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간지는 드러머다. 경기도 부천에서 태어났다. 탕수육 한 그릇에 어느 인디 밴드의 드러머로 입봉한 이래 적잖은 밴드를 거치며 드럼은 물론, 베이스, 멜로디언, 랩 등 다양한 파트에 종사하며 잡다한 음악 인생을 살아 왔다. 본인의 지향은 여전히 자라섬에 있다며 드럼에 매진하는 건실한 면모를 보이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거금을 들여 신디사이저를 구매하는 등, 좋게 말하면 다재다능이요 나쁘게 말하면 주의 산만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술탄 오브 더 디스코 1집 《The Golden Age》에 드러머로, 불나방 스타 쏘세지 클럽 1집 《고질적 신파》와 EP 《석연치 않은 결말》에 드럼, 퍼커션, 랩으로 참여했고, 최근에는 위댄스와 함께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하헌진은 블루스 싱어송라이터이자 기타리스트다. 태어난 곳은 모르겠다. 여느 뮤지션이 그렇듯 십대 시절에는 록 음악을 들으며 자랐으나 어느 순간부터 고만고만한 음악들 사이에서 자기만의 독자적인 방향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그렇게 근원을 따라 올라가기 시작하다 블루스를 만났고,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스타일 중 하나인 델타 블루스를 연주하고 노래하기 시작했다. 지향하는 스타일의 핵심을 고스란히 유지하면서도 입에 착 달라붙는 특유의 가사로 델타 블루스를 한국어에 최적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2011년 이후 지금까지 하헌진이라는 이름으로 《개》, 《지난 여름》, 《오》 등 세 장의 EP를 발매했으며 싱어송라이터 김일두와 함께 《34:03》이라는 스플릿 음반을 발매하기도 했다. 이 음반들은 전형적인 음반 유통에 기대지 않고 주로 공연을 통해 팬들을 만나 직접 판매하는 방식으로 적잖은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다.
김간지x하헌진은 이 두 사람이 만나 결성한 2인조 블루스 밴드다. 애초부터 하헌진의 음악을 좋아하여 그의 음악을 틀어 놓고 혼자 나름의 드럼 편곡을 하고 있던 김간지가 솔로를 벗어나 새로운 음악적 계기를 찾고 있던 하헌진의 제안으로 의기투합하여 2012년 공연을 위한 임시 프로젝트로 결성했던 게 시작이다. 그랬던 것이 썩 합이 잘 맞아 장기화되었고 그러다가 아예 음반까지 내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하여 결국 2013년 9월, 김간지x하헌진의 이름으로 첫 번째 정규 앨범인 《김간지x하헌진》을 발매하게 된다.
불순하고 순결한 두 남자의 리듬과 블루스 김간지x하헌진 1집 《김간지x하헌진》
사실 음악 말고도 할 얘기가 많은 이들이다. 입만 열면 남녀의 성기와 성적인 결합에 관한 얘기일색인 김간지는 몇 년 전 라디오 방송에서 ‘이상형은 미국여자’라는 평범한 얘기를 순식간에 음담으로 변모시키며 여태껏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입만 열면 대부분 음담이라 비호감일 것 같건만, 이상하게 여성 팬들도 많다. 그를 입증하듯 ‘진정한 사나이는 아무도 따르지 않는다’는 신조로 아무도 팔로잉하지 않는 그의 트위터 계정에 팔로워 수가 꽤 된다. 하지만 주요한 팬들은 남중생과 남고생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헌진은 심지어 ‘GQ가 선정한 올해의 남자’다. 뭔가 단서가 달려있던 것 같지만 어쨌든 유수의 남성지가 선정한 ‘남자’다. 홍보성 멘트로도 출중하다고 얘기하기는 어려운 외모로서는 경이로운 일이다. 그가 하는 얘기 중 2할이 재미가 없고 7할이 말도 안 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리고 그 소재의 대부분은 김간지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더더욱 경이롭다. 심지어 그의 팬 중에는 김간지와 달리 남중생 남고생보다는 여성들이 많다고 추정되는데, 여기까지 이르면 뭔가가 있긴 한 모양이라는 생각이 든다.
거기다 붕가붕가레코드라는 음란한 이름의 레이블을 더해서 이미 견적을 뽑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들이라면 아마 의외라고 느낄 지도 모른다. 군더더기 없는 드럼의 비트가 포문을 열고 그 위로 리드미컬한 기타의 라인이 얹히더니만 이내 저음역의 쿨하고 덤덤한 목소리가 이어지는 도입부의 구성. 여기서 두 남자는 이미 음반 전체의 컨셉을 선언하고 있다. 잔기술 없이 오로지 리듬으로 끝까지 밀고 가겠다는 것이다.
