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자켓에는 덩그러니 그릇 하나가 그려져 있다. 판소리하는 팀인가 했더니, 인디 음반 차트에 올라와 있다. 자켓을 열어서 CD를 찾으려면 한참이 걸린다.
어린 시절 열심히 접었던 딱지를 연상시키는 앨범 자켓 안에는 깨알같이 붓 펜으로 쓴 손 글씨들이 놓여져 있다. 자켓 뒷면에는 그 동안의 행보가 담겨있는 사진들이 실려 있는데 얼핏 보면 포스터 같기도 하다. 하지만 왠지 정감이 가는 디자인과 글씨다.
밴드 ‘그릇’은 어쿠스틱 기타와 노래를 맡고 있는 전찬준과 콘트라베이스와 일렉트릭 베이스를 연주하는 조르바로 구성된 남성 듀오다.
그 흔한 싱글이나 EP도 없는 팀이 바로 정규 1집을 냈다. 소속사나 레이블 또한 없다.
그저 길거리, 저잣거리에서 연주하던 남자 둘이 만나 1년 반 정도를 같이 연주하면서 만들어낸 사운드를 담았다. 길거리에서 연주되는 음악은 대부분 신나고, 비트가 있다는 생각으로 첫 곡 ‘Street man’을 듣는다.
가사도 그렇고 단순한 멜로디 후반부에 이어지는 콘트라베이스의 보잉 사운드가 바람 부는 거리를 연상시킨다. ‘이런날엔’ 앨범 타이틀이 ‘이런날엔 달리기’니까 타이틀 곡이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듣는다. 노래를 듣다 보니, 휘파람이 불고 싶어지고, 방 청소가 갑자기 하고 싶어지고, 어디론가 나가 거리를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 곡 ‘바다’는 정처 없이 걷고 있는 나를 어느새 바다로 데려간다. ‘거칠고 차가워 보이는 바다 속은 고요하고 따뜻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눈이 감겨지고 노래가 끝날 때 즈음 파도소리가 귓가에 멤 돈다. ‘그대 오늘밤 와주면 안돼요?’ 제목이 눈길을 끈다. 잠시 야한생각이 들기도 한다.
솔직한 가사와 약간은 느끼한 목소리가 귀에 쏙쏙 들어오고, 몽글몽글한 일렉트릭 베이스 솔로는 와인 한 잔하고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든다. 이제 잠도 솔솔 오고 침대에 눕는다. ‘가만히 침대에 누워’라는 가사로 ‘가만히 침대에 누워’라는 곡이 시작된다. 전반적으로 가라앉는 톤의 목소리와 콘트라베이스 라인이 잠시 눈을 감게 하다가, 후반부에 격정적으로 포효하는 보컬과 콘트라베이스 솔로가 잠을 깨운다.
곡이 끝나고 갑자기 남자 둘의 대화가 이어진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피식’ 웃게 만드는 ‘인트로’에 이어 퍼커시브한 기타리듬이 이어진다.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했을 법한 이야기들로 노래를 풀어가는 보컬은 듣는 내내 입가의 미소를 머금게 한다. 이 사람들 외국물 좀 먹었나 하는 생각은 자켓 사진들을 이미 봤으므로 물 건너 간지 오래지만, 영어로 쓴 노래가 두 개나 있다. 그 중 두 번째, ‘In my side’, 어쿠스틱 기타의 잔잔한 아르페지오 반주와 목소리 하나로 이어지는 노래는 눈치채지 못한 순간 콘트라베이스와 만나고, 마음 속을 어느 순간 파고든다.
잔잔한 감동 속에 누군가의 모습이 옆에 그려진다. 마지막 곡 ‘La la’, ‘첫 번째 트랙인 ‘Street man’이랑 똑 같은 곡 아냐’라고 느끼는 순간 ‘길을 나섰네’라는 가사가 흘러 나온다.
후반부에 ‘초라한 영혼들과 이별한 채’라는 가사로 마무리되는 노래는 평범함 속에 여운을 남긴다.
그릇 1집 ‘이런날엔 달리기’는 그냥 듣기에는 전반적으로 평범하고 밋밋한 사운드의 앨범이다. 사용된 악기도 어쿠스틱 기타, 콘트라 베이스, 일렉트릭 베이스, 젬베 뿐이고 보컬 또한 중 저음의 잔잔한 톤이다.
하지만 평범한 사운드 속에 잔잔한 감동과 여운을 남기고 간간히 느껴지는 풋풋함에 미소 짓게 하는 앨범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