그들이 연주자로서 함께 작업한 것은 이번 앨범이 처음이다. 두 사람이 함께 작업한 작품을 굳이 꼽자면 임인건의 앨범 [올 댓 제주 All That Jeju]인데 이 앨범에서 이원술은 연주자가 아닌 프로듀서로 참여했고 그것도 2015년, 최근에 와서야 이뤄진 것이다. 왜 두 사람의 공동 작업이 그토록 늦게 이뤄졌냐는 질문에 임인건은 “지금까지 우리들은 음악을 바라보는 방향이 서로 달랐다”고 대답했다.
임인건은 이미 직업 연주자로서의 경력이 30년 가까이 된 베테랑 피아니스트다. 1989년부터 시작된 그의 음반들은 2000년대 초에 발표된 세 번째 음반 [피아노가 된 나무], 네 번째 음반 [소혹성 B-612]에 이르기까지 국내 (재즈) 피아노 음악에 또렷한 시성(詩性)을 부여했다. 2011년의 다섯 번째 음반에서부터 최근에 발표된 일곱 번째 음반 [올 댓 제주]까지 그의 음악은 엘릭트릭 사운드의 방향으로 옮겨갔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음악의 본성은 변하지 않았다. 그 본성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건져낸 삶의 진실들이다. 언뜻 문학이나 영화의 주제일 것 같은 이 진실들을 그는 담담하게 음악으로 이야기한다. 재즈 피아니스트 임인건은 뜻 밖에도 자신의 음악에 대해 “음악적으로 단순하고 평범한 음악”이라고 말한다.
이원술 역시 국내 재즈 신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베이스 연주자다. 특히 그의 음악은 최근 5년 사이에 본격적인 결실을 맺고 있다. 특히 ‘트리오 클로저’에서는 섬세한 베이스 연주를 들려주었으며, 자신의 독특한 작품을 산보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원술을 주목하게 만들었던 것은 그의 이름으로 발표된 두 장의 음반이었다. 고(故) 군터 슐러가 주창했던 고전음악과 재즈의 융합, 소위 제3의 흐름(The Third Stream Music)을 국내에서 최초로 시도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접점 Point of Contact]과 작곡가로서, 밴드리더로서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 [시간 속으로 Into the Time]는 평론가들로부터 찬사를 이끌어 냈다. 트럼펫 주자 비르키르 마티아손, 기타리스트 오정수와 함께 한 최근의 앨범 [외로운 풍경 A Lonely Sight]도 [시간 속으로]와 연속선상에 있는, 제목처럼 외로운 내면의 풍경을 담은 작품이다.
이원술의 음악은 다분히 국제적이다. 다시 말해 현재 미국과 유럽의 재즈 연주자들이 일선에서 만들어내고 있는 언어들을 그는 공유하고 있다. 그것은 2000년대를 들어서면서 급성장한 한국재즈의 한 단면도일 것이다. 하지만 임인건의 음악은 다르다. 그는 현재의 재즈흐름에서 일정하게 거리를 둔 채(심지어 그는 몇 년 전 서울을 떠나 제주도에서 생활하고 있다) 자신만의 세계를 일구고 있는 모습이다. 조동진, 김민기의 포크음악을 바탕으로 소위 한국 1세대 재즈 연주자들과 연주해 온 그의 음악은(이 음반에 수록된 '강 선생 블루스'는 원로 트럼펫 연주자 강대관 선생에게 바친 곡이다) 다른 나라의 재즈 연주자들에게서는 결코 찾아 볼 수 없는 풍경이 있다. 임인건의 말 대로 두 사람이 음악적으로 지금껏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다.
하지만 외견상 전혀 다른 두 사람의 음악 사이에는 눈에 띄지 않는 숲길 같은 것이 존재했다. 그 길은, 사람은 지나다니지 않는, 바람만이 지나다니는 통로다. 그 통로는 임인건으로부터 시작하여 이원술에게로 이어졌다. 임인건의 음악이 조용히 일으킨 바람이 이원술에게 다가간 것이다. 이원술은 오래 전부터 임인건의 음악에 매료되어 있었다. 임인건 음악의 피아니즘, 서정미 그럼에도 유달리 돋보이는 소박함이 늘 이원술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그와 함께 연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차마 하지 않았다. “인건이 형 음악처럼 단순한 음악이 더 어려워요. 저는 음악적으로 여러 장치들을 쓰죠. 하지만 인건이 형은 그런 걸 사용하지 않아요. 그런데 그 단순한 화성과 멜로디 속에서 너무 멋진 음악이 나오는 거예요. 그런 음악을 해보고 싶었지만 잘 해낼 엄두가 나지 않았죠.”
