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ash Flood Darlings
플래시 플러드 달링스(Flash Flood Darlings)는 제이 송(Jay Song)의 솔로 프로젝트다. ‘번쩍이는 홍수 그대’ 정도로 번역될 수 있는 이름은 태국에서 애인과 함께 있을 때 받은 느낌을 떠올리며 지었다. 어릴 때 뉴질랜드로 이민을 간 후 16살에 독립해 20대 후반까지 흐린 날이 대부분인 작은 도시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친구들과 함께 살았다. [Vorab and Tesoro]는 10대 시절 그가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친구들과 함께 살며 보낸 무모하고 아름다운 청춘의 순간을 담은 음반이다.
Flash Flood Darlings의 첫 음반 [Vorab and Tesoro]
'우리 젊은 날에 미래는 없어. 우린 그냥 순간에 존재할 뿐'
17세의 플래시 플러드 달링스가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서 보낸 섬광처럼 빛나는 청춘의 순간 어디론가 달려가는 비트와 휘청이는 신시사이저, 우울하지만 다정한 보컬의 찬란한 신스팝
Q: 당신의 음반 [ Vorab and Tesoro ]를 하나의 가사로 표현한다면 ‘At Neo’s’의 '우리 젊은 날에 미래는 없어 우린 그냥 순간에 존재할 뿐’이 아닐까 싶었어요. 그런 정서로 만든 음반이 아닐까요?
A: 네. 맞아요. 그리고 또 하나를 추가한다면 ‘Saturday Night Road Trip’의 '너만 함께 있다면 괜찮아'라는 가사예요. 우린 미래에 대한 생각, 두려움이 없었고 친구들끼리 서로 위로하고 그 순간을 같이 즐겼던 거죠. ------상상마당 웹진 인터뷰에서
지금 당장 레이블에서 제작자가 하는 일을 물으면 그것도 일이냐 콧방귀를 뀔 일부터 그게 가능한 일이냐 놀라며 되물을 일까지 수백 가지를 댈 수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이 무엇이냐 물으면 음악가가 음반에 담으려고 했던 의도와 에너지를 듣는 이가 오해하지 않도록 전하는 일이라 하겠다. 플래시 플러드 달링스Flash Flood Darlings의 [Vorab and Tesoro]를 오해 없이 듣기 위해 많은 게 필요하진 않다. 열린 마음과 세심한 시선 그리고 아래의 글이 조금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플래시 플러드 달링스(이하 그의 본명인 제이Jay로 부르겠다.)의 음악을 처음 듣고 나도 모르게 곡! 정말! 잘 쓴다! 라고 느낌표를 연타로 뱉었다. 인터넷을 통해 세계의 모든 음악을 찾아들을 수 있고 그를 재현하기 위한 기술이 공기처럼 존재하는 지금. 유행하는 스타일을 따라 하는 건 형의 멋있어 보이는 옷을 입어 보는 것처럼 쉬운 일이다. 하지만 그 옷이 자신과 어울리란 보장은 없다. 제이는 자신의 음악을 하고 있었다. 유행을 의식하거나 부자연스럽게 멋을 부리지 않았다. 제이의 곡은 아직 믹싱이 서툰 편임에도 (자신의 작업실이 없는 그는 모니터 스피커 대신 헤드폰으로 믹싱을 한다.) 부딪힘 없이 각 악기가 어우러진 소리를 낸다. 모든 소리가 있어야 할 곳에 존재한다. 이는 그가 만드는 음악이 온전히 자신의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음반 발매를 앞두고 이러한 감상이 그대로 이어졌다면 음반의 카피를 어떻게 썼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내가 그의 음악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을 놓치고 있다는 걸 깨달은 건 첫 곡 '별'의 탄생 이후다. 제작자에게는 역할이 있지만 입장도 있다. 한 장의 음반을 팔아 거둔 수익으로 다음 음반을 제작하는 가난한 인디 레이블 제작자의 입장에서 영어 가사로 모든 곡을 써 온 제이에게 한국어로 쓴 곡을 써 볼 생각은 없느냐 권유했다. (참고로 영기획에는 2권유/후포기 룰이 있어 두 번까지 권유한 뒤 음악가가 승락하지 않으면 다시는 권유하지 않는다.) 제이는 흔쾌히 자신도 한국어로 곡을 써 보고 싶었다며 얼마 후 '별'을 보내왔다. 별 생각 없이 곡을 듣고 좀 울었다. 아, 이 사람이 이런 노래를 하는 사람이었구나. 너무 잘 만들어져 빈틈 없어 보이던 곡 안에 이런 이야기가 담겨 있었구나. 그제서야 제이가 쓴 다른 곡을 가사를 찬찬히 훑으며 들었다. 쉽게 잠을 이루기 힘든 밤이었다. 다음날 제이와 곡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가족과 떨어져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살면서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각 곡이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장소와 상황은 보편적이라 할 수 없지만 그 안에서 그가 느꼈던 감정은 오랫동안 내 안에도 있는 것이었다. 계속 그의 음악을 오해하고 있었다면 다시 그 감정을 꺼낼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음반의 배경과 언어를 깨고 다른 이들에게도 이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음반 제작 과정을 아는 게 감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다음 문단은 건너 뛰어도 좋다.)
