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중음악 씬에 새로운 키워드를 제시하는 루드페이퍼.
드디어 그들의 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공개하다.
루드 페이퍼(Rude Paper) 정규 1집 [Paper Spectrum]
오늘날 세계 대중음악계의 키워드 중 하나는 바로 '탈((脫) 장르화'다.
물론, 여전히 그들을 묶는 큰 틀의 장르 카테고리는 존재하지만,
2000년대 들어 장르 간 결합과 파괴는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그에 따른 눈부신 성과와 참혹한 실패도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이는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자, 근데 이러한 하이브리드 음악의 범람 속에서 많은 이가 간과,
혹은 착각하는 지점이 있다.
바로 여러 장르의 결합을 추구하는 뮤지션들은 모두 뛰어난 음악적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 음악 저 음악을 한데 모아 자유자재로
주무르려면, 그만큼 해당 장르 음악에 대한 깊은 애정과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런 이들이 몇이나 될까?
단순히 섞는 거야 아무나 섞을 수 있다 치지만,
적절한 비율과 제대로 된 맛으로 섞어낸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 이 두 친구, 루드 페이퍼(Rude Paper)의 존재는 각별하다.
각각 쿤타 앤 뉴올리언스와 URD 등의 듀오 활동 끝에 의기투합했던
쿤타와 리얼 드리머(aka RD)는 오랜 준비 끝에 지난 2011년 4월 처음으로 발표했던
결과물인 [Radio (EP)]와 두 장의 싱글을 통해 그들의 복잡하고
매혹적인 음악세계를 피력해왔다.
그리고 올해 1월, 기존에 몸담았던 레이블과 계약을 종료하고
자이언트 하이브(Giant Hive)라는 이름의 독립 레이블을 론칭하면서
커리어의 새 전환기를 맞이했다.
그러므로 [Paper Spectrum]은 루드 페이퍼의 첫 번째 정규 앨범이자
이들이 새롭게 내딛는 첫 발자국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동안 루드 페이퍼의 결과물에서 드러났던 레게 퓨전(Reggae Fusion)에
근거한 다양한 장르의 혼합은 본작에 이르러 더욱 절묘하고
타이트하게 맞물리며, 앨범의 타이틀처럼 듀오의 넓은 음악적 스펙트럼과
질적인 성장을 고스란히 증명한다.
프로덕션을 책임진 리얼 드리머는 덥스텝을 주무기로 내세우는 가운데,
그들의 음악적 근간이었던 레게, 힙합, 일렉트로니카, 알앤비 등의 결합을
더욱 견고히 하고, 록적인 요소까지 적극적으로 껴안으며
넓은 스펙트럼을 과시하고, 그 위에 보컬의 옷을 입힌 쿤타는
이처럼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 위에서 단 한 번의 흐트러짐 없이
타고난 멜로디 메이킹 감각과 독보적인 레게 보컬을 작렬시킨다.
일렉 기타 리프를 가미함으로써 더욱 강렬한 인상으로 재탄생한
"Radio 2012", 덥스텝 특유의 변칙적이고 역동적인 디지털 변주의 매력이
살아 숨 쉬는 트랙들인 "Don't Blame Me", "Hand", "믿지 않아",
"Dream", "Realise", 레게와 힙합이 아주 이상적으로 만나는 순간을
선사하는 "Answer", 앨범 내에서 서정성이 가장 극대화되는
두 곡 "비오는 밤에", "Mama, I’m Home", 레이드-백(Laid-Back)한
댄스홀 넘버 "와다민", 초기적 스카 리듬을 품고 있는 "꿈인걸 알아" 등은
그 대표적인 트랙들이다.
특히, 몇몇 곡들에서 느낄 수 있는 메시지의 힘도 상당히 인상적이다.
거짓과 왜곡된 정보를 전파하기도 하는 미디어의 이면과
한국 대중음악 씬에 대해 베테랑 랩퍼 셔니슬로우(Sean2Slow)와 함께
강도 높은 비판을 가하는 "믿지 않아", 이 땅에서 홀몸으로 자식들을
키워낸 세상 모든 어머니에게 바치는 진심 어린 송가 "Mama, I'm Home",
제목 그대로 루저라는 멍에를 쓰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You Are Not Loser" 등은 그중에서도 눈부신 지점이라 할만하다.
단순히 사운드와 스타일적으로만 압도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 속에 녹아있는 각 장르의 미세한 특징과 요소가 살아 숨 쉬고,
순간순간 탁월한 멜로디 라인까지 살아나는 [Paper Spectrum]은
근래 한국대중음악 씬에서 보기 드문 스케일의 작품이다.
한국대중음악 판이 방송과 대중에게 쉽게 먹힐만한 싱글 위주로 돌아간다 하여
많은 이가 우려를 표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젠 '정규 앨범을 발매하는 것' 자체가 홍보거리가 될 정도로 더욱 기형적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아무리 현실이 처참하다 해도 앨범의 가치는 단순히
'발매되었다는 것'이 아닌 그 구성물의 질적 양상에 의해 판가름해야 한다는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Paper Spectrum]에 진심으로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본작은 그야말로 루드 페이퍼가 음악과의 끈적끈적한
애정행각(?) 끝에 낳은 참으로 로맨틱하고 황홀한 산물이다.
-흑인음악 미디어 리드머 편집장 '강일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