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의 밥줄
본명 김정균. 기타를 사고 싶었는데 돈이 없었다. 양장점에서, 공사판에서 돈을 벌며 거지처럼 살았다. 그 생활 이후 기타와 함께 김거지라는 별명이 생겼다.
공연을 시작하게 됐는데 늦게 시작한 음악이라 실력이 부족했고, 사람들이 알아보는 것도 싫어 그냥 김거지라는 별명을 가명으로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거지가 된 정균이와는 작년 여름 처음 만났다. 사무실에서 야근을 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거지의 노래를 듣게 됐다. ‘오늘 같은 밤은 다신 없었으면 해’ 이 노래에 왜 그렇게 마음이 움직였을까. 나는 만나고 싶다는 메일을 보냈고, 얼마 뒤 그가 노래하는 인하대 후문 ‘울림’이라는 술집에 찾아갔다. 공연을 마친 거지와 삼십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거지는 겨울에 구세군 냄비 투어 콘서트를 하고 싶다고 했다. <김약국의 딸들>을 보고 박경리 선생님 무덤이 보고 싶어서 통영에 내려갔다 왔다고 했다. 내게는 아무 질문도 하지 않았다.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몇 번 더 만났다. 거지가 음악을 시작한 사연이 궁금해 물었는데, 그때 얘기가 뭉클했다.
군대에서 휴가를 나왔는데, 거지의 어머니가 건강악화로 중환자실에 입원해있었다. 그 병원에서 자선연주회가 열려 구경을 하는데 공연이 끝날 때쯤에 피아노가 보였다. 당시 거지는 건반을 배우고 있었는데 갑자기 노래 부르고 싶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없던 용기를 내서 관계자에게 부탁해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하게 됐다. 이승열 ‘기다림’. “기다림은 모두의 종교다”라는 글을 책에서 읽었는데, ‘언젠가 그대가 날 아무 말 없이 안아 주겠죠’라는 가사에 지금은 힘들지만 앞으로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이 들어있다고 믿었다고 했다. 즉흥 공연을 한 뒤 힘이 빠져 정신없이 혼자 계단에 앉아 있는데 어머니 담당 주치의가 오셔서 어깨를 두드리며 잘 들었다며 힘내라고 말씀해주셨다. 거지는 그때 그 알 수 없는 용기와 의사 선생님의 따뜻했던 말이 음악으로 이끈 거 같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아무 것도 없이, 아무 배움도 없이 음악을 시작한 거지는 작년 11월,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대상을 탔다. 대상곡인 ‘독백’에서 거지는 자신의 “몸에 깃들어 사는 소년과 노인, 늑대 같은 남자들”에게 말을 건다. “누구도 사랑할 수가 없다고 무엇도 아름답지가 않다고 난 어떡해 어떡하냐고” 이 가사처럼 거지는 누구도 해결해줄 수 없는 외로움과 어디서 오는지 모를 막연함에 대해 노래한다. 그는 길을 잃어버린 어느 날의 기억으로 “종점에 홀로 선 내 삶은 시작점에 홀로 선 것과 다르지가 않아(‘길을 잃다’ 中)”라는 가사를 만들어내고, 헤어진 연인을 향해 “무엇도 있지 않은 그 공간 속을 향해 날 다시 찾아달라고(오늘 같은 밤은 다신 없었으면 해 中”) 외친다. 이 해결될 수 없는 외침들은 김거지가 외로움과 막연함을 연소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 방법이 김거지를 노래로 먹고 사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밥줄’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김거지의 첫 EP.는 노래로 먹고 사는 사람으로서의 김거지와 노래하는 사람으로서의 김거지의 경계에서 나왔다. 노래가 밥줄이 되면 생기는 변화를 서서히 체감하고 있는 그는 이번 앨범을 통해 한편으로는 노래가 밥줄이 되었음을 받아들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노래가 밥줄이 되었다고 해서 스스로의 목소리를 잃어버리지는 않겠다고 각성한다.
김거지의 노래는 우울하고 외롭고 찌질하다. 박수치며 들을 수 있는 노래도 없다. 그럼에도 김거지의 노래가 마음을 움직이는 건 누구의 귀에 들려주려고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스스로의 마음에 귀 기울여 만들어낸 음악이기 때문일 것이다. 음악이 밥줄이 되더라도 그가 낯선 귀를 찾아가는 음악을 만들기보다 지금처럼 스스로의 마음에 귀 기울이는 뮤지션이 되길 바란다.
김거지의 ‘밥줄’, 우울하고 외롭고 찌질한 거지다운 노래가 엮여있는 김거지 첫 EP.를 들어달라고 ‘오늘 같은 밤은 다신 없었으면 해’를 듣고 인천까지 찾아갔던 내 마음을 담아 당신에게 구걸해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