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가요에 대한 몇 가지 편견이 있다. 투박하고 거칠다는 것, 그리고 음악성이 떨어진다는 것. 1987년 6월 항쟁 이전까지만 해도 공개적으로 민중가요를 만들 수 없었다. 몰래 몰래 숨어서 녹음해야 했다. 당연히 좋은 장비로 녹음할 수 없었다. 좋은 사운드가 나올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비전문가들이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전문적으로 음악을 배운 사람들은 세상이 죽어가고 있는데도 대부분 침묵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을 차치하고 음악성이라는 기준만을 적용하는 것은 기만적이다. 그리고 세상이 비극인데 어떻게 음악만 매끈할 수 있었겠는가. 그럼에도 1987년 이전이나 그 이후에도 민중가요에는 좋은 곡, 좋은 가수들이 즐비했다. [그날이 오면],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같은 곡들이 단지 시대 분위기만으로 불렸겠는가. 그리고 김광석, 김삼연, 권진원, 안치환, 윤선애, 김은희 등등의 목소리가 민중가요라는 이유만으로 사랑 받았겠는가.
오늘 우리는 여기에 김가영의 이름을 더할 차례다. 1989년 영남대학교 노래패 ‘예사가락’에서 노래를 시작한 김가영은 1993년 당시 주간전국노동자신문에서 개최한 노동자가요제에서 대상을 차지할만큼 노래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 후 그녀는 노래를 찾는 사람들과 천지인에서 활동하다 1999년 싱글을 내고 2002년 첫 번째 정규 앨범 [날치]를 내놓았다. 싱글에서 김가영이 호쾌하게 내지르는 소리를 뽐냈다면 [날치]에서 김가영은 정제되고 내밀한 음악들을 내놓아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당시 그녀는 어떤 음악이든 안정감 있게 소화해내는 풍부하고 깊이 있는 보컬로 주목받았다. 독창과 합창 모두에서 발군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당연히 민중가요 여성 보컬의 새로운 대표주자가 나타났다는 찬사가 이어졌다. 하지만 뮤지컬로 방향을 튼 그녀의 목소리는 그 이후로는 쉽게 들을 수 없게 되었다. 그녀의 목소리를 아낀 김현성, 백창우 등의 시노래, 동요 컴필레이션 음반 정도가 그녀의 존재를 가끔 확인시켜 주었다.
그리고 10년의 듬성듬성한 공백을 거치고서야 그녀의 두 번째 정규 앨범 [기억이 되기 위해서]가 도착했다. 너무 늦은, 많이 늦은 작업이었다. 하지만 음반에 담긴 11곡의 노래들 어디에도 공백의 흔적은 없다. 뛰어난 록 기타리스트이자 프로듀서인 고명원이 프로듀서와 기타, 프로그래밍을 맡고, 고명원과 [바위처럼]의 유인혁이 쓴 곡들로 채운 앨범은 어느 민중가요 진영 뮤지션의 음악보다 트랜디하고 서정적이다. 굳이 과거나 현재 민중가요와 비교할 필요도 없을 정도이다. 첫 곡 [기억이 되기 위해서]부터 일렉트로닉한 모던 록 사운드가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혹시 난]을 비롯, 고명원이 쓴 많은 곡들 다수는 이처럼 민중가요에서 흔히 들을 수 없었던 일렉트로닉 성향의 모던 록 사운드를 탄탄하게 구축하고 있다. 고명원이 과감하게 새로운 사운드로 김가영을 인도했다면, 김가영은 몽환적인 모던 록 사운드의 근저에도 흔들리지 않는, 감성적이면서도 과장되지 않은 보컬로 사운드의 따뜻함을 만들어냈다. 록 사운드에 조응하는 극적인 연출력과 포크적인 안정감이 김가영 보컬의 양면적 매력이다. 다양한 표정을 지을 줄 아는 그녀의 보컬은 그래서 때로는 다정하고 때로는 농염하며 때로는 폭발적이다. 이는 보컬 디렉터로 참여한 싱어송라이터 문진오의 역할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성과이기도 하다. 앨범 전반부 수록곡들은 이처럼 당대적이고 다감한 사운드로 그녀의 활동 경력이나 정치적 지향과 무관하게 좋은 2013년의 음악에 도달했다. 명확하게 서사의 기승전결을 구축하지 않는 고명원의 가사 쓰기 방식은 가사와 현 시대를 연결할 정서적 실마리를 남겨두면서도 단일한 해석에 메이지 않게 함으로써 그녀의 음악이 새롭게 확장될 수 있는 여러 갈래의 길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녀의 음악을 정치적으로만 해석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그리고 후반부의 곡들은 섬세하고 서정적이며 미니멀한 편곡으로 김가영의 음악을 또 한 번 확장하고 있다. 결 곱다고 해야 할 [긴 꿈], [잊혀지는 건] 등등의 곡들은 전반부의 실험성과 쌍벽을 이루는 깊이와 아름다움으로 그녀의 원숙함을 드러낸다. 오랫동안 그녀와 같은 세상을 꿈꾸었던 이들이라면 후반부의 곡들에 더 마음이 기울 것이고, 현재의 음악에 주목하는 이들이라면 전반부의 곡들에 더 귀가 쏠릴 것이다. 이처럼 수록곡들의 고른 완성도와 명확한 차이는 음반의 스펙트럼을 확장하며 각각의 곡들이 스스로 음반의 중심이 되게 하면서 음반을 매우 버라이어티하게 만들고 있다. 화려함과 담백함이 동시에 존재하고 토로와 위로가 함께 하는 음악은 그녀의 공백기 동안 진행되었던 음악적 변화들을 놓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개성적으로 자기화했다. 그 덕분에 그녀의 복귀는 과거의 시대에 기댄 안일한 회상이 아니라 현재와의 힘을 다한 대결의 결과물이며 새로운 출발이 되었다. 2010년대 이후 민중가요 진영의 뮤지션들 다수가 자신의 문제의식과 사운드를 확장하려는 노력을 펼치고 있는데 김가영의 두 번째 정규 앨범은 그 중 가장 돋보이는 사운드이다. 40을 넘기고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과거의 뮤지션이 드물고, 갈수록 희망을 찾기 어려운 현실에서 이렇게 다시 다르게 그러나 한결같이 좋은 음악, 좋은 세상을 향해 가는 뮤지션이 있다. 이것이 희망의 근거다. 아니, 이것이 바로 희망이다.
-서정민갑(대중음악의견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