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펑크의 위기, 그 악조건 속에 등장한 비범한 신예, '더 베거스 (The Veggers)' [Jazz Master]
2010년대 들어와 펑크 락 쇼가 열리는 장소는 점점 사라져갔다. 거점이 없어지자 수많은 펑크 밴드들 역시 하나 둘 사라졌다. 수많던 팬들은 더 빨리 사라졌다. 한국 인디 음악 씬의 시작이었고, 가장 큰 열기를 내뿜던 펑크 씬은 놀라우리만큼 빠르게 위기에 봉착했다. 하지만 이는 다행이기도 했다. 정말 펑크 락을 사랑하는 사람들 만이 남았기 때문이다. 밴드들은 더욱 더 열정적인 활동을 행했고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양질의 앨범들을 선보였다. 팬들 역시 새로운 인디 유행에 흔들리지 않고 이 음악 장르/문화에 애정을 보냈다. 한국 펑크 씬의 규모와 화제성은 예전 같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질적 수준은 현재 최고조이라 할 수 있을 정도다. '더 베거스 (The Veggers)' 는 그러한 최악의 타이밍에 등장했다. 그리고 최고조의 순간을 만들어 가고 있는 밴드다.
2010년 경기도 안양/평촌 지역의 20대 청년 4인방으로 결성된 이들은 어린 나이로 인한 인맥 없음 + 지방 밴드 특유의 거점 없음 + 그로 인한 인지도 확장의 패널티 보유 라는 만만치 않은 약점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공연을 할 수 있는, 자신들을 불러주는 모든 공연에 닥치는 대로 참가하며 서서히 이름을 알렸고, 2013년에는 100% DIY로 자신들이 직접 데뷔작 [Survival Of The Fittest] 을 제작/발표하기도 한다. 이들은 언제나 용감했고 부지런했다. 이는 'The Veggers' 라는 밴드로 하여금 독특한 아이덴티티 확보를 하게 만들었다. 고전 락앤롤과 하드코어 펑크가 믹스 된 독특한 음악적 캐릭터의 확보는 가장 먼저 거론 될 만한 요소다. '더 베거스 (The Veggers)' 에는 80년대 하드코어 특유의 극단적 객기 표출에 의한 원초적 쾌감이 있었고, 그와 정 반대 요소라 할 수 있는 고전 락앤롤 탐구정신에 의한 뛰어난 음악적 센스 표출 & 연주 테크닉의 발휘가 있었다.
하드코어 펑크 파티 무뢰배로의 아이덴티티, 락앤롤 탐구 영스터라는 매우 이질적 요소의 나이스한 콤비네이션을 지닌 '더 베거스 (The Veggers)' 의 강렬한 매력은 서서히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이들 특유의 용감과 성실함이 더해지며 그 속도를 더해갔다. 100% DIY 인디/언더그라운드 비즈니스 마인드에도 불구하고 'The Veggers' 는 이런저런 음악 언론/컴피티션 상위권에 적잖게 등장했다. 이는 간단하게 말해서 "한국 펑크 씬을 다시금 뜨겁게 만드는 영건들 중 No.1 성과" 라고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이들은 애써 꼼수적 홍보 문구를 제작하지 않아도 된다. 이즈노, 노순규, 유새우, 표돈, 밴드 구성원 각자의 뛰어난 실력과 센스, 그리고 이 네 명의 음악적 케미스트리가 훨씬 더 화려하기 때문이다.
매니악함의 극치를 통한 발전이라는 정공법, '더 베거스 (The Veggers)' 의 2번째 앨범 [Jazz Master] 20대 초반이라는 약관에 나이에 발표한 첫 데뷔작 Survival Of The Fittest 은 이런저런 악재를 뚫고 적잖은 인정과 사랑을 받았다. 평단의 호평이 있었고, 적잖은 팬들의 확보도 있었다. 한마디로 실력과 인지도의 성장세의 완벽한 윈-윈 그래프였다. 이러한 순간이 왔을 때 밴드들 대부분은 비슷한 결론을 내린다. 승부수를 던져 밴드의 성장세의 정점을 기록하려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승부수는 대체적으로 "좀 더 많은 팬을 잡기 위한 대중적 튜닝"으로 귀결된다. 이는 나쁜 선택이 아니다. 재능이 있고, 용기도 있는 밴드들이 그러한 선택이 매우 옳았음을 수많은 명작들을 통해 제대로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The Veggers' 의 선택은 정반대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구사하는 "하드코어 펑크" 라는 장르의 아이덴티티에 걸맞은 심화작업을 이 앨범에서 행한다. 더욱 빠르게, 더욱 거칠게, 더욱 심플하게, 더욱 격렬하게, 더욱 신랄하게, 더욱 극단적으로 말이다. 두 번째 앨범 [Jazz Master] 을 통해서 이들이 노리는 승부수는 인지도 확보가 아니다. 하드코어 펑크라는 특정 언더그라운드 음악 장르 특유의 매니악함의 완벽한 확보가 목표이다. 한마디로 "한 분야의 있어서의 마스터" 가 되기 위해 도전하는 것이다.
