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식의 새 앨범, <벼랑 끝에서 할렐루야> 리뷰
CCM의 거장, 다양한 색깔의 콜라보레이션을 옷입고 광야로 돌아오다!
이 땅에 CCM 운동이 본격적으로 태동한지 어언 30여년이 흘렀다.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이 기독교 청년하위문화는 시대를 따라 선교운동, 문화운동, 예배운동으로 이어지며 전반적 교계의 흐름을 바꾸었고, 일반 음악계도 주목할 만큼 놀라운 성취를 이뤄냈다. 그 중심 한 자락에 김명식의 종적은 두드러진다. <극동방송 복음성가경연대회>로 데뷔하고 <찬양하는 사람들>을 거쳐 <한국 컨티넨탈 싱어즈>를 통해, 80년대와 90년대를 관통하며 내공을 쌓아왔다. 그의 잠재력은 1995년 CCM의 대표적 명반으로 회자되는 솔로 앨범, <영원한 사귐>에서 마침내 폭발한다. 이후 2002년까지 5장의 앨범을 발매하며 CCM 최고의 보컬리스트로 자리매김하였다. 분명 이 시기가 그의 개인적 경력 뿐 아니라 한국 CCM 운동의 최전성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자신의 경력의 정점에서 김명식은 갑자기 제주도로 귀향하며 꽤 오랜동안 공백기를 갖는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에 CCM 운동 역시 점차 쇠조하며 이제는 예배음악으로 최소한의 명맥 만을 유지하는 듯한 인상이다. 이마저도 최근 들어서는 현격한 하향 국면에 접어든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앨범의 타이틀처럼 지금 한국 CCM은 벼랑 끝에 서있다. 이전의 CCM 스타들은 어느 순간 음악적 활동을 중단해버렸다. 앨범 발매도 콘서트도 거의 사라졌다. 교회의 초청 역시 현격히 감소되고, 극소수를 제외하곤 독립적인 음악 활동이 불가능해진 상황이다.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CCM 스타들은 학교와 교회와 기관들로 흡수되며 아티스트로서의 활동은 거의 중단되어 버렸다. 새로운 사역자들도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며 소리 없이 등장했다가 바로 사그라지는 형편이니 그야말로 총체적인 위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런 가운데 2008년 다시 복귀한 김명식의 지난 5년간의 행적은 실로 놀랍다. 정규 앨범과 1장의 프로젝트 음반, 그리고 이번엔 1년 만에 다시 새 앨범을 발매하며 꾸준히 창작 활동을 이어가고 있지 않은가. 꾸준히 매년 소극장 중심의 개인 콘서트도 지속하고 있다. 더욱이 개인적 학업과 콘서바토리에서 학부장으로 후진을 양성하고, 개인 프로덕션 <빅퍼즐 뮤직&스토리> 창립까지, 그의 왕성한 활동량에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이번에 발매한 <벼랑 끝에서 할렐루야>는 어떤 모습일까? 음반 전반의 분위기와 메시지는 지난 3집 <사람을 살리는 노래>와의 연속선상에 있다. 3집이 자신의 사역 여정에 대한 자전적 “간증”이었다면, 이번엔 광야와 약속의 땅 경계에서 부르는 김명식 버전의 “워쉽”인 듯싶다. 이 두 앨범의 공통된 중심 메시지는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는 예언자적 선포이다. 그는 벼랑 끝에 선 현 CCM 운동의 방향은 가나안으로 전진이 아니라 먼저 광야의 본질을 되찾아야 한다는 절실함이 묻어난다. 유진 피터슨이 말한 대로 다윗에게 광야는 벗어날 굴레가 아니라 “다윗의 다윗다움을 회복하는 장소”이며 지속적으로 돌아가야 하는 “진정한 성소”가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CCM이 다시 회복하며 외쳐야 할 메시지의 중심은 무엇인가? 앨범 전반에서 김명식은 그 중심이 “예수”와 “하나님의 나라”임을 반복적으로 선포하고 있다. CCM 뿐 아니라 기독교 전체가 이 중심을 잃었을 때 점차 세속화와 교권화로 무너져 갔음을 상기한다면 그의 선포는 오늘날 한국 교회에 가장 절실한 메시지임에 틀림없으리라.
