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공간, 공간의 음악
박종윤(대중평론가)
음악, 더욱 정확히는 ‘씬’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음악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를 뽑으라면 아무래도 ‘인물’을 첫 번째로 놓을 수 있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음악을 누군가 만들고 연주해야 그것을 ‘음악계’라 부를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첫 번째는 그렇다 치고, 그렇다면 그 다음은? 사람마다 다른 판단을 가지고 있을 테지만 나는 두 번째로 중요한 요소로 ‘공간’이 놓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쨌건 젊은 아티스트들에겐 언제나 이야기를 나누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서로의 음악에 감흥을 받고, 동료를 만나고, 때로는 사랑과 우정을 나눌 아지트가 필요한 법이니까.
‘한 잔의 룰루랄라’는 서울시 마포구 동교동 166-5번지 2층에 위치한 카페다. 조금 더 간단하게는 그냥 홍대 앞의 가장 변두리 쪽에 위치한 작은 카페라 이야기해도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 소개하는 이 음반은 카페 한잔의 룰루랄라의 개점 5주년을 기념해 만든 음반이다. 하지만 참여한 아티스트들의 면면을 확인해보면, 이 음반이 단지 자족으로만 그 기능을 다하는 대개의 기념음반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참여뮤지션]
먼저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김태춘, CR태규, 하헌진, 씨 없는 수박 김대중으로 이어지는 소위 컨트리/블루스 계열의 뮤지션들이다. 눈치 빠른 이들이라면, 이들이 모두 2012년 발매된 붕가붕가레코드의 컴필레이션 [블루스, 더 Blues]에 참여한 뮤지션들이란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더해서 김태춘, 김대중과 ‘삼김시대'라는 프로젝트로 묶이는 포크뮤지션 김일두가 이끄는 부산의 펑크록 밴드 지니어스가 있고, [블루스, 더 Blues]에 프로듀서이자 뮤지션으로 참여했다. 그리고 이에 앞서 록밴드 눈뜨고 코베인의 보컬로 더 유명한 깜악귀가 청년실업의 이기타와 결성한 기타트윈스가 있고, 김태춘과 같이 마산 출신인, 위트 있는 로큰롤을 연주하는 존 스트롱맨 밴드가 있다.
비록 스타일은 천차만별이겠으나 이들이 느슨하게나마 컨트리/블루스의 전통을, 혹은 인간적인 관계를 공유하며 ‘지금의 한국'에서 새로운 음악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는 점은 이미 여러 매체에서도 다뤄진 바 있다.
다 음으로 눈에 띄는 것은 김사월, 아를, 신승은, 코스모스 슈퍼스타, 그리고 삼군. 앞서 언급한 이들에 비해 대체로 어린, 그리고 간소한 포크팝 혹은 일렉트로닉을 연주하고 있는 그들은 새롭게 씬에 진입하고 있는 젊은 싱어송라이터들이다. 카페 한잔의 룰루랄라를 비롯, 전통의 클럽 빵과 역시 홍대 앞에 위치한 아담한 카페 언플러그드에서 종종 연주하고 있는 그들은 주로 ‘여성적’인 정서를 기반으로 각자의 해석을 덧붙인 음악을 들려준다. 이를테면 김사월과 아를이 느리고 침착한 핑거스타일에 애상적인 정서를 담아내고 있다면 신승은은 보다 업템포인 스트로크에 낮은 목소리로 젊은 여성이 쉽게 마주치는 ‘한국적인 풍경'들에 관해 위트 있게 풀어내는 식. 한편 코스모스 슈퍼스타의 정서는 김사월과 아를의 그것과 비슷하지만 기타 대신 단정한 일렉트로닉 사운드로 풀어낸다. 한편 이 문단에서 등장하는 유일한 남성 뮤지션인 삼군은 심플한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보여준다는 점에선 약간의 공통점도 있으나 특유의 길고 사려 깊은 노랫말, 그리고 포크송 스타일의 다정한 멜로디가 인상적.
남아있는 아나킨 프로젝트, 사이, .59, 회기동 단편선은 각자의 노선을 따른다. 먼저 아나킨
프 로젝트는 언뜻 보면 키치하게 보이나 한국사회의 가장 후즐근한 단면을 불편한 노래와 불편한 사운드를 통해 가감 없이 드러내며, ‘유기농 펑크 포크’를 캐치프레이즈로 삼아 오랫동안 독특한 포크음악을 선보여온 사이는 IDM 그룹인 다미라트와 협업, 자신의 옛 곡인 ‘DNA’를 새로운 버젼으로 들려준다. 4인조 인디록 밴드 코코어의 베이스로 오랫동안 씬에서 활동해온 김재권은 최근 시작한 일렉트로닉 팝 그룹 쩜59로 끈적끈적한 미디엄 템포의 한잔의 룰루랄라 테마송을 제작, 마지막으로 싸이키델릭 포크뮤지션인 회기동 단편선은 자신의 오래된 데모음반에서 한 곡을 꺼내 보다 덤덤한 버젼으로 다시 부르고 있다.
한잔의 룰루랄라 컴필레이션 [먼데이서울 퍼스트임팩트]
서 두의 이야기를 조금 더 이어가자면, 그래서 이 음반은 카페 한잔의 룰루랄라라는 ‘살롱’을 기반으로 모여든 뮤지션들의 면면을 보여주고 있는 음반이라 말할 수 있다. 다채로운 음악들이 담겨 있고, 대부분은 젊다. 이 글은 일종의 가이드일 뿐이며, 관점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들을 수도 있다. 컴필레이션이란 형식의 특성상, 듣는 방법의 가짓수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생각한다. 다만 바람은, 지금 이 곳에 한데 모여 음악을 연주하던 이들이 앞으로 어떤 식으로 자신의 길을 만들어갈 지도 함께 바라봐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길은 같다가도, 때때로는 멀어지거나 꼬이고, 가끔은 다시 함께 걷기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 길들이 각자 자유자재로 흘러가는 모습을 차분히 따라가는 것은 분명 듣는 이에게도 즐거운 일일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