'The Veggers' 의 신작은 간단하게 말해서 "28곡 / 40분"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는 한 장이다. 데뷔작 [Survival Of The Fittest] 에서 선보였던 80 US 하드코어 펑크와 빈티지/개러지 락앤롤의 만남은 여전하다. Circle Jerks, Gang Green, Adolescents 와 같은 객기 넘치는 80 US 하드코어 아이콘들, The Jam, Buzzcocks, The Cramps 와 같은 펑크 기반의 락앤롤 히어로들이 바로 떠올려 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여기에 신작만의 특징 더욱 짧고 빠르고 강력한 파괴력이 첨부된다. 그 파괴력은 하드코어 펑크의 극단화로 탄생 된 그라인드코어/패스트코어 아이콘들인 Napalm Death, Siege, Drop Dead 등이 생각 날 정도로 매우 매우 강렬하다. 허나 이 앨범을 무식하기만 앨범으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전작 [Survival Of The Fittest] 에서 선보였던 하드코어 펑크와 락앤롤의 황금조합은 여전하며, 그 두 가지 요소의 분리/극대화를 통해 탄생된 초 강력 사운드 & 로큰롤 바운스 특유의 매력이 주가 되는 빈티지한 록 넘버들의 새로운 매력도 굉장하다. 신작 [Jazz Master] 의 포인트는 "강력하되 다양하게" 로 이해 해야만 옳을 것이다.
사운드만 강력해지고 다양해졌다고만 생각하면 안 된다. 좌우 논쟁에서 벗어나 한 발자국 더 나아간 신랄한 코멘터리를 아끼지 않고 뿜어내는 점 또한 이 앨범 [Jazz Master] 의 매력 포인트이다. 현대 한국 사회에 팽배한 약자가 무조건 옳다 라는 삐뚤어진 마인드를 공격하는 "Under Dogma", "두유노우 XXX" 로써 다양하게 악용되는 삐뚤어진 애국심을 분쇄하는 트랙이자 'Crying Nut' 의 멤버 '김인수' 가 피쳐링한 "Kimchi Klux Klan", 하고픈 건 저항주의 펑크지만 되고픈 건 인기 펑크 록 스타인 이중잣대를 비판하는 "Wannna Do Wanna Be" 등은 격렬한 사운드에 어울리는 격렬함을 보여주며 리릭가즘을 청자에게 전달한다. 물론 신랄한 코멘터리가 전부가 아니다. 다양한 사운드 구비만큼 가사의 소재 역시 다양한 것 또한 [Jazz Master] 앨범의 묘미! 택시의 편안함을 재미지게 표현한 Taxi, SNS 의 폐해(?)를 흥겹게 불러 제낀 SNS (이 곡은 Look And Listen 의 '이정민' 이 참여 해 주기도 했다), 브라스 파트까지 가세하고 있는 트랙이자 호러와 락앤롤이라는 전통적인 황금조합에 어울리는 센스 넘치는 Rot N' Roll 등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문장이 반드시 필요하기도 하다.
'더 베거스 (The Veggers)' 의 두 번째 [Jazz Master] 는 한국 펑크의 또 한번의 변화이자 발전을 보여주는 앨범 이라고 단정 할 수 있는 앨범이다. 발전이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중추는 인기가 아닌, 무엇보다 음악적인 요소의 임팩트함이 되어야만 옳다. 이들의 신작은 그 조건에 완벽히 부합한다. 하드코어 펑크와 락앤롤이라는 음악 특유의 매력을 극대화 시키며 매니악함의 극을 보여주며, 그 폭발 속에 다양한 코드의 음악적 희노애락을 선보이며 버라이어티한 재미의 극 역시 보여준다. 이러한 사운드가즘의 극을 보여 줄 수 밖에 없는 용감함과 성실함 역시 최고조로 발휘된다.
한국 펑크의 시작 그 자체인 아이콘 밴드 Crying Nut 의 멤버 '김인수' 가 프로듀서로 참여, 다양한 노하우를 이들에게 전수하여 '더 베거스 (The Veggers)' 가 지닌 재능과 열정을 좀 더 화려하게 빛낼 수 있게끔 큰 도움도 주었다는 부분, 밴드의 격렬하고 화려한 성장세를 가장 확실하게 기록하기 위해 선택한 원 테이크 레코딩 에서 비춰지는 엄격한 자기관리의 현장 또한 쉽게 간과하기 힘들다. 앨범을 플레이어에 거는 바로 그 순간, 한국 펑크의 또 다른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펑크 락 공연이 열리던 그 장소에 대한 추억은 이제 과거의 이야기일 뿐이다. '더 베거스 (The Veggers)' 가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간다. 신작 [Jazz Master] 와 함께 말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