하지만 대략 일 년 전부터 이원술은 임인건과 함께 연주할 수 있다는 생각을 보다 구체화시키기 시작했고 앨범 [올 댓 제주]를 제작하는 도중에 피아노-베이스 이중주 음반을 임인건에게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니까 이 음반은 여러 명의 편곡자, 작사가, 객원 가수와 연주자들이 참여해 많은 세공(細工)을 들인 앨범 [올 댓 제주]가 녹음되는 과정에서 즉석으로 만들어진 한 편의 크로키 같은 작품이다. 아무런 부담 없이 녹음을 할 수 있도록 앨범의 대부분은 각자가 기존에 발표 혹은 작곡해 놓았던 곡들을 이중주로 다시 녹음하기로 했으며 앨범을 위해서 두 사람 모두 한 곡 씩을 새로 작곡했다(임인건의 '뜬 구름', 이원술의 '소란스런 날').
이 프로젝트를 위해 오랜 고민과 상상을 해온 이원술과는 달리 녹음을 앞두고 오히려 더 많은 걱정을 하게 된 것은 임인건이었다. 그는 녹음 전에 모여서 리허설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원술은 그냥 임인건의 아름다운 피아노를 자연스럽게 녹음에 담는 것이 최선의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은 그 음악을 연주자가 아닌 감상자의 입장에서 심취했던 느낌을 솔직하게 표현하고자 마음먹었다. 이미 두 사람 사이의 ‘동화’는 어느 정도 이뤄진 것이다. 임인건 역시 녹음 이후에 그 점을 말했다. “원술이의 음악을 늘 세련되고 논리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바뀌는 전환점에 온 것 같아요. 제가 편히 연주할 수 있도록 너무도 잘 배려해 주더라고요. 그리고 내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서 비로소 자신의 이야기를 슬며시 꺼낼 줄 아는 방법을 알고 있더라고요. 베이스 연주자로서 그를 다시 보게 되었죠.”
사실 베이스 연주자에게 드럼이 없는 이중주 편성은 다소 부담스럽다. 베이스 연주자를 받쳐주는 소리가 전혀 없기 때문에 베이스 주자가 선택한 음정, 리듬의 적절성이 너무도 명확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원술은 그런 부담은 별로 갖지 않는다고 말했다. 더 중요한 것은 전체적인 사운드이고 음악이 이야기하려는 내용이기 때문에 음 하나, 하나의 기교적인 측면에는 그리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 특히 이 앨범을 듣는 감상법은 바로 그런 것이다.
나는 이 앨범에서 두 사람이 서로에게 동화된 지점이라는 것은 한 장의 사진처럼 머리에 찍힌 풍경들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풍경들은 서로가 따로 기억하고 있는 것이겠지만 그들은 대화 속에서, 음악 속에서 그것을 공유하면서 결국에는 유사한 풍경을 바라보게 된다. 그 풍경들은 아마도 조금은 쓸쓸하고 아득한 것일 게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에게 결코 잊히지 않는 소중한 풍경들이다.
나는 지난 6월에 이 글을 쓰기 위해 이 음악들을 듣기 시작했다. 계절은 무더위가 오기 전의 초여름이었고 하늘은 화창했다. 매일 한정적인 공간을 이동하며 이 음악을 들었지만 난 그때마다 먼 시간 여행을 경험했다. 나의 어릴 적 풍경들 그리고 다가올 훗날의 풍경들을 떠올렸다. 정말 시간은 빠르게 그리고 덧없이 내 앞을 지나간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그러면서도 이 음악을 자꾸 들었다. 글을 쓰기 위해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정말 듣고 싶어서 이 음악을 듣고 또 들었다. 그러면 약 45분의 시간은 어김없이 내 곁을 떠나갔다. 그래서 2015년의 여름은 이 음악과 함께 유난히도 아름답고도 슬펐다. 흘러가버린 시간들. - 나도 내 나름대로 이 음악에 ‘동화’가 된 것이다. 그리고 틀림없이, 당신도 그럴 것이다.
- 황덕호 (재즈 애호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