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을 만들기로 마음먹은 것은 2013년 5월 말이었다. 발매일은 6월 23일로 미리 잡아두었다. 그날이 제 4회 레코드폐허가 열리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6월 2일 나와 비싼트로피 레코즈의 정근은 강동구 암사동에 위치한 조광사진관과 암사생태공원에서 사진을 촬영했다. 6월 4일에는 디자이너 썽킴을 만나 음반의 전체적인 디자인에 대한 간단한 아이디어들을 공유했다. 밤에는 ML과 새로운 비디오에 대한 회의도 진행했다. 음반의 최종 디자인이 나온 것은 6월 10일이다. 비디오는 곧 발표될 예정이다.
테스트 녹음에 처음 들어간 날은 6월 7일이고 본격적인 녹음에 들어간 것은 6월 11일부터다. 모든 녹음은 은평구 신사동의 6호선 새절역 부근에 위치한 좆밥합주실에서 이루어졌다. 녹음 엔지니어는 좆밥합주실의 주인인 밴드 POPE X POPE(구 더 히치하이커)의 상우 씨였다. 모든 악기의 연주는 내가 했으며 믹싱과 마스터링도 상우 씨와 둘이서 해결했다. 5곡의 음원이 완성되고 마스터링까지 모두 끝난 시점은 6월 20일이었으며 발매일을 3일 남겨둔 시점이었다. 우리는 본의 아니게 여러 밤을 함께 샐 수밖에 없었다.
DIY 레이블인 비싼트로피 레코즈의 지침에 따라 우리는 음반에 들어갈 대부분의 구성품을 수작업으로 만들었고, 조립했다. 음원의 완성은 늦었으나 이미 CD를 제외한 모든 구성품을 구비하거나 제작해놓은 까닭에 스케줄상의 큰 무리는 없었다. 음반은 6월 23일 레코드폐허를 통해 무사히 발매되었고 초도물량으로 조립해둔 70장을 모두 팔았다.
여기까지가 대략의 작업기이며, 이하는 내가 개인적으로 기록해두고 싶은 것들이다.
1. 이 음반을 만들게 된 계기는 1) 2012년 4월 21일 발매된 [백년] 이후 이렇다 할 결과물을 내지 않고 이전 그대로의 포맷과 곡을 통해 활동하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 2) 조그만 demo를 통해서라도 그간의 결과물을 공유하고 싶었고 마침 레코드폐허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어 행사 성격 상 부담 없이 작업해서 낼 수 있을 것이란 판단.
2. 애초 계획대로라면 demo가 되었을 이 음반은 결과적으론 EP로 발매되었는데 그것은 1) 사진과 디자인의 퀄리티가 생각보다 좋았고 2) 통기타 하나로 대충 녹음하려던 곡들이 막상 작업을 하면서 살이 많이 붙어 demo 치고는 비교적 정상적인 퀄리티에 가까워졌고 3) 5곡만 들어있지만 플레이타임은 31분 31초로 짧지 않았고 4) 어쨌건 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3. 음반의 구성물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고민하며 가장 중요시여긴 것은 ‘단가가 저렴하면서도 눈에 잘 띄고, 유니크하게 느껴질 것’이었는데 개인 취향이겠으나, 완성된 음반 구성물에 대해 나는 만족하며 내 원칙도 나름 잘 지켰다 판단한다. 해외의 DIY 레이블 중에선 수작업의 장점을 충분히 살려 대량생산된 것보다 오히려 더욱 정교하게 디자인 된 음반을 내는 곳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음악을 음원으로만 소비하게 된 시점에 CD와 LP, 테이프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CD와 테이프를 사주세요, 라고 어떻게 제안할 수 있을까? 우리는 mp3가 대세가 된 현재의 상황에 비관하기보단 저 질문에 어떤 답을 내릴 수 있을지 더 고민해야할 것이다.
4. 이 음반을 제작하는데 들인 총 비용은 2012년 발매한 정규 1집의 10분의 1 수준이며 기간도 10분의 1 정도를 썼다. (퀄리티도 10분의 1에 맞추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연주도 내가 모두 다 해야하는 상황이었는데, 그것은 더욱 좋은 세션을 섭외하고 훈련시킬 시간과 물질적인 여유가 없어서였다. 믹싱과 마스터링도 같은 이유에서 직접 했다. 비단 음악가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은 아니겠으나 집약적인 경험을 얻는 것은 늘 중요하다 본다. 물론 나는 모든 파트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나름의 아쉬움은 있지만 이번 작업을 통해서 내가 잘 하는 것과 잘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를 조금 더 잘 알게 되었다. 이것은 좋은 성과다.
5. 역시 음악가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은 아니겠으나, 좋은 친구들과 좋은 작업자를 만나는 것은 중요하다. 내 선에서 신뢰하고 컨택할 수 있는 친구들을 모아 심플한 체계를 통해 작업했으며 그 결과물에 대해서도 나는 일단 신뢰한다. 물론 이 멤버쉽이 단순한 ‘취향’을 넘어 ‘퀄리티’가 되기 위해선 서로 간의 많은 발전이 필요하겠으나, 일단은 그렇다. 도와준 모든 친구들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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