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정을 거부하는 새로운 소리, 100억의 마음을 타고 놀다. 타니모션 TAN(탄, 彈)+ EMOTION
가야금이나 거문고, 아쟁 등 현악기를 연주할 때 한자로는 탄금(彈琴) 이라는 단어를 쓴다. 탄(彈)은 퉁겨서 울림을 낸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악기들의 주법은 우리말로도 ‘탄다’고 한다. 여기에 감정과 정서를 뜻하는 ‘이모션(Emotion)’이 붙어 팀의 이름이 됐다. 국적과 민족을 넘어 사람들의 정서를 타고 노는 음악, 혹은 사람들의 마음이 타고 놀 수 있는 음악을 빚어내려는 야심찬 음악집단, 타니모션이 새로운 소리의 즐거움을 제시한다.
‘눈뜨고코베인’의 연리목, 새로운 소리의 재료를 만나다
2010년 가을, 작곡가 연리목은 ‘생황’과 ‘아쟁’이라는 악기와 인연을 맺었다. 시작은 호기심이었다. 이 만남에서 중요한 것은 연리목 자신이 서양 음악의 자장 안에 있는 연주자임을 부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학에서 연리목의 전공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듯 서양 고전음악 작곡이다. 필드에서의 음악경력은 락밴드(눈뜨고코베인)의 연주자로 대표된다. 그가 맡아온 무대음악과 영화음악 감독 작업 역시 서양음악이다.
그는 ‘국악기’니 ‘전통악기’니 하는 접근부터가 관념적일 수 있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것은 연리목 본인에게만 주어진 상황은 아니다. 기실 음악인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서양 음악에 더 익숙하지 않은가. 그런 상황에서 소리에 국적을 붙이는 일이 허망함을 냉정히 인지했다. 그 허망함은 많은 젊은 음악인들이 시도하는 ‘퓨전’을 실패로 이끌어가는 망령이기도 하다.
대신 연리목은 자신이 접한 이 악기들이 가진 고유한 음색에 집중했다. 그러자 이 소리들은 비로소 ‘음악적 재료’가 됐다. 처음에 이 악기들에 대해 가졌던 흥미는 음악을 만들 수 있는 동기로 구체화됐다. 타니모션의 작업은 국악의 재해석, 동서양의 만남 그 무엇도 아닌 새로운 소리를 어떻게 자신들이 아는 음악적 설계도 안에 끌어들일 것이냐에 다름아니었다.
오히려 연리목과 타니모션의 이런 접근법은 국악계에 신선한 바람으로 받아들여졌다. 타니모션은 이듬해인 2011년 신진국악예술무대 ‘천차만별콘서트’ 우수상 수상을 시작으로, 21세기 한국음악프로젝트 은상, 2013년 전주세계소리축제 소리프론티어 대상 등 창작 국악의 유수한 경연을 휩쓸었다.
한국 고시조부터 블루스까지, 전 지구적 표정 관통하는 타니모션의 음악
그러나 불가피하게 그들은 ‘국악단체’로 규정돼 왔다. 현실적으로 페스티벌을 진행하거나 기사를 쓰는 입장에서는 비교적 그들을 관습적인 방법으로 정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관습을 타니모션이 굳이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없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은 애초에 ‘국악단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타니모션은 다양한 국적과 기법의 음악들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더 재미있고 더 새로운 음악들 찾아 유랑하는 중이다. ‘국악’이라는 단어에 한정시키기에는 우리들의 실험은 너무 다양하다.” 연리목의 주장처럼, 타니모션이라는 이름의 실험집단은 너무도 많은 것들을 섞고 접붙이는 중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타니모션의 음악적 외양과 표정에서 다양한 이미지를 읽고 다양한 이야기를 꺼낸다. 혹자는 북유럽 정서를 언급하고, 혹자는 진한 블루스를 느꼈다고 말한다. 아라비아나 스페인이 떠오른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역만리 미국 냄새가 난다고도 전한다. 재즈나 볼레로의 묘한 색채감을 인식하는 청자들도 있다.
물론 국악적인 시도 자체도 충분히 찾을 수 있다. 고시조를 정가의 기법으로 부르는 그야말로 ‘국악적인’ 시도도 분명히 들린다. 그렇다고 해서 타니모션이 이율배반에 빠진 것은 아니다. 거듭, 타니모션은 단지 국악 그룹이라는 허상에 포박당하기를 거부한 것뿐이다.
‘퓨전국악’은 실체 없는 꼬리표, 타니모션 설명할 새로운 언어 찾고 싶다
타니모션의 음악에서는 어쩌면 이토록 전 지구적인 표정이 읽히는가? 길지 않은 트랙리스트 않에 어쩌면 이렇게도 많은 나라의 흙 냄새가 나는 것인가? 이는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타니모션은 장르적으로 국악의 어떤 분야에 얽매이는 것은 지양하되, ‘굿’의 제의적인 세계를 음악으로 표현하고자 애써 왔다. 무당의 무가를 변형하거나, 굿의 서사를 차용한 것도 있다. 제의는 인류 음악의 공통적인 발생학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타니모션의 음악에서 다양한 피부색의 영혼이 감지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음악적 진보는 자연스럽게 달성된다. ‘하이브리드(hybrid)’라는 용어조차 타니모션의 음악 앞에서 계면쩍을 만큼 구태의연하다.
