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드폴 6집 [꽃은 말이 없다.]
올 초 루시드폴은 ⟪무국적 요리⟫라는 소설집을 내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자유롭게 쏟아내었다. 그로부터 약 반 년이 지난 지금, 그는 말수가 적은 음악인으로 돌아와 그의 정규 6집 ❮꽃은 말이 없다.❯를 우리들 앞에 조용히 내민다.
I. '말이 없는' 꽃을 닮은 수록곡들이 창작되기까지
수록곡들의 구상, 작곡, 작사는 2013년 여름, 한 계절 안에서 이루어졌다. 창작 공간은 그의 집 안과 집 주변이었다. 첫 곡 [검은 개]를 썼던 6월 마지막 날부터, [연두]을 완성했던 8월 중순까지, 올여름은 세찬 비가 시원하게 자주도 쏟아졌던 시간들로 기억한다.
루시드폴의 이번 앨범은 한 달 반 동안의 그의 일상을 들여다봄으로써 조금 더 잘 이해하게 될는지 모른다. 그는 집의 모든 문과 창문을 열어 두고, 거실과 방, 집 안뜰, 집 주위의 공원에서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자주 감상했다. 동네 화원에서 작은 화초와 모종 몇 개를 사다가 심고 가꾸기도 했다. 고추나 바질, 금잔화나 수선화, 페어리스타 등등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원예종들이었다. 뜰에 꽃이 있어서였는지 몰라도, 나비가 자주 뜰로 날아들었다. 대문 앞에서 검은 개와 떠돌이 고양이들을 간간이 마주쳤다. 그래서 사료를 사다가 매일 내놓기 시작했다. 그러면 배고픈 길고양이들은 인적이 드문 시간에 대문 앞에 찾아와 밥그릇을 비우고 홀연히 떠났다. 아침에는 까치가 가까운 전선 위에서 울다 갔다. 흰 쌀을 집 안뜰에 한주먹씩 뿌려놓았다. 어떻게 알고 산비둘기도 오고, 참새떼들도 오고, 박새까지 날아들었다. 둘이서 사이좋게 올 때가 많았지만, 홀로 오는 날도 있었다. 저녁이 찾아오면 뜰 안쪽에서 귀뚜라미가 울었다. 새벽 서너 시까지 기타줄을 울리는 날이면, 애완견이 그의 곁을 지키며 엎드려 졸곤 했다. 루시드폴은 가까운 곳에서 끊임없이 생동하는 자연물들을 살며시 포착하여 음과 노랫말로 엮어내기에 이른다. 그의 곡들이 절대적으로 아름다운 자연을 닮은 연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II. 자연미를 음악으로 검증하고자 선택한 어쿠스틱 악기들 다양한 기타 소리에 대한 탐구
대도시 안에서 자연의 소리들 - 바람 소리, 매미 소리, 냇물 소리, 귀뚜라미 소리, 새의 울음소리와 날갯짓 소리…… – 는 대도시의 인공적인 소리들 – 자동차의 엔진 소리, 기계 소리, 매스미디어 소리, 사람들의 말소리 - 안에서 있는 듯, 없는 듯한 음량으로 묻히게 되었다. 약자들의 '약음(弱音)'이 된 것이다. 그러나 묻혔다고 해서 그것들의 존재적 가치, 미적 가치마저 희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루시드폴은 그것들의 미적 가치를 음악으로 검증하고자 했다.
약자들의 '약음' 같은 노래를 부르길 소망한 루시드폴은 6집의 전 트랙을 어쿠스틱 악기로 녹음하였다. 어떤 악기도 전자/전기 증폭을 시키지 않았고, 악기 구성도 미니멀하게 하였다. 그가 담백하고 자연스러운 소리를 내기 위해 녹음 과정에서 선택한 방법들이다.
귀가 예민한 사람들에게는 곡마다 달라지는 기타 소리와 그 소리들이 자아내는 개별적 정취를 음미해 보길 바란다. 소소한 기쁨을 선사할 것이다. 그는 한 곡 안에서 기타가 낼 수 있는 음역을 확장하는 시도를 했다. 바리톤 기타, 세미-바리톤 기타를 사용하여 저음의 여운이 묵직하게 오래가도록 신경 썼다. 여러 종류의 기타들을 연주하면서 (바리톤 기타, 세미-바리톤 기타, D-Hole/Oval Hole 기타, 8현 나일론 기타 등) 다양한 밝기와 분위기를 풍기는 곡들을 작곡했다. 새로운 기타는 그에게 기타 태생의 새로운 소리를 선사하였고, 지금까지 그의 음악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색깔의 곡들 - 유럽의 재즈 마누쉬 (Jazz Manouche) 풍의 사운드가 눈에 띄는 [햇살은 따뜻해], [연두] – 의 탄생을 도왔다. 그는 실제로 기타 소리를 '탐구'하는 자세로 이번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하곤 했다.
루시드폴의 6집 곡들을 제대로 감상하고 싶다면 그래서 고요한 곳을 먼저 찾으라고 권하고 싶다. 예를 들면, 시골 길, 숲 속, 아무도 없는 바닷가, 집이라면 평일 오후의 텅 빈 집과 같은 장소 말이다. 둘이면 아무래도 말을 주고받게 되니 혼자가 되는 게 좋겠다. 장소를 찾았다면 이제 귀를 열기만 하면 된다. 루시드폴의 '바람 같은 노래'들이 섬세하게 반짝이며 당신에게 불어올 것이다.
III. 재미있지 않고 (Not Funny), 크게 흥미롭지도 않지만 (Not So Interesting), 확실히 아름다운 (Certainly Beautiful) 노래들
마지막으로 루시드폴의 6집 노래들이 한국의 대중 음악계에서 어떻게 하여 독자적인 아름다움을 획득할 것인지 소설가, 수필가, 예술평론가로 활동했던 수전 손택(1933~2004)의 문학평론 ⟪아름다움에 대하여⟫로부터 아이디어를 빌려 사유해보고 싶다.
포스트 팝아트가 현재의 한국 대중음악과 만나 일부 대중들의 흥미와 미적 취향을 만족시키고 있다고 가정했을 때, 루시드폴의 음악은 확실히 재미있지 않고, 크게 흥미롭지 않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우리가 피어 있는 꽃, 저녁노을, 가을바람을 보고 '흥미롭다'고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6집 곡들의 독자적인 아름다움은 그럼 어디에서 완성될까? 가사에 있다고 생각한다. 루시드폴 6집의 가사들은 금아(琴兒) 피천득(皮千得•1910~2007)이 말했던 '시적(詩的) 윤리성'을 내포하고 있다. 노래를 듣는 동안 인간적으로 옳게, 아름답게,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는, 집 없는 '검은 개', 비에 젖은 '서울의 새', '늙은 금잔화'와 같이 가련한 것에게 연한 연민과 슬픔을 느끼고 그것을 진솔하게 읊조렸다. 한편, [연두]에서는 남보다 잘난 이로 살아가라는 기성세대의 목소리를 거부하기도 한다. 남보다 잘난 이가 된다는 건 남들이 못난 이로 자리매김해줬을 때 성취될 수 있는 상대적인 성공이기 때문이다.
루시드폴 6집은 우리 모두를 여린 마음으로 돌아가게 해준다. '갈대도, 억새도, 모래도, 철새도, 조개도, 돌게도, 물고기도' 친구가 될 수 있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의 인생은 좀 더 행복할 수 있을 것이고, 우리가 아름다운 예술을 소중히 여기는 이유도 이것이 다가 아닐까. 루시드폴의 6집 노래들은 그래서 확실히 아름답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