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과 메틀의 결합, 그 세 번째 진보
고스트윈드(Gostwind)는 2004년 2월, 다운 인 어 홀에서 드럼을 담당했던 류근상과 기타리스트 김병찬, 그리고 저대를 맡고 있는 박재호가 조직한 그룹이다. 적극적으로 전통음악을 도입하기 위해서 서울대 음대 국악과 출신으로, 전주 대사습놀이 전국대회에서의 차하와 동아 국악 콩쿠르 판소리 부문에서 금상을 획득한 보컬리스트 오혜원을 영입하며 국악과 헤비메틀을 융합시킨 밴드의 특색을 도출시켰다. 2004년 8월 첫 번째 공연을 펼친 후 서울 아트챔버오케스트라와 협연, 조계사 초청 특별 공연 등 독특한 퍼포먼스를 펼쳐보였다. 2005년에 데뷔앨범 [10,000 Years Ago]를 발표한 뒤 롤링 홀에서 가진 앨범 발매 단독 공연에서는 현대 무용과 함께 하는 라이브 콘서트로 국악과 메틀의 결합이라는 밴드의 특징을 십분 살린 공연으로 주목받았다. 이후 독특한 음악성으로 클럽공연과 병행하여 ‘KTF도시락 스테이지 - 록과 국악의 한마당 콘서트’, ‘2005 국악 축전 - World Beat Concert’, ‘통영 국제음악제’ 등 크로스오버 성향의 무대에서도 계속해서 활동했다. 보컬리스트가 한양대 국악과를 졸업한 왕해경으로 바뀌는 등 류근상과 김병찬을 제외한 모든 멤버가 바뀌며 5인조로 축소되어 2006년 두 번째 음반 [Korean Rd.]를 발표했고, 이후 ‘서울숲 별밤 페스티벌’(2007), ‘울산 처용문화제 국내팀 초청공연’(2007)에서 공연을 펼쳤다. 또 2008년 초에는 공개된 디지털 컴필레이션 [WhAt'S uP? II; 와스프 발라드 컬렉션]에 ‘Illusion’으로 참여했다. 그리고 꾸준한 공연활동을 벌여오다가 이번에 세 번째 음반을 발표했다. 두 번째 음반이 발표되고 7년만이다.
이번 앨범에서도 류근상과 김병찬을 제외한 멤버는 교체되었다. 고양필하모닉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베이스주자 박정현과, 안산시립 국악관현악단의 대금수석으로 있는 김은형, 역시 안산 시립국악관현악단 단원인 해금주자 김승택 그리고, 박경리 작가의 소설 ‘토지’의 내용을 기반으로 한 서사음악극 ‘토지’에 월선 역으로 출연했던 김란이 보컬로 가입했다. 두 장의 정규음반과 한 곡의 디지털 싱글을 발표했던 고스트윈드의 이전 음악을 들어보면, 연주에 있어서 대금(혹은 저대)과 바이올린의 상호작용이 전체적인 음악의 큰 틀이 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일렉트릭 기타가 최대한 솔로를 자제하고 대신 이러한 악기들이 보컬과 동등한 위치에서 보컬과 대화하듯 멜로디를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멤버 교체에서 바이올린의 위치에 해금이 자리한 점은 밴드 사운드의 적잖은 변화를 예고한다. 판소리에 그 뿌리를 둔 보컬, 그리고 대금과 해금, 이렇게 밴드 내에 멜로디를 담당하는 주체들이 모두 전통음악의 파트로 구성된 까닭이다. 하지만 이번 음반을 들어보면 악기나 목소리는 그 뿌리와 관계없이 스스로 ‘퓨전’을 시도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김승택은 해금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는 깊은 비브라토로 우리의 전통적인 맛을 우려냄과 동시에 기민한 보우 잉으로 바이올린의 자리를 대체한다. 또 김란의 보컬 역시 판소리 창법과 일반적인 창법의 중간쯤에서 밸런스를 맞춘다. 여기에 지금까지 최전방에서 한 걸음 물러서있던 김병찬의 일렉트릭 기타는 필요에 따라 목소리를 높이며 할 말을 풀어낸다.
