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금 문재숙 해현경장(解弦更張)의 풍류
해현경장(解弦更張). 활을 풀어 다시 조이는 것. 당파적 삶처럼 인생은 늘 그렇다. 차면 비우고 맺히면 풀고 마치 변법적인 자강처럼 현위의 인생이 맺고 풀어댄다. 인생 회갑이란 의미 또한 그런 것이 아닐까 감히 생각해 본다. 문재숙의 가야금은 화이부동(和而不同)이다. 나와 다른 것에 대해 오히려 더 기뻐하며, 다른 것을 틀리다고 하기는 거녕 다른 것을 오히려 인정하고 자신을 뒤돌아본다. 그러나 다른 이의 말과 행동에 맹목적이지 않고 자신만의 가치를 더욱 유지하고 잘 발전시키는 사람이다. 그것이 바로 그가 가야금산조 및 가야금병창 인간문화재인 까닭이다. 1997년 김죽파류 가야금산조 예능후보자 시절부터 2006년 예능보유자에 이르기까지 그는 늘 화이부동했다.
그가 회갑을 맞으며 해현경장의 마음으로 그의 가야금 역사를 담은 음반을 발매한다. 음반 “첫사랑”이다. 그때 청출어람의 부품 꿈으로 김죽파라는 거산(巨山)을 만나 가야금을 조율(調律)하며 1989년 김죽파 선생의 부음에 이르기까지 그는 늘 한결같이 선생과 함께했다. 김죽파류 가야금산조는 가야금산조의 비조이자, 고전이다. 오랜 연륜과 역사 그리고 품격을 가진 산조이다. 산조(散調). 늘 화두이다. 산(散)이란 화두 속에서 나는 근대성을 확인한다. 허튼 가락이란 말보다는 펼친 가락이라는 생각을 했다. 산조는 장단이란 수평적인 세계질서에 가락을 펼치고 맺고푸는 조임과 시름을 담은 성음을 담아 강유(剛柔)의 농담(濃淡)으로 놀며(遊) 풀어가는 가락이다. 조선 실학자 홍대용은 거문고 명수였다. 그가 논하는 맛(味)의 미학속에 산조의 발생과 미학을 볼 수 있다. 한때 왜 펼쳤을까 고민도 해보았다. 거기에 바로 영산회상이있다. 조선조 내내 돌리고 돌린 도드리(換入)의 세계가 있다. 흡사 돈오돈수를 위한 깨닮음의 과정같은 영산(靈山)의 세계에 대한 펼침이 바로 산조였다. 돌아가신 백대웅 선생님이 늘상 반복하신 화두가 있다. 정악과 민속악으로 음악을 신분화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어찌 신분이 음악을 창출할까! 같은 음악을 민간취타라 하면 민속악이고 취타를 만파정식지곡이라하면 정악인가! 민간풍류는 민속악이고 이왕직아악부가 편집한 영상회상은 아악인가!
선비들의 비망록인 고악보. 수행을 위한 고전속에 이미 답은 다있다. 왜 민간풍류가 그리고 산조가 있는지. 풍류(風流)의 예술화가 산조이다. 바람이 일어주는 자연과 자연 그대로의 철학적인 인식과 체험을 위한 음악에서 그 철학적인 인식을 쟁이적인 풀어낸 것이 산조이다. 그래서 산조는 장단놀음이고 성음놀음이고 시름놀음이다. 그것이 바로 맛(米)의 미학이고 근대미학이다.
김죽파 산조의 위대함은 거문고조현법의 수용이다. 이것이 곧 풍류의 확대이다. 장사훈의 거문고조현법의 변천을 보면 임진왜란이후 바로 거문고4궤 유현 중심의 임종평조,계면조의 체계 확립을 읽을 수 있다. 기존 음악 어법의 체계화인데, 바로 그 틀위에서 영산회상을 통한 산조의 꽃핌을 볼 수 있다. 처음 감창조가 광주에서 산조를 발표할 때, 그는 여러 가지 악기를 통해 산조를 피력했다. 그리고 가야금으로 산조를 꽃피웠다. 가야금은 자유이다. 오랜기간 금(琴)으로 통칭하지만 물계자,우륵을 통해 꽃 피우고자 한 자유의 역사가 있다. 산조의 적통이 김창조라면 그 빛을 따라 역사화한 김죽파 그리고 문재숙이 있다.
그는 유일하게 김죽파로부터 가야금산조, 민간풍류, 병창을 오랜 기간 학습하고 튼실하게 전승받았다. 평소 김죽파로부터 ‘내 기름까지 짜간다’ 는 말을 들었으니 그의 집념을 볼 수 있다. 또한 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니, 문재숙은 이론과 실제를 겸비하고 있다. 문재숙을 보면 드는 생각 중 하나는 항상심(恒常心)이다. 늘 그렇고 그러하다. 문재숙 삶의 페이지를 보면 그렇다. 누가 뭐라 해도 그는 늘 그렇다. 그러나 그가 내어 놓는 결과는 다르다.
문재숙은 김죽파선생 사후 1993년 김죽파류 문재숙 가야금산조를 김동준의 반주로 첫 음반 취입을 하여 김죽파류의 성음을 그대로 음반화한다. 산조의 맛을 쥐고 펴는 것이고 놀리고 흘리고 맺고 달며 죽파류 특유의 고가(古家)의 적조와 풍류를 풀고 있다. 그리고 1998년 “풍류 문재숙”이란 음반을 내며 김죽파류 민간풍류를 정리하고 있다고 2003년 “문재숙의 죽파이야기”라는 음반을 내며 김죽파류의 가야금산조,민간풍류, 가야금병창, 신민요 등 죽파의 음악세계를 완성한다. 이는 김죽파를 통해 문재숙이 완성되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 곳에는 가야금의 김창조의 음악혼이 흐르고 있다. 그리고 이런 흐름은 한국사회의 전통과는 다른 영역으로 놀고 있는 기독교음악의 새로운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물계자의 검과 가야금이 강유(剛柔)의 농담(濃淡)처럼 하나로 놀듯 전통과 현대의 영역에서 오래된 미래의 세계를 펼치고 있다.
문재숙의 음반 청조(淸調),풍류(風流),이야기에서 그런 지향을 읽을 수 있다. 연주는 선율이나 장단 잘 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선율 하나 하나에 담긴 깊은 은유 세계 그리고 흐름에 침잠한 천년의 힘을 쿡쿡 눌러 담아야 제맛이 난다. 현학적인 치졸한 맛에 길든 치장보다는 굳고 긴 호흡이 감동을 준다. 음악은 인간이 이루어낸 최고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문재숙을 통해 늘 그것을 본다. 늘 돌아오는 회갑의 변법적인 풍류가 있다. 늘 해현경장하는 줄풍류를 위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