수록된 노래들은 하나를 제외하고는 이미 하헌진의 솔로 EP를 통해 선보였던 노래들이다. 하지만 기타와 목소리만으로 녹음됐던 기존의 노래들은 이 음반에서 완전히 새로운 생명을 갖는다. 단순히 김간지의 드럼이 추가되었다, 혹은 하헌진이 어쿠스틱 기타가 아닌 일렉트릭 기타를 연주한다는 정도로 설명이 불가능한 변화다. 물리적 결합이라기보다는 화학적 합성. 그리고 그 변화를 주도하는 것은 역시 리듬이다.
탁월하다고 느껴지는 면은 드럼과 일렉 기타의 출렁이는 리듬 가운데서 자기 페이스를 잃지 않는 보컬이다. 자꾸 위로 끌어대는 세션에 휩쓸리지 않고 솔로 때보다 오히려 더 덤덤하게 부르는 하헌진의 보컬은 치근덕대는 마초의 평범한 얘기가 될 법한 노랫말들을 덤덤한 저음역의 목소리에 실어서 쿨하게 풀어내는 자신의 장점을 보다 잘 살려내고 있다, 덕분에 사춘기 소년의 겉잡을 수 없는 욕정 같은 리듬 위에 어른스러운 섹시함이 더해진다.
더불어 이 음반에서 이뤄진 결합은 단순히 김간지와 하헌진, 두 남자의 것만은 아니다. 술탄 오브더 디스코, 장기하와얼굴들, 불나방 스타 쏘세지 클럽의 작업을 통해 이미 솜씨를 드러낸 바 있는 프로듀서 나잠 수는 사운드에서도 명백한 색깔을 만들어내고 있다. 소수의 마이크만을 사용하여 사운드의 존재감을 더하는 글린 존스의 녹음 테크닉을 연구하여 극도로 뮤트한 소리를 받아내 만들어진 이 앨범의 드럼 톤은 옛 시절의 사운드를 충실하게 재현하여 이 음반의 리듬을 보다 단단하게 만들고 있다.
한편으로 커버 역시 붕가붕가레코드의 수석 디자이너 김기조와 하헌진의 이전 앨범들을 디자인해왔던 디자이너 신덕호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만들어졌다. 두 뮤지션의 음악이 유기적으로 결합한다는 앨범의 컨셉에 부합하는 한편 참여한 디자이너들의 작업을 단순하게 나열하는데 그치기 쉬운 콜라보레이션의 함정을 벗어나는 게 시작점이었다고. 그래서 두 디자이너들이 서로 결합하고 도움을 주고 간섭하고 심지어 방해하기도 하는 작업을 지향했다고 한다. 그 결과 김기조의 ‘언어’를 신덕호의 ‘구조’를 통해 해체함으로써, 혹은 신덕호의 ‘구조’ 안에 김기조의 ‘언어’를 더함으로써 음반의 커버가 완성되었고, CD의 속지 안에는 그들이 작업을 하면서 거쳐왔던 중간의 결과물들을 포함하게 되었다.
김간지와 하헌진을 중심으로 여러 아티스트들의 콜라보를 통해 만들어진 이번 음반은, 음반을 든는 것도 좋지만 이 음반의 핵심이 리듬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그 에너지를 온전하게 느끼려면 역시 공연이 답이다. 9월 28일의 쇼케이스를 시작으로 10월의 일본 투어, 11월의 전국 투어 등 많은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공연에서는 앨범에 담긴 ‘순결한’ 리듬과 함께 그들의 음담 위주의 ‘불순한’ 얘기들도 들을 수 있으니 그것 역시 나쁘지 않다.
김간지x하헌진 1집 《김간지x하헌진》은 붕가붕가레코드 대중음악 시리즈 20번째 작품이다. 모든 노래의 작사 및 작곡은 하헌진, 편곡은 김간지와 하헌진이 함께 했다. 프로듀서는 나잠 수(쑥고개III 스튜디오)가 맡았고 그가 녹음과 믹싱, 마스터링까지 도맡아서 진행했다. 앨범의 커버 디자인은 앞서 말했듯 김 기조와 신덕호의 합작품. 매니지먼트는 김설화(sh@bgbg.co.kr, 070-7437-5882). 유통은 미러볼뮤직이 진행한다.
글 / 곰사장 (붕가붕가레코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