[Vorab and Tesoro]의 수록곡은 'In The City'를 제외하고 모두 시간 순이다. '별'을 제외하고 곡의 가사는 모두 영어로 쓰여졌지만 디자이너와 상의 후 시디 패키지 안 속지에는 번역된 한국어 가사만 적었다. 제이가 직접 번역했고 내가 아주 조금 손을 봤다. 개인적인 내용의 음반이기에 제이의 모습을 담고 싶었다. 다른 이가 발견 못하는 제이의 모습을 붙잡고 싶어 일부러 그간 여자를 주로 찍어 온 박의령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시디 표지(이 음반은 시디와 음원의 표지가 다르다.)의 사진은 제이의 얼굴에 랩을 씌우고 그 위에 낙서를 한 것이다. 제이가 친구들과 함께 장난치며 찍은 사진을 모습을 재현했다. 음반의 디자인은 s-f가 맡았다. 이 음반의 중요한 축인 시간과 비밀을 다양한 레이아웃을 통해 표현하고 인스타그램에서 내가 쓰던 플래시 플러드 달링스 이모티콘을 투명 트레이 사이드에 집어 넣었다. 마스터링은 'Saturday Night Road Trip' 싱글부터 함께 한 로보토미가 맡았다. 로우파이하지만 또렷한 제이의 사운드를 충실하게 구현하기 위해 이틀 동안 마스터링에 매달렸다. 타이틀 곡은 첫 곡인 '별'과 마지막 곡 'In The City'다. 제비뽑기해 타이틀을 골라도 될 만큼 좋은 곡들이지만 일부러 다른 성격의 곡을 골랐다. '별'은 음반의 유일한 한국어 가사 노래고 'In The City'의 6분 23초로 음반에서 가장 긴 러닝타임을 가진 곡이다. 눈치챘는지 모르겠지만 음반을 가장 의도대로 들을 수 있는 건 속지를 보며 시디로 듣는 것이다.
[Vorab and Tesoro]의 오해 없이 듣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그의 음악을 가장 오해하지 않을 것 같은 세 사람-제이의 열망을 지금의 음악으로 완성할 수 있도록 가르친 음악가 캐스커, 음악에서 풍경을 읽어내는 평론가 김윤하 그리고 샘 스미스의 노래를 들으며 새벽을 달래는 만화가 이우인-에게 가능한 개인적인 감상을 들려 달라고 했으니 이를 참고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많은 음악을 쉽게 들을 수 있는 시대다. 그 와중에도 귀를 기울여 듣지 않으면 온전한 마음을 내주지 않는 음악이 있다. 부디 당신이 플래시 플러드 달링스의 [Vorab and Tesoro]에 담긴 아름다운 이야기를 오해 없이 듣는 행운을 누릴 수 있기를.
