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피아니스트 안수경의 첫 번째 정규앨범 [Ray of sunshine]
재즈피아노를 전공하고 지속적인 연주활동을 해온 피아니스트 안수경이 자신의 색깔을 찾기 위해 써온 곡들을 세상에 내놓았다. 연주활동에 있어서 여러 가지 편곡과 화성, 멜로디적인 실험을 하고 그 실험들에 의한 변화를 곡으로 표현하고 싶었다는 이 앨범은 충분히 멜로디적이지만 세세히 보면 관행적이지 않다. 사운드의 진행감과 폼을 파괴하지 않고 그 내부에서의 세밀하고 치밀한 변화와 본인만의 멜로디를 찾고자 하는 모색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앨범의 타이틀곡인 두 번째 트랙 ‘Ray of sunshine’은 그 제목에 맞게 빛나는 아름다움을 드러내지만 한 곡 안에 세 가지의 테마를 배열하고 기타와의 극적인 연결고리를 사용하여 자연스러운 흐름을 만들어낸다. 기타 박상연과의 멜로디나 솔로 연결의 호흡은 다른 사람이지만 하나의 방향성을 가진 두 사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최상의 하모니를 만들어 낸다. 엔딩은 하나의 리프 위에서 펼쳐지는 드러머 김영진의 강력한 솔로로 장식된다. 이것은 엔딩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이 음악이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는 느낌마저 들만큼 에너지 넘치고 환상적이다. 이 모든 장치들을 안정적이고 확실하게 받쳐주는 역할은 베이스 고재규가 맡았다. 앞으로 드러내지 않고 음악의 기조를 튼튼히 함으로 멜로디와 리듬 전부를 의미 있고 화려하게 만들어낸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듯이, 안수경은 피아노트리오 곡 ‘Aconite’에서 전통적인 비밥 진행 위에 특유의 똑 부러진 터치와 리듬감각을 들려준다. 멜로디 사이에 삽입한 라틴리듬은 그 어떤 괴리감도 남기지 않고 상쾌하게 해결될 뿐만 아니라 스윙과 라틴 사이의 감각적인 일치를 의도한다. 드럼과 피아노만으로 이루어진 첫 솔로 코러스는 꽉 채워지지 않은 상태의 공간감을 주지만 그 긴장감을 놓치지 않게 하며, 이어진 피아노 솔로에서는 안수경의 아카데믹하고 뜨거운 열기로 꽉 채워진다. 앞으로 치고 나오는 두 번째 코러스에서부터 솔로가 끝날 때까지 이 피아니스트가 비밥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서 얼마나 열정적이고 다양하며 또한 냉철한지를 쉼표에서까지 느낄 수 있게 한다.
바로 다음 트랙에서 펼쳐지는 ‘Adelie penguin’을 들어보면 처음에 언급했던 실험과 변화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한 사람의 뮤지션이 한 앨범 내에서 보여줄 수 있는 스타일의 한계를 지속적으로 벗어나고 있다. 여유 있는 템포, 충분한 공간, 앞 트랙들에서 느껴지지 않은 전혀 다른 멜로디스타일, 템포라는 공통점만으로 이어나간 환상적인 발라드까지 펑크라는 리듬을 선택했지만, 철저히 어쿠스틱하게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여 풀어낸다. 그래서 다른 수록곡들과의 차별성보다는 어울림을 선택하고, 그러나 또 다른 가능성, 즉 장르의 변화에서도 흔들림 없이 밀어붙이는 고유의 자아가 드러나게 한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House of romance’는 3박자 곡이 가지는 두 가지 스타일의 결합을 시도했고 단 한마디의 추가로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한다. 한 음 한 음에 정성이 느껴지는 섬세한 구조의 솔로 라인은 깔끔하지만 강한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다.
그 외 서정적 분위기의 보사노바 곡인 ‘Fortune’, 진행과 멜로디가 멋지게 어우러진 ‘Padam padam’, 비장한 분위기의 라틴 ‘Santiago’, 특이한 분위기의 블루스 ‘Look the other way’, 오후의 느낌을 충만하게 표현한 ‘Afternoon’이 있다.
이 모든 곡이 피아니스트 안수경을 대변하고 있으며 또한 정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화려한 테크닉보다는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이 느껴짐과 동시에 듣는 이로 하여금 미소 짓게 하는 편안함을 가지고 있으며, 실험작이라고 하기에는 청취자를 위한 따뜻한 배려가 곳곳에 베여있다. 단지 하나의 재즈 음반이라기 보다는 한 사람의 음악 세계를 열정과 정성을 다해 담아놓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 뜻깊은 이상이 듣는 이들의 가슴속에 오래도록 새겨지기를 기대해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