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구멍을 메우려 끊임없이 외치는 자기최면 [괜찮아]
지나간 사랑의 강렬한 기억은 때때로 악몽으로 찾아와 그를 괴롭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익숙해진 아픔에도 가끔씩 밀물처럼 찾아오는 그리움에 그는 스스로에게 나지막이 위로의 한마디를 던지며 도망치기만 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주문과도 같은 거짓말은 거듭할수록 보다 깊게, 보다 차갑게 그의 상처를 덧낼 뿐이였다. 이제 괜찮다는 말은 사실 그렇길 바라는 자기 최면이다. 하지만 이마저 없다면 이따금 끝도없이 그를 몰아세우는 후회와 자책을 막을 길이 없다. 이 앨범은 그의 기억 한구석에 자리한 엉킨 실타래를 차분히 풀어내는 9곡의 노래를 담고 있다. 그는 여기서 ‘사랑’이라는 거대담론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실제의 에피소드 하나하나를 감각적이고 섬세한 묘사를 통해 천천히 풀어 내는데 힘쓴다. 그 시선은 관조적이기에 오히려 절절하고, 개인적이기에 오히려 보편적이다. 때로는 현장감 있는, 때로는 회상적인 화법은 감성적인 음악 어법과 어우러져 호소력을 얻는다. 여기 한 신인 뮤지션의 쓸쓸한 소회를 통해 마음의 구멍을 간직한 이들이 조금의 위로를 얻을 수 있다면 그때가 이 작품의 의미가 빛나는 순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밴드 ‘로드피어’와 ‘오르부아 미쉘’ 의 기타리스트이자 한국 대중음악상에 빛나는 이원술의 프로젝트 'Point of Contact'의 작곡가, 김선욱의 솔로 프로젝트
김선욱은 메틀밴드 로드피어의 기타리스트로서 당시의 왕성한 라이브 활동과 정규 1집은 메탈팬들의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이후 21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작곡상을 수상하여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받은 그는 조금씩 솔로 프로젝트를 계획하기 시작했다. 그는 현재 몸담고 있는 ‘오르부아 미쉘’의 EP앨범 발매와 라이브 활동, 그리고 이원술의 프로젝트 'Point of Contact'에 참여하는 등 의미있는 음악활동을 이어오다 그동안 틈틈히 썼던 곡들을 모아 이제 마침내 솔로 1집 앨범 ‘괜찮아’ 를 발매했다. 그는 이 앨범에서 작사, 작곡, 편곡, 연주 및 프로듀싱을 모두 혼자 소화해 내 전방위 뮤지션으로서의 재능을 발휘한다. 특히 밴드와 실내악 등 편성을 가리지 않는 세련된 편곡은 신인으로서는 가볍게 보기 어려운 탄탄한 기본기를 보여준다. 모든 녹음이 홈레코딩으로 진행된 이 음반은 홈레코딩의 사운드적 완성도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고민한 흔적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비유와 반어, 각운법 등의 기법으로 풀어낸 감각적인 노랫말, 짜임새있는 트랙리스팅, 자유롭게 구사하는 화성적 색채감, 그리고 치밀하게 계산된 디테일 등 순수한 음악적 컨텐츠에 집중한 모습이 그것이다. 특히 하나의 주제로 통일성 있게 트랙을 따라 흘러가는 내러티브는 음반의 전체적인 만듦새에 있어서도 신중을 기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헤비메틀만을 고집해온 뮤지션의 작은 일탈로만 보기에는 기대이상의 충실한 음악적 성과를 보여주는 이 앨범은, 앞으로 이어질 싱어송라이터로서의 그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앞으로의 그의 행보를 기대해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