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운드클라우드 총 재생 수 2만 건, 일 년 만인 12월 12일 CD와 12인치 LP로 발매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기묘한 질감의 사운드와 신비로운 목소리가 어우러진 일렉트로팝
못MOT의 이이언과 LOVE X STEREO의 토비, 투 도어 시네마 클럽의 엔지니어 사이먼 데이비 참여
빗물구름태풍태양Raindrop, Cloud, Typhoon & The Sun
더 많은 이야기More Story
시간을 소리로 채우는 일은 어쩌면 과거보다 쉬운 일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엇으로 얼마나 잘 채우는가’와는 여전히 별개의 이야기이고 여전한 과제이기도 하다. 사람12사람의 EP는 근래 보기 드물게 ’잘 채워진’ 앨범이다. 음울함과 수수께끼같은 온기가 차갑고 영민한 프로그래밍과 빈틈없이 공명한다. -이준오 (캐스커Casker)
사람12사람의 음악은 느리고 어둡고 매력적이다. 지음의 보컬 음색엔 귀를 잡아끄는 독특한 오리지널리티가 있고, 은천의 촘촘하고 섬세한 편곡엔 오래 공을 들인 작업에서만 느껴지는 우아한 견고함이 있다. -이이언 (못MOT)
당대 일렉트로 팝의 지향점은 도발적인 멜로디와 전자악기의 과시적인 ‘댐핑’이 아니다. 덩어리진 질감과 또 다른 덩어리진 질감의 섬세한 만남에 가깝다. 퓨리티 링, 처치스, 그라임스, 멀게는 M83의 음악을 구분 짓는 건 보컬과 곡의 질감, 또는 악기와 악기의 질감이 만나는 방식이다. 이들의 음악이 멜로디가 중심이 아닌 채로 일렉트로 ‘팝’이라 불리는 것은 그래서 흥미롭다. 구닥다리 이름 안에서 꽤 새로운 흐름을 형성한 이 움직임이 음악 신을 한바탕 휩쓸고 난 뒤, 사람12사람은 그 느슨한 틀 안에서 예상치 못한 낯선 질감을 길어 올렸다. 꽁꽁 언 멜로디를 해동시키는 듯한 보컬은 입술이 떨어지는 찰나의 소리마저 악착같이 채집해 또렷한 제 공간을 형성한다. 그리고 좀 멀리 떨어진, 역시나 덩어리로 공고한 악기들과 절정부 즈음에서 조우했다 다시 멀어져 제 갈 길을 간다. 서로의 소리가 섞이고 떨어지는, 그리고 그 광경을 기다리는 지독하게 ‘간지러운’ 순간은 비할 데 없이 극적이라 귀를 곤두세우게 한다. ‘팝’이 청자의 집중력을 얼마나 이끌어내느냐를 가장 큰 미덕으로 삼는다면, 그런 특성이 가장 잘 드러난 ‘더 많은 이야기’를 비롯한 [빗물구름태풍태양EP]야 말로 지금의 가장 이상적인 팝 음반이 아닐는지. 즉, 사람12사람은 질감을 주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질감으로 드라마를 만들었다. 다음을 안보고는 못 배기는 식의 흐름이 한 곡 안에 있어 줄곧 물고기처럼 보컬의 뒤꽁무니를 따라가게 되는 것이다. 그 결을 그저 “침잠하는”, “공기 같은”, “부유하는”처럼 한 가지 표현으로 규정짓기엔 아쉽다. 살결처럼 야하게 들리다가, 때로 스산하게 외로우며, 도무지 서울을 떠올리기 어려워 어디에서 온 것인지 궁금해지는 음악. 그들의 노랫말처럼 빗물도, 구름도, 태풍도, 태양도 될 수 있을 것 같은 음악이라서다. -유지성 (GQ KOREA 피처 에디터)
라이너 노트
[빗물구름태풍태양] EP는 사람12사람의 첫 음반이다. 2012년 처음 활동을 시작한 2인조 일렉트로닉 밴드 사람12사람은, DJ이자 프로듀서로 오래간 활동하며 유수의 리믹스 작업과 MVIO 컬렉션의 음악감독, 신스팝 밴드 트램폴린의 프로듀스 등을 담당해온 은천과, 보컬리스트이자 송라이터인 지음으로 구성돼 있다. 그간 라이브를 통해 깊은 인상을 남기며 많은 팬들의 기대를 모아온 이 듀오가, 기나긴 산고 끝에 여섯 곡의 스튜디오 레코딩을 처음으로 내놓게 되었다.