-하박국HAVAQQUQ / 영기획YOUNG,GIFTED&WACK 음악의 첫 팬
에이블톤 마스터클래스에 그가 처음 나의 학생으로 왔을 때 늦게나마 그의 포트폴리오를 듣고 놀랐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앨범에 수록된 'Waiting'의 데모였다. 뉴질랜드에서 들어온 지 오래지 않아 한국말도 다소 서툴던 그의 음악은 ‘한국적인 요소’라는게 전혀 느껴지지 않는 그야말로 그냥 ‘외국음악’이었고 거칠지만 유니크했다. 그 글로벌한 정서는 시간이 지나 데뷔앨범을 발표한 엄연한 프로페셔널 뮤지션이 된 그에게는 장점이 되기도 단점이 되기도 하겠지만 최소한 이 이 앨범을 들었을 때 그것은 명확히 ‘장점’으로 작용한다. 서정미도 깊어졌고 로우파이 지향의 사운드는 흡인력이 늘었다. 로보토미의 마스터링도 훌륭하다. 신스팝과 칠웨이브를 오가며 축축한 멜로디와 가사가 단정한 프로덕션 위에서 춤춘다. 아름다운 앨범이다.
-이준오Casker / 음악가
수록곡들을 틀어놓고 방안을 기어 다니는데 스무 살쯤의 겨울 찬 공기가 다시 생각이 났다. 모두가 섹시했고 마르고 철없던 영감으로 가득 찼던 그때. 그리고 때마침 봤던 영화 '킬 유어 달링'. 플래시 플러드 달링스의 [Vorab and Tesoro] 앨범은 왠지 모르게 알렌 긴스버그와 윌리엄 버로스와 루시엔 카의 그날들을 떠올려 보기에도 무척이나 어울렸던 거다. 올겨울 이제는 잡일과 여전한 고민들로 썩어 문드러지고 있는 삼십 대 내 친구들에게 이 앨범을 꼭 들려주고 싶다.
-이우인 / 만화가
음악을 들으며 영화를 떠올리는 일은 드문 편이지만 이 앨범 [Vorab and Tesoro]를 듣는 동안은 달랐다. 수 없이 쏟아지는 이미지의 파편들에 몇 번이고 똑바로 정신을 차리고 있는지 나 자신을 확인해야 했다. 타고난 제 나름의 속도로 스쳐 지나가는 장면들은 여러가지였지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월플라워’나 ‘청춘스케치’ 같은 영미권 틴에이저 무비였다. 곧이어 뒤따라온 ‘몽상가들’을 거쳐 ‘렛미고’를 지나 ‘도니다코’나 ‘패컬티’ 같은 장르 영화에까지 생각이 가 닿자 그제야 머릿속 전구에 불이 들어왔다. 장르도 내용도 국적도 다른 이 모든 영화들이 가진 단 하나의 공통점은, 기댈 곳 없는 망망대해에 홀로 서 있는 소년과 소녀들이었다. 분야는 다르지만 플래시 플러드 달링스의 음악 역시 그 시절과 취향의 카테고리가 꼭 어울리는 음악이다. 쉽고 편하게 신스팝이나 감성적인 인디트로니카라는 딱지를 붙이거나 영화 '드라이브'의 OST로 주목받았던 콜리그(College)가 떠오른다느니 어설프게 앞서간 뮤지션들의 이름을 읊을 수도 있겠지만 어쩐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앨범 안에 담긴 선율 하나하나가 음악 그대로의 음악이라기보다는 삶의 가장 여리고 아린 부분에서 길어 올린 애처로운 소리들이기 때문이다. 그때가 아니면 느끼지도 소리 내지도 못할, 오로지 너와 나 사이에만 흐르는 비밀스런 순간들. 그리고 그 순간을 바라보는 소년은 파도에 몸을 싣기보다는 잔잔해지기를 기다리며, 별 하나에 마음을 담기보다는 흘러가는 별을 그저 조용히 바라보는 시선의 소유자다. 부모님과 떨어져 남극과 가까운 뉴질랜드의 남섬에서 10대 시절을 보냈다는 이 프로젝트의 주인공 제이 송(Jay Song)의 개인적인 경험은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이 앨범의 시작과 끝 모두를 책임진 키워드일지도 모르겠다. 너도 나도 주워섬기는 시대의 레트로가 아닌 나만이 알고 공유할 수 있는 개인과 정서의 레트로. 누구나 이 음악을 사랑하리라 장담할 순 없지만 적어도 외면하기는 힘들 거라 예상한다. 마치 우리의 어린 날들이 그렇듯이.
-김윤하 / 음악평론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