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삐밴드' 데뷔 20주년 EP [pppb]
90년대는 우리 대중음악사에 가장 빛나는 보석들이 줄지어 탄생한 시기다. 각자 자신만의 빛깔, 중량, 컷을 경쟁하듯 탄생시킨 시절의 한가운데였던 1995년, '삐삐밴드'(달파란, 박현준, 이윤정)는 유난히 눈에 띄는 모양새로 세상에 처음 등장했다. 데뷔 후 3년이라는 짧은 활동 후 '삐삐밴드' 는 각자 자신들만의 음악적 영역을 견고하게 구축해 왔다. 일렉트로닉과 영화음악 분야에서 국내 최정상급 뮤지션으로 입지를 굳힌 '달파란', EE 로 해외에서 먼저 주목을 받은 '이윤정', 원더버드, 3호선 버터플라이, 모노톤즈 등을 통해 밴드씬을 지키고 있던 '박현준' 모두 지난 20여년간 쉼 없는 행보를 펼쳐왔다. 18년 만에 다시 한 자리에 모인 '삐삐밴드' 는 비교와 대체 불가능한 삐삐밴드 고유의 빛깔을 다시금 재현한다. 또 세 사람의 음악적 내공을 온전히 쏟아낸 이번 새 앨범의 만듦새는 20년이라는 세월만큼 보다 깊이 있고 정교해졌다.
선공개곡이었던 "ㅈㄱㅈㄱ" 은 '삐삐밴드' 가 90년대 시도했던 다분히 키치적이고 아방가르드한 펑크(punk) 음악을 고스란히 재현한다. 보컬 '이윤정' 은 데뷔 당시를 연상시키는 거침없고 히스테리컬한 보컬로 '삐삐밴드' 의 귀환을 알린다. '박현준' 은 세상 모든 것이 지긋지긋하다는 노래 가사를 날카로운 기타 톤으로 들려준다. '달파란' 이 조각한 전체 곡 구성과 전개는 도발적이고 즉흥적으로 들리도록 섬세하고 치밀하게 연출됐다.
타이틀곡 "오버 앤 오버(Over And Over) (Feat.자이언티)" 는 '삐삐밴드' 가 정규 2집 [불가능한 작전] 에서 보여줬던 무그 신디사이저의 일렉트로닉 작법을 21세기형으로 진화시킨 곡이다. "오버 앤 오버" 는 우리 주변의 소외계층이 느끼는 쓸쓸함과 공허의 악순환, 우리시대를 살아가기에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곡이다. 특히 피처링에 참여한 자이언티는 특유의 담백하고 따뜻한 위로의 감성을 '삐삐밴드' 의 노래에 얹었다. "오버 앤 오버" 를 통해 '삐삐밴드' 는 자신의 앨범에 처음 '자이언티' 라는 피처링 뮤지션을 참여시켰다. 펑크와 일렉트로닉 등의 장르를 선도해왔던 '삐삐밴드' 가 힙합 R&B 장르의 뮤지션을 피처링으로 참여시킨 것은 리스너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하다. "아이 필 러브(I Feel Rove)" 는 몽환적인 신디사이저와 디스코풍의 훵키한(funky) 기타리프, 그루브 넘치는 베이스 연주가 담긴 '삐삐밴드' 표 댄스 음악이다. 업 템포의 곡이지만 밤의 열기보다는 새벽녘의 공허와 그리움의 감성이 더 짙게 담겼다. '삐삐밴드' 는 러브(rove)와 러브(love)의 유사 발음을 통한 중의적 가사로 사랑을 부르짖지만 결국 방황을 하고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능숙한 의인을 기다리고 기대하는 사람의 정서를 감각적으로 표현한다.
"로보트 가나다 라마바" 는 '삐삐밴드' 의 음악적 실험이 전면에 드러난 곡으로 마치 기계처럼 음절을 하나씩 쪼개 노래하는 '이윤정' 의 독특한 보컬과 다양한 사운드 효과가 섬세하게 디자인 된 곡이다. '이윤정' 이 쓴 가사 역시 곡의 독특한 스타일만큼 독특한 층위를 지닌다. '이윤정' 은 "로보트 가나다 라마바" 가사를 통해 현실은 이상을 좇고 이상은 원하는 시기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는 마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처럼 결국 허구를 쫓는 반복적인 행위와도 같다는 의미를 담았다.
문화창작집단 '삐삐밴드' 와 함께 하는 아티스트들. 90년대 '삐삐밴드' 는 단순한 뮤지션이나 밴드가 아니라 새로운 문화 창작집단의 형태로 탄생됐다. 단 3년이라는 짧은 활동기간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이름이 우리 대중음악사에서 지속적으로 회자되고 있는 것은 당시뿐 아니라 2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삐삐밴드' 를 대체할 만한 누구도 등장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이번 '삐삐밴드' 의 [pppb] 앨범 역시 문화 창작집단으로서의 '삐삐밴드' 의 역할과 의미를 재확인 할 수 있다. 프론트 우먼이자 '삐삐밴드' 를 대표하는 아이콘인 '이윤정' 은 전체적인 콘셉트와 스타일링, 뮤직비디오 연출을 맡았다.
"지긋지긋" 뮤직비디오는 룸팬스가 편집을 맡았으며 타이틀곡 "오버 앤 오버" 는 신동글이 연출에 참여했다. 앨범 재킷 디자인에는 모임 별(Byul.org)이, 프로필 촬영에는 영화 "반지의 제왕" 과 "황금나침반" 등에서 라이트닝 테크니컬 TD를 역임한 구범석 작가가 참여했다. [pppb] 의 새로운 로고 디자인은 '이현준(EE)' 이 맡았다. 이번 [pppb] 앨범은 다양한 영역의 아티스트들이 '삐삐밴드' 의 음악을 중심으로 자신의 크리에이티브한 에너지를 아낌없이 발산해 완성된 작품이다.
'삐삐밴드' 라는 이름으로 18년 만에 발표한 새 EP 앨범 [pppb] 는 '달파란', '박현준', '이윤정' 이 자신들의 데뷔 20주년을 자축하기 위한 지극히 소박한 기획에서 출발했다. 이 소박한 뮤지션들의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새로움에 대한 열망은 그들이 왜 우리 대중음악계에 대체불가 한 존재였는지를 다시금 일깨워 주는 작품이다. 그들의 독특한 위상은 2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우리 세대의 창작자들과 대중들을 끌어당기는 거대한 구심력을 지니고 있음도 증명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