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른의 멜로디 메이킹, 류호건의 비트메이킹이 합체된 새로운 일렉트로니카 듀오 전기흐른! 80, 90년대 신스 팝의 톤, 오버하지 않는 일렉트로닉 문법, 흐른 특유의 유려한 멜로디가 만나 전기흐른 만의 감각적이고 직접적이며 통속적인 신스 팝을 만들어낸다. 올해 한국 대중 음악계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춤추기 좋은 팝 앨범.
영한사전에는 나오지 않지만 요즘 우리나라의 미디어에서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길티 플레저'라는 단어는 다른 사람이 알아 차릴까 봐 부끄러워 남몰래 즐기는 문화적 취향을 일컬을 때 사용된다. 유치하거나 통속적이거나 저급이라고 여겨질까 봐 대놓고 드러낼 수 없는, 그렇지만 왠지 좋아서 남몰래 이불 속에서 듣는 유행가 같은 것 말이다. 첫 EP를 발매하는 초보 신스 팝 듀오 전기흐른은 이렇게 생소하다면 생소할 수 있는 '길티 플레저'를 첫 앨범의 타이틀로 삼았다.
전기흐른은 그 이름에서 눈치챌 수 있듯이 이미 석 장의 앨범을 발매한 싱어송라이터 흐른과 관계가 있는 밴드이다. 2006년 데뷔 앨범을 낸 이래 솔로로 활동해온 흐른이 프렌지, 아일 등의 밴드에서 기타를 쳤던 류호건과 함께 2012년에 전기흐른을 결성했다. 전기흐른에서 흐른은 멜로디메이킹과 가사에 전념하고, 그간 기타리스트로 활동했던 류호건은 기타보다는 비트메이킹 역할에 더 집중한다. 녹음, 미디 프로그래밍, 믹싱, 프로듀싱은 외부의 도움 없이 전기흐른이 직접 해치웠다.
[길티 플레저]는 잘 따져보면 별로 새로울 것이 없는 음반이다. 비트나 멜로디나 프로듀싱 모두에 있어 혁신적이라고 불릴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전기흐른의 [길티 플레저]는 신선하다. 80, 90년대 신스 팝의 톤, 오버하지 않는 일렉트로닉 문법, 흐른 특유의 유려한 멜로디가 만나 전기흐른 만의 감각적인 신스 팝을 만들어낸다. 이 앨범에는 그간 흐른이 솔로 커리어를 통해 보여줬던 익명의 현대사회에 대한 모순적인 감정들, 즉 고독함과 편안함, 두려움과 변화의지 등에 대한 성찰이 여전히 기저에 깔려 있지만 그것을 드러내는 방식은 사뭇 다르다. 더 감각적이고 직접적이다. 그리고 통속적이다. 많은 뮤지션들에게 그렇겠지만, 전기흐른에게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노래'이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일렉트로닉의 문법을 빌려오긴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노래'를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지 결코 ‘노래’를 압도하지 않는다.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사운드 메이킹과 노래의 이 절묘한 균형감각이 아마도 이 앨범의 가장 큰 새로움일 것이다.
길티 플레저라는 게 뭔가, 죄책감을 느끼면서까지 좋은 것이다. 미학적 판단과는 관계없다는 듯이 미학적 판단 밖에서 잉여로 있는. 어쩌면 너무 무난하고 통속적이어서 그럴듯한 설명이 닿지 않는, 그런데도 왠지 좋은 것. 그 길티 플레저가 ‘팝’, 즉 대중문화의 정수(essence)라고 믿고 있는 듯 전기흐른은 [길티 플레저]라는 앨범에 자신들의 길티 플레저를 과감하게 담고 있다. 9와 숫자들의 9(송재경)와 전자양이 각각 프로듀서로 참여한 흐른의 1집 [흐른]과 2집 [레저 러브]와는 당연히 다른 매혹의 지점을 전기흐른의 [길티 플레저는]는 선명하게 보여준다. 눈여겨볼 만한 새로운 일렉트로니카 듀오의 탄생이다.
긴 소개 글이 읽기 싫다면 짧은 버전도 있다. 전기흐른의 [길티 플레저]는 한마디로 올해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춤추기 좋은 팝 앨범이다. 여러분은 리듬 탈 준비만 하면 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