음악적 기조는 이전 작품들과 유사하지만 한 가지 두드러진 변화와 특징이 있다. 그것은 앨범의 모든 트랙을 후배 아티스트들과의 콜라보레이션으로 꾸몄다는 사실이다. 헤리티지, 장윤영, 민호기, 천관웅, 강찬, 유효림, 임선호, 이한진 등의 중견 아티스트들이 대거 참여했을 뿐 아니라, 아직은 생소한 그러나 음악적으로 매우 뛰어난 라스트, Cross KC, 배지완, 강성훈, 이윤하, Jin, 쥬리 등의 젊은 아티스트들과도 함께 작업하며 거의 종합선물상자를 연상할 만큼 다채롭고 풍성하다. 자칫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가 음악적으로 오히려 조악한 부조화와 어색함에 함몰될 수 있지만 이번 앨범은 전반적 완성도에 그런 염려를 기우로 만든다. 이 앨범은 각 트랙마다 김명식의 고유 색깔과 참여한 아티스트들의 개성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음반의 완성도를 극대화시킨 수작이다. 기존의 팬들에겐 김명식 고유의 중저음이 살아있는 파워 보컬의 감성에 만족할 것이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팬들에겐 오히려 신선한 변신을 시도했다는 느낌을 주는 절묘한 조화이다. 각 트랙을 주의 깊게 들어보면 김명식은 곡의 가장 극적인 부분을 다른 아티스트들에게 양보하며 자신은 동료를 세워주며 백업해준다는 느낌도 강하다. 물론 그 반대로 참여한 아티스트들 역시 김명식의 보컬을 보다 신선하게 만들어주며 훌륭한 앙상블을 이루고 있다. 이 동료 간의 협업과 신구의 조화는 초창기 CCM 운동의 가장 중요한 모습이 아니었던가? 어느 순간 잃어버린 동지의식의 회복이 이번 콜라보 프로젝트의 중요한 성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종합적으로 이 앨범의 전반적 분위기와 편곡은 전통과 실험이 공존했던 전성기 컨티넨탈 사운드를 연상시킨다.
각 트랙들을 소개해보자. 인트로를 지나면 타이틀 곡 “벼랑 끝에서 할렐루야”가 펼쳐진다. 헤리티지의 코러스가 화려하게 펼쳐지는 이 곡은 드라마틱한 구성과 장엄한 클라이맥스와 앤딩으로 홍해 앞 모세의 찬송을 연상케 한다. 장윤영이 참여한 “Shout to the Lord"는 아마도 본 앨범에서 가장 대중적인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매력적인 곡이다. 선명한 멜로디 라인은 물론 CCM 최고의 두 아티스트의 보컬 향연은 때로는 대화처럼 때로는 용호상박의 진검대결처럼 박진감이 넘친다. 결국 일반 대중음악에 비교해 CCM의 매력은 궁극적으로 탄탄한 가창력에 있음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주는 멋진 곡이다. ”예수 예수 예수“는 의외로 이 앨범에서 가장 대중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곡이다. <오버플로잉 미니스트리>의 여성 워쉽리더인 배지완이 작곡하고 함께 부른 이 곡은 캐논 구조 가운데 점증적인 멜로디 전개와 함께 앨범의 감흥을 절정으로 몰아가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워쉽곡이다. 또 다른 추천 곡은 앨범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자작곡 ”What a wonderful world"이다. 회복 이후 새롭게 열린 시야 속에 펼쳐지는 놀라운 세상을 아름다운 가사와 다이나믹한 구성이 돋보인다. 특히 브릿지에서 불숙 튀어나오는 지미선의 다이나믹한 보컬과 이한진 밴드의 브라스 구성 역시 이 곡의 매력을 배가시킨다. 그 외에도 가사의 미학과 류효림의 재즈 보컬이 잘 어우러진 “사람은... 오직 서로 사랑해야 할 존재라,” 하나님 나라의 궁극적 비전을 힘있게 선포하는 “마지막 날에,” 천관웅, 민호기와 함께 예배 사역자들의 내면의 고뇌를 담고 있는 “홀로 선 예배자,” 록킹한 사운드와 재능있는 후배 뮤지션들의 랩핑이 돋보이는 “예수면 다다” 그리고 임선호의 어쿠스틱 기타와 함께 평화롭고 진솔하게 펼쳐지는 “새벽기도” 역시 주목할 트랙이라 하겠다. 또한 본 앨범에는 1집에 수록된 “오직 예수”와 “주만이”가 강찬의 듀엣과 쥬리의 연주로 이전보다 힘을 빼고 깊이를 더하며 색다르게 리메이크되어 앨범의 주제와 색깔을 단단히 받쳐주고 있다. 김명식의 가사는 여전히 문학적으로 또한 영적으로 깊고 아름답지만 이번 앨범에선 타이틀곡을 포함해 세 곡을 직접 작곡해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자기 발전도 매우 두드러진다. 자신의 음악적 정체성을 지속하며 새로운 실험을 통해 끊임없이 창작을 지속하는 김명식의 진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나보다. 본 앨범은 분명 그의 디스코그라피에 굵직한 한 획을 더한 수작임에 틀림없다. - 윤영훈(빅퍼즐문화연구소장, 명지대 겸임교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