데뷔앨범 [10,000 Years Ago]가 ‘진도 아리랑’에서 그리고 두 번째 앨범 [Korean Rd.]가 모차르트의 레퀴엠에서 각각 모티브를 얻었다면, 이번에 발표되는 세 번째 앨범 [Kkokdugaksi]는 제목 그대로 유일하게 내려오고 있는 민속 인형극 ‘꼭두각시놀음’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여명이 밝아오듯 신비한 느낌으로 발전되는 오케스트레이션과 팀파니 연주 위에 ‘꼭두각시놀음’의 주제부를 재현하는 ‘Intro’와 그 정적을 깨며 등장하는 타이틀트랙 ‘Kkokdugaksi’ 접속곡은 앞서 언급했던 고스트윈드의 변화를 보여준다. 전형적인 8비트의 록비트는 국악의 자진모리장단과 교차하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어지는 보컬, 일렉트릭 기타, 해금 그리고 대금의 주제 멜로디 변주는 청자의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로 긴박감 넘친다. 내용에 있어서는 가부장적 봉건가족제도를 박첨지 일가를 들어 비판했던 원래 ‘꼭두각시놀음’과는 달리, 대중과 주류에 속하려면 그 누구에게든 조종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의 ‘인형극’이라는 점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고스트윈드의 음악이 놀라운 점 가운데 하나는 그닥 상관없어 보이는 음의 파편들이 한 데 어우러져 조화를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풍자적인 성격이 강한 가사를 가진 ‘Pest’는 그러한 밴드의 음악적 특징이 잘 살아있는 곡이다. 쉴 틈 없이 이어지는 투베이스 드럼의 난타가 만들어내는 휘몰이장단 위를 마치 바이올린 연주를 듣는 듯 한 해금과 플루트의 역할을 하는 대금이 모이고 또 흩어지며 조화를 이룬다.
디지털 싱글로는 이미 발표되었지만, 정식 음반에 수록될 기회를 잃어 묻힐 뻔 했던 발라드 넘버 ‘Illusion’은 원곡과 유사하지만 더욱 미려한 연주로 다시 수록되었다. 향후 고스트윈드의 이름을 더욱 많은 이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을 만큼 대중성과 음악성을 겸비한 곡으로, 후반부 압도적인 오케스트레이션을 날카롭게 가르는 대금의 멜로디는 가슴 뭉클하다. 어그레시브한 일렉트릭 기타의 디스토션 사운드로 시작되는 ‘Look At The Top’은 사물놀이의 7채 장단이 한 음절씩 끊어지는 보컬의 라인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우며, 자신의 노래를 하는 듯 한 가사도 재미있다. 이 외에도 아리랑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기념하며 만든 강원도 아리랑 변주곡 ‘Oriental Age’, 매국세력을 꾸짖는 저항적 메시지를 본격 심포닉메틀 사운드에 담은 ‘Judgement Day’ 등 한 장의 음반을 통해 서구의 록/메틀 사운드는 우리 전통음악과 씨줄과 날줄로 얽혀 치밀하고 정교하게 직조된다. 8번 트랙 ‘Gu Arirang’은 무반주의 보컬로 이루어진 소품으로 숨 가쁘게 지나간 7곡의 트랙들을 정리하는 역할을 한다. 오랜만에 발표되는 음반임에도 불구하고 총 러닝타임이 짧다는 점이 다소 아쉬움으로 남긴 하지만, 군더더기 없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제대로 풀어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리고 가시적인 변화들이 전체적인 사운드에 있어서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점 역시도 주목할 만하다. 짧은 만큼 오히려 응집력을 가지고 있으며, 상이하게 느껴지는 요소들은 음악이라는 큰 틀 안에서 하나가 된다. 변화를 통해 일궈낸 또 한 번의 진보다. 그리고 그 진보가 풍자적이라고는 했지만 다분히 자조적인 내용의 ‘Kkokdugaksi’나, ‘Look At The Top’와 같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곡 가운데서 도출되었다는 점은 더욱 희망적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