추상적인 몰핑 효과와 같은 리듬이 인상적인 첫 트랙 ‘빗물구름태풍태양’과 이어지는 ‘Wind Blow’는 이 음반의 한 가지 특징을 잘 보여준다. 사운드의 변화 속에 긴 호흡으로 짜여진 이 두 곡은, 하염 없이 이야기하는 듯한 보컬 뒤에서 묵직한 저음이 서서히 긴장감을 쌓아 올린다. 하나하나의 소리가 결정적인 순간에 치고 들어오고, 다시 빠져나간 뒤에도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듣는 이의 마음을 쥐고 흔든다.
그 반대편에서 이 음반의 정서적인 특징을 대변한다고 할 만한 곡은 ‘무덤’이다. 담담한 마음과 무덤이란 두 가지의 심상을 엮은 이 곡은, 불안과 고독을 말하는 가사의 싸늘한 아이러니를 잘 보여준다. 애써 가라앉히려 해도 감출 수 없는 불안을 말하듯 금속성의 저음이 공간을 헤집는 동안, 부서질 듯 아슬아슬한 보컬은 “그저 담담해야지”라 노래한다. 거기에, 홀로 ‘무덤덤한’ 비트가 무심한 듯 흐르며 가슴 서늘함을 더한다.
이 음반은 4번 트랙인 ‘더 많은 이야기’에 이르러서야 잠시 마음 놓고 비트를 즐길 수 있게 해준다. 어쩌면 은천의 기존 작업을 보아온 이들에게 가장 익숙한 사운드일지도 모를 이 곡은, 당당하게 흐르는 탄탄한 비트 위로 찬란한 신스가 한껏 펼쳐진다. 이어서, 매혹적으로 일그러진 불협음이 인상적인 ‘그 즈음’은 일렉트로닉 뮤지션 이이언이 보컬리스트 지음과 속삭임의 앙상블을 이루면서 여운을 남긴다.
[빗물구름태풍태양]의 무겁고도 싸늘한 신스 사운드는 시종일관 어둡지만, 때로는 위협적으로, 때로는 찬란하게, 마치 날씨처럼 변화하고 꿈틀거리며 공간을 뒤덮는다. 시간의 흐름을 짚는 비트는 대지처럼 홀로 단단하지만, 때때로 빗물과 바람에 쓸리기도 하며 자리를 지킨다. 그 속에 녹아든 공기처럼 부유하는 보컬은 언제라도 스러질 듯 위태로운 목소리로 암울한 은유들을 노래하지만, 그럼에도 처연함을 잃지 않는다.
이 음반의 정서적 미덕은 바로 그곳에 있다. 큰 규모의 어두운 사운드와 공기 같은 보컬이 이뤄내는 슬픈 음악이 강렬하게 흐르는데도, 여섯 트랙을 관통하며 어둡게 빛나는 것은 감정에 휩쓸려 곤두박질치거나 무너져내리지 않는 우아함이다. 오랜 시간 동안 세심하게 주조해 쌓아 올린 결과물이란 점에 수긍하게 되는 결과물이다. 또한 반짝이 천이란 인공적인 소재를 이용해 은하수 같은 모습을 만들어낸 지음의 아트웍과도 맞아 떨어진다. 두 명의 사람이 빚어낸 아름다운 소우주의 풍경은 빈틈 없는 설득력으로 청자를 사로잡는 것이다.
크리스탈 캐슬스(Christal Castles), 투 도어 시네마 클럽(Two Door Cinema Club), 쉿 로봇(Shit Robot) 등과 작업해온 사이먼 데이비(Simon Davey)가 마스터링을 담당했으며, 바이닐(LP)에는 보너스 트랙이 수록된다. 공연 기획과 레이블, 미디어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영기획(YOUNG,GIFTED&WACK RECORDS)에서 유통과 홍보를 담당한다.
- 미묘 (음악가, krrr.k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