“아직까지는 어떤 수식어가 타니모션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지 찾아내지 못했다. 다만 ‘퓨전 국악’ 이라는 용어는 더 이상 어떤 가능성도 말하지 않는다. 그 용어로부터 벗어나 타니모션만을 표현할 수 있는 수식어가 있다면, 그것도 타니모션의 음악적 과제일 것이다.”
타니모션은?
2014년, K-루키즈 본선 무대에서 디 오션 뮤직에 발탁되어 더 넓은 세계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또한 쏜애플, 홀로그램필름 등 젊은 밴드의 음반을 프로듀싱하며 주목받고 있는 서상은 프로듀서가 함께 하면서 음악적 윤곽과 대비가 뚜렷한 결과물을 만들어내게 되었다.
멤버소개
연리목 – 작곡, 건반, 아코디언
김소진 – 보컬, 기타 (판소리 전공, 판소리극 사천가의 히로인)
김슬지 – 아쟁
김소엽 – 태평소, 피리, 생황
서호덕 – 드럼
Track List
1. 내려온다
2012~13년에 걸쳐 ‘굿’을 테마로 한 일련의 곡들을 선보인 바 있다. 그 중 ‘청배(무당굿에서 신령이나 굿하는 집안의 조상의 혼령을 불러 모시는 일)’에 해당하는 곡이다. 하늘의 신을 모신다는 내용의 가사, 구음과 스캣을 절묘하게 접목시킨 주문, 그리고 강렬한 반복을 통해 사이키델릭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연주가 돋보인다. 청자를 어리둥절하게 하는 1분여의 고요한 인트로 뒤에 몰려오는 폭풍같은 연주가 압권. 수피댄스(이집트, 터키 등에서 행해지는 종교의식에서 유래한 전통 춤으로 끝없이 빙빙 돌며 신과 교감한다)가 연상된다는 이도 있다.
2. 파도
이별 후 혼자 남겨진 이의 슬픔을 노래하는 전혀 새로운 방식. 중동 음악과 블루스의 결합을 동기로 하고 제주도 ‘칠머리당굿’의 한 부분을 차용해 만든 노래이다. 곡 후반에는 슬픈 영혼을 위로하는 무당의 노래가 이어진다. 가슴 깊이 새겨진 한을 씻어주려는 듯 함께 울어주는 격렬한 제의적 절정의 순간을 표현했다.
3. 안 할 거면서
이 곡은 여러 가지 의미로 읽힐 수 있다. 위정자들의 무책임함을 질타하려 만든 노래지만, 오히려 작심삼일이 일상이 되어버린 현대인들이 공감할 만한 노래. 인도 대나무 피리 반수리(Bansuri) 연주자 ‘사미르 라오(Sameer Rao)’의 멜로디를 인트로에 삽입했다. 경쾌하고도 묘한 인트로가 돋보인다. 여기에 생황과 아쟁의 전위적 선율 그리고 보컬리스트 김소진의 캐스터네츠 음색과 리듬이 곡의 재미를 다층적으로 구현한다.
4. 정
작자미상의 고시조에 곡을 붙였다. ‘정이라 하는 것을 아니주려 허였는데, 우연히 가는 정을 어쩔 수가 없네.’ 라는 짧은 시조 속에서, 시대를 관통하는 ‘사랑’ 이라는 주제가 얼마나 보편적이고도 특별한지 느낄 수 있다. 역시 생황과 아쟁의 조화를 바탕으로 김소진의 체념한 듯 담담한 목소리 표현이 인상적이다. 원래는 상당히 어쿠스틱한 분위기를 가진 곡이었으나 이번 앨범의 프로듀서를 맡은 서상은의 아이디어로 현대적이고도 깊은 울림을 가진 곡으로 재탄생했다.
5. 탄다,타
‘굿’ 테마의 곡들 중 마지막 곡. 마음에 담긴 미운 것들을 쫓아보낸다는 내용의 신나는 노래다. 7/8박이 빠른 템포로 구현되어 긴박한 느낌을 준다. 그런 가운데 태평소의 1분 30초에 달하는 솔로잉이 곡의 하이라이트를 이룬다. 풍부한 배음이 ‘태평소를 이렇게 연주할 수도 있나’ 하는 놀라움을 안겨 준다. 징, 정주 등의 타악기들도 듣는 재미를 더했다. 또한 모든 멤버가 주문을 외우듯 합창하는 뒷부분은 화려한 의식의 대단원을 감상하는 듯하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