쾅프로그램의 첫 정규앨범 [나 아니면 너]
누가 나를 너라고 부를 것인가.
나를 너라고 쓰기 시작하면 새로운 문법이 생기면서 동시에 정신분열이 일어난다. (1)
박력 있게 예민하고 여린 기운을 쥐락펴락한다. 비가 하염없이 내리는 한밤에 이 앨범을 많이 들었다.
젊음은 참 눈이 시리구나 생각해본다. 아름다운 앨범이다. (2)
[나 아니면 너]엔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 가득하다. (3)
멜로디가 빈 구석 없이 달려드는 와중에 가사는 초점이 없고 정신이 나가 있다. 박자는 편집증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반면 보컬은 계속 불안한 선을 그으며 나간다. 이 두 사람은 상황을 완전히 통제된, 기기묘묘한 열 곡을 빡빡히 그들의 첫 앨범에 채웠다. 도시를 관찰하고 근근이 살아가는 룸펜들 같기도 하고, 늦잠을 자고 일어나 기어다니는 벌레들 같기도 한 이들이 만든 음악이다. (4)
개인적으로 첫 곡 WHATCH를 꼽고 싶은데, 인트로 격의 트랙으로 실려있지만, 최근 들은 가장 강렬한 곡 중 하나이면서, 그간 쾅프로그램이 끌어들여 온 요소들―노이즈, 기타 루프, 멜로디 없이 던지는 보컬, 특유의 드라이브감 넘치는 기타 스트로크―이 가장 유기적으로 결합된 어떤 정점으로 보인다. 코러스에서 터져 나오는 기타는 압도적인 감흥을 주는데, 듣는 이에 따라선 거의 숨이 멎을 수도 있을 것이다. (5)
쾅프로그램에 대한 나의 기억 중에 가장 생생하고 것은 양평 두물머리에서 있었던 폭우 속의 공연이다. 계속해도 괜찮을지 의심스러울 정도의 아수라장 속에서 천둥과 번개가 쾅프로그램을 갖고 연주하거나 쾅프로그램이 천둥과 번개를 음원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 앨범에는 그 음악적 장관, 광기 어린 풍경이 먹구름처럼 깔려있다. 언제 내려칠지 모르는 번개는 무너진 시간, 폐허 속에 자신이 서 있다는 것을 감지하는 순간에 갑작스럽게 찾아올 것이다. (6)
이 음반이 잘 만든 것을 넘어 훌륭한 느낌마저 드는 것은 이 음반이 무언가를 ‘제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고 그것을 설득력 있게 풀어냈기 때문이다. 그것은 1) 2인조라는 포맷일 수도 있고 2) 딜레이와 리버브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한국에선 좋은 전례를 찾기 힘든) 사운드(의 공간 설계)일 수도 있고 3) 주로 뉴웨이브와 포스트 펑크로부터 가져온 레퍼런스들을 활용하는 방식들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4) 고립적이고 자폐적으로 보이지만 한편으론 무언가를 계속 선언하고자 하는 정서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5) 다른 무엇일 수도 있다. 이러한 제시들이 지금의 한국─한국의 음악이라거나, 씬이라거나, 사회라거나, 세대라거나, 여하간─을 어떤 식으로든 보여주고 있거나, 반대로 만들어내고 있다 생각한다. 그것이 이 음반의 맥락을 만들어준다. (7)
2013년은 기록될 만한 엄청난 앨범도, 공연도 나오지 않은 이상한 해이다. 페스티벌은 난립하지만, 실제 나오는 음악의 질은 떨어지고, 관객과 여러 씬의 양도 줄어드는 추세다. 음악과 지역을 논하는 목소리는 없어지고, 서울 기반의(한국 기반의) 밴드에 쏟아지는 관심은 극히 적은 수준이다. 가히 이 씬의 핵겨울이라 할 만하다. 지금 이때, 이 씬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한국적'인 밴드가 아닐까 한다. '한국적이다'라는 타이틀을 달았던 많은 음악가들과는 너무 다른 이 앨범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논하고 오해하던 '한국적'인 음악에 대해 정의할 수 있는 지표가 될 것이다. 서울이라는, '수많은 일들이 동시에 일어나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난민 '로빈슨 크루소'가 만든 이 앨범은 지난 EP의 날것의 향을 훨씬 넘어 더 풍부해졌다. '좌우로 밀고 위로 밀고' 하는 이 첫 앨범, 분명 기대하게 될 것이다. (4)
글:
1. 한받 (야마가따 트윅스터)
2. 백현진
3. 박다함 (노이즈 뮤지션, 헬리콥터레코즈 대표)
4. 이잔반 (밴드 11:11)
5. 정세현 (밴드 404)
6. 류지완(밴드 악어들)
7. 회기동 단편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