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벳의 모양은 모두 다르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보여주려 똑같은 알파벳만을 하염없이 써내려간다면 지겨워질 것은 뻔하다. 항상 같은 멜로디 라인, 곡 구성, 보컬 톤……. 머릿속에 떠오르는 뮤지션은 넘치고 또 넘친다.
Ste는 전혀 다른 모양의 세 가지 곡을 담았다. A의 형태와 B의 형태, B의 형태와 C의 형태는 모두 다르다. 하지만 모든 형태가 알파벳 구조 아래 있다면. 다름은 조화가 되고 조화는 질서가 된다. 이 앨범은 Ste의 A, B, C를 보여준다.
A. Anita
맑고 경쾌하게 달리기 시작한 이유는 그녀, Anita!
무채색의 일상을 비비드하게 만드는 건 그녀의 머리칼도, 커다란 눈도, 입술 때문도 아니다. 그저 그녀의 존재, 그녀를 알게 된 것만으로 충분하다. 컨트리 스타일의 기타 리프로 경쾌하게 막을 올리는 이 곡은 고조된 마음을 스피디한 드럼으로 표현하여 청량감 있는 사운드로 감싼다. 심장이 처음 뛰기 시작한 것처럼 주체할 수 없다.
B. Betty
연회장은 온통 붉은 벨벳으로 가득하다. 샹들리에의 조명 역시 빨갛고, 연초의 연기가 자욱하다. 연회장의 남녀는 가면으로 상기된 뺨을 감춘다. 위스키를 머금고 주변을 둘러보던 그. 가는 선의 드레스를 입은 그녀의 마주친 눈동자. 살짝 마주치는 순간의 눈웃음만 짓고 그녀는 다른 곳으로. 레트로한 관악기 구성과 기타 리프는 올드하지만 위트있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의 댄디한 남자를 눈앞에 떠오르게 한다. 멜로디와 바운스에 몸을 맡기면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인다.
C. Cindy
수채화로 덧씌워진 풍경. 공원의 초록색과 하늘의 푸른색, 그 어디에도 인기척이 없는 풍경에 괜스레 떠오르는 건 그녀의 뒷모습. 단정한 머리카락에서 풍겨온 비누향기, 그리고 내게 짓던 무심한 표정. 가느다란 손가락과, 물 먹은 듯 투명한 눈동자. 잔잔한 멜로디 라인은 그러나 깊고 아련한 이 감정을 놓치지 않는다. 어디서 부터 시작해야 될지 모르는 이 마음을 닿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지만 그 고민도 즐거움의 하나 일뿐.
Anita, Betty, Cindy. 세 가지 칼라는 서로의 영역을 확실히 지키며, 또 동일한 테마의 질서아래 자태를 뽐낸다. 레퍼토리를 반복하는 지루한 길을 가지 않았다. 다른 스타일을 이렇게 자신 있게 낸 것은 조급함이 아니다. 이 모든 스타일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기에 가능한 퍼포먼스인 것이다. Ste의 A, B, C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그녀를 찾아 노래하고, 유혹하고, 갈망하며, 질주한다. 멜로디를 좇다보면 자연스레 그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노래를 듣는 누구나 같은 모습을 떠올릴, 공감각적인 경험을 공유하게 될 것이라 단언한다. 세상에 파문을 남길 Ste의 첫 EP 를 주목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작가 '에이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