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투명] 1.5집 “Between...”
지중해의 새벽 두 시, 달빛 같고 물결 같은 노래.
우주미아 인공위성의 달빛 춤
손가락 한 마디 차이, 그 사이
일렉트로니카 프로젝트 [투명]의 새 앨범 “Between...”이 3월 23일 발매된다.
첫 인상은 ‘강수지 또는 하수빈’이지만 무대 위에선 그 누구보다 격정적인 정현서(Wintergreen, 사비나 앤 드론즈, 황보령=Smacksoft) 그리고 정확하고 여유로운 톤과 워킹으로 다른 포지션의 소리까지 부드럽게 다듬는 민경준(Dusty Blue, 하이미스터메모리). 이렇게 안 어울릴 것 같은 베이시스트 두 명이 서로의 공통 주파수를 발견하고 증폭시킨 결과물이 바로 [투명]이다.
“Between...”은 모두 다섯 곡이 담긴 ‘1.5집’이다. 어쿠스틱 성향이 강했던 1집 “For...”(2010)와 다음에 나올 2집 ‘사이’라는 의미와 동시에, 좀 더 전자음 비중이 높아져 가는 음악적 길목을 의미한다.
전작 “For...”는 전곡 작사 작곡한 정현서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쟁쟁한 친구들이 세션으로 참여하여 곡마다 방점을 찍어주었지만, 결국 그니의 목소리와 건반이 큰 흐름을 주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비록 트랙 수는 적을지라도, “Between...” 앨범 전체를 아우르는 안정된 질감과 곡마다 깃든 고유의 색감은, 비로소 [투명] 사운드의 정체성을 완결한다. 전곡 공동 작곡하고 소리의 층을 섬세하게 쌓아 올려 준 민경준과의 음악적 균형도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잘 분업되고 보강되고 보완되었다. 결코 적지 않은, 크고 작은 공연 일정들을 성실하게 소화하는 과정을 통하여 다져 온 자신감과 탄탄한 ‘동료 의식’이, 결국 빛을 발하는 것이다.
우리가 별이라 믿는 중 많은 빛이 실은 인공위성이었다는 ‘Satellite’는 앨범 여는 곡 임무를 훌륭히 수행한다. 툭툭 던져지는 비트와 찰랑이는 층층의 루프에 고개 까닥이다 보면, 건반이 무언가 자꾸 끄집어 내려 한다. 쉬워 보이기 싫어 슬쩍 반항하려는 그때, 사람의 목소리가 날아와 명치 한가운데 정확히 꽂힌다. 일상의 먼지 같은 한숨의 순간, 어둠 속 위성이 화자와 포개지는 찰나의 포착이, 그야말로 별 같다, 너를 닮은 나.
“True Lover”는 거친 멜로디와 마음의 갈피만 듣고, 황보령이 가사 붙여 준 곡이다. 오랜 음악 동료이자 선배인 황보령과의 교감이 더해진 덕에, [투명]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곡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투명] 무대에서 가장 자주 들을 수 있던 곡이었다. 이 앨범 중 가장 편곡을 단순화하며, 정직한 목소리의 힘을 믿은 곡이다.
“잊을수록”은 박자를 거칠고 무신경하게 자르고 쪼개고 움켜쥐었다가 아무렇게나 던져버리기를 반복한다. 아마도 그렇게 무신경하게 흩뿌려지는 것은 박자가 아니라 상처 받은 마음일 것이다. 커튼 한 겹 뒤에 숨어 머뭇거리듯 웅얼거리는 목소리와 건반이, 그 목 놓아 울지도 못 할 아픔에 소리 죽여 흐느낀다. 그리고 암전.
“Moondance”는 ‘초겨울 너무 맑은 밤하늘에 가득하게 빛나는 반쪽 달빛이 예뻐서 그 달빛아래서 춤추고 있는 나를 노래한 곡’이라는 작업 노트를 그대로 옮기는 것이 좋겠다. 더 이상 친절하고 마음에 닿게 이 곡을 설명할 말은 없다. (그 어느 나라도 아닌, 그래서 모두 아우른) 동양적 아름다움이 과장 없고 과시 없이 깃들어 있어, 더욱 따스하게 느껴지는 곡이라는 말 한 마디만 덧붙이고 싶다.
“Stero”는 일본어로 ‘버려라 捨てろ’는 말을 발음기호대로 표기한 것이다. 한숨, 불안, 상처, 평온을 지나 모든 것을 버리고 지워 ‘어떤 느낌’만이 남은 상태. 최면을 걸듯, 그 경지로 유도하듯, ‘버려라’ 이 한 마디만 반복된다.
눈을 감고 누워, 모든 곡을 듣고 난 다음, 다시 조용히 눈을 떠 보라. ‘겨우 다섯 곡’을 듣는 동안 당신이 얻은 마음의 무중력 상태가 얼마나 큰 평온을 주는지. 자기도 모르게 다시 잠이 들거나, 아득바득 살기 싫어질 수도 있으니 출근 시간엔 권하지 않는다.
나는 지중해의 새벽 두 시가 생각나, 다시 달게 잠이 들어 버렸다.
* 그니 : 그 여인에 해당하는 토박이말. -니-는 -어머니, 할머니, 엄니- 등과 같이 여성을 가리키는 뒷가지로 쓰는 말이다. .... ....