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움 안에서 발견한 ‘익숙한 새로움’ 이지형 세 번째 소품집 [Duet]
2007년 봄, 1집과 2집의 사이에서, 소소한 악기 구성과 어쿠스틱한 편곡을 바탕으로 제작된 첫 번째 소품집이 발매된 이후, 그의 정규 앨범과 소품집의 관계는 마치 ‘지킬’과 ‘하이드’ 처럼 그의 팬들에게 ‘따로, 또 같은’ 이지형의 모습을 선사해왔다. 음악에 대한 치열함과 ‘나’의 얘기로 트랙을 채웠던 정규 앨범과는 달리, 즉흥적이면서도 담백하게 ‘세상’과 ‘너’에 대한 얘기를 풀어냈던 소품집에 대한 그의 작법은 이미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 낸 바 있다. 또한 이를 통해 높은 음악적 완성도에 대한 평가는 물론, 대중적인 관심과 사랑을 받는 분류의 음악으로 거듭나기도 했다. 특히, 매년 봄만 되면 다시금 라디오 에어플레이, 각종 BGM 등을 통해 세상을 물들이는 두 번째 소품집 ‘봄의 기적’은 발표 4년이 넘은 지금에도 여전히 그 따스함을 간직하고 있다.
이번 세 번째 소품집 역시,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간소한 구성과 즉흥적인 작업, 자유로움이라는 명제 아래에서 제작되었다. 하지만, 그러한 와중에도 기존의 그것들과는 확연히 다른 한 가지 차이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3년여에 걸친 정규 3집 앨범의 제작기간 중 경험하게 된 치열함이었다. 그 음악에 대한 고민과 치열함 가운데에서 그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즉흥적으로 느낌을 표현할 수 있는 여유와 자유로움을 찾게 된 것이다.
스테레오타입이 주는 너무나도 큰 힘
앨범을 구성하는 각각의 노래들이 통일된 컨셉 아래 유기적으로 배치되어 그것이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형식. 꾸준히 이러한 형식으로 작업해왔던 이지형과 같은 앨범형 아티스트에게는, 아무리 본인이 작업한 각각의 트랙이 좋은 결과물이었을지라도, 앨범의 통일된 컨셉과 맞지 않는다면 트랙 선별 과정 중간에서 안타깝게 제외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랬었기에 계산된 의도도, 애써 힘 준 듯한 작법도 없는, conceptual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나 만들어진 이번 열두 트랙의 결과물은 그들 스스로끼리의 적절하게 잘 어우러졌다. 그럼으로써, 정규앨범 작업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컨셉에 대한 무조건적인 자유로움’이라는 하나의 새로운 컨셉으로 묶여 발표되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이번 소품집에 수록된 모든 트랙은 사랑이라는 하나의 주제에 관해 노래한다. 계산하지 않았고, 고민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그가 사랑이라는 관념을 얼마나 큰 음악적 자양분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 본인은 이를 일컬어 그의 음악 활동을 토대로 정립된 그만의 ‘Folk Cliché’라 당당히 부르며 새로 나오는 소품집이 스핀오프로서 보일 수 있는 한계를 떳떳하게 극복하고자 한다.
‘봄의 기적’에서 ‘겨울, 밤’까지
이번 앨범의 핵심적인 변화로 얘기되고 있는 자유로움이란 요소는 비단 컨셉적인 면 뿐만이 아닌, 트랙 각각의 분위기에서도 감지할 수 있다. 자의 반 타의 반에 인하여 ‘봄과 어울리는 음악’으로 묶여있던 지난 소품집의 분위기들과는 사뭇 다르게, 각각의 열두 트랙은 다양한 계절과 장소를 표현하며 앨범에 다채로움을 한껏 더해주고 있다. 벤조의 이국적인 멜로디 라인과 더불어 바이올린, 퍼커션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것이 시원한 소낙비를 연상케 하는 타이틀 곡 ‘느낌적인 느낌’과 같은 트랙에서부터, 인트로의 부드러운 피아노 선율이 인상적인, 마치 선선해진 한 여름밤의 하루를 연상하게 하는 ‘플랫폼’, 그리고 듣는 이를 늦가을 갈대숲을 거니는 착각에 빠지게 할 만한 ‘삼포가는 길’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이번 앨범의 트랙 수와 런닝타임, 이전 앨범들에 대한 높은 평가와 이로 인한 기대감으로 인해 이미 소품집은 소품집이라는 이름으로 정의 내리기엔 너무나 커져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조금의 스트레스도 받지 않고 편안하게 만든 앨범’이라는 이지형 본인의 평가에서 나타나듯, 음악이 주는 본연의 즐거움이라는 것에 대한 측면에서 소품집은 정확히 그것의 의도대로 제작된 앨범이며, 이를 통해 청자는 ‘익숙한 새로움’이라는 모순적인 단어가 주는 매력적인 